책소개
젠더와 권력, 억압을 넘어 해방의 무대로
〈클라우드 나인〉은 영국 제국주의 시대와 100년 후 현대 사회를 배경으로 성의 정치학을 탐구한다. 1막은 19세기 영국령 아프리카 식민지를 배경으로 가부장제가 모든 것 위에 군림, 지배하고 있다. 이곳에는 식민 체제 전복을 예견하며 자유와 독립을 향한 희망을 암시하는 ‘원주민 북소리’가 잠재적 위협으로 도사리고 있다. 백인의 흑인·원주민·식민지 지배를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로 빗대어 말하고 있는 이 극은 제국주의와 가부장제의 긴밀한 공모를 보여 준다. 이런 세상에서 아내 베티도, 어린 아들 에드워드도 불안하고 행복하지 못하다. 딸인 빅토리아는 심지어 이리저리 던져지는 인형으로 등장한다.
2막은 100년 후인 20세기 런던이 배경이지만, 등장인물들은 25년밖에 나이를 먹지 않은 채 등장한다. 성과 자유를 주제로 펼쳐지는 2막에서 베티는 이혼 후 독립적인 삶을 모색하고, 에드워드는 게이로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간다. 빅토리아는 페미니스트로 성장하여 여성의 독립과 새로운 가족 형태를 실험한다. 그러나 이 시대에도 여전히 성적 억압과 사회적 위협이 존재한다.
미래를 비추는 연극적 상상
〈클라우드 나인〉 성별, 섹슈얼리티, 권력 관계를 조명하며 성의 정치학을 전면에 내세운다. 연극은 남성이 여성을, 여성이 남성을, 백인이 흑인을 연기하게 하고, 성별과 인종을 교차시킴으로써 사회적으로 부과된 젠더 역할과 지배 구조를 해체한다. 4개의 노래와 세 사람의 긴 모놀로그를 사용한 극적 기법은 성의 정치학이라는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며, 극의 완성도를 높이고, 관객과 독자에게 즐거운 혼란과 충격을 안겨 준다. 런던 초연 이후 오늘날까지 세계 여러 곳에서 꾸준히 공연되며 페미니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200자평
영국 국립극장 여론조사에서 20세기 가장 중요한 100대 연극 중 하나로 소개된 <클라우드 나인>은 1979년 런던 초연 이후 뉴욕에서 3년 반 동안 공연되었으며 1982년 드라마데스크상과 오비상을 수상했다. 성적인 표현, 외설적인 언어 때문에 논란이 되었던 작품으로 빅토리아 시대와 현재를 병치하여 식민 억압과 성적 억압 사이의 유사성을 꼬집으며 현실을 풍자한다. 인물의 성과 인종을 교차해 보여 주는 극적 기법을 사용해 즐겁고 놀라운 혼란을 주며 페미니즘 영역을 확장한다.
지은이
카릴 처칠(Caryl Churchill, 1938∼)
현재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극작가 중 한 명이다. 1972년 <소유자들(The Owners)>이란 작품으로 런던 로열코트 극장에서 극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1970년과 1980년대에는 페미니스트 극의 대모로 명성을 쌓았고 이후 전쟁, 혁명, 환경, 여성 노동, 신자유주의, 팔레스타인 문제 등 당면한 국제적 이슈와 역사적 사건들로 관심을 넓히며 거침없는 창작력을 보이고 있다. <넘버>에서는 인간 복제라는 가장 첨예한 문제를 다루기에 이른다. 심도 있는 지적 탐구를 바탕으로 복장 전환, 언어 실험, 1인 다역, 교차 배역, 그리고 역사 다시 쓰기라는 극작 기법은 브레히트의 서사극 스타일과 결합되어 처칠만의 독창적인 연극 미학을 구축한다. <클라우드 나인>(1979∼1981), <최고의 여성들>(1982), <엄청난 돈>(1987∼1988), <넘버>(2004)로 오비상을 총 네 차례 수상했다.
옮긴이
이지훈
이지훈은 연세대학교 영문학과 졸업 후 미국 뉴욕주립대학교 올버니캠퍼스에서 연극학 석사, 동아대학교에서 〈King Lear와 Lear의 비교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는 희곡집 《기우제》(평민사, 2006), 《셰익스피어와 사랑에 빠지다》(북스힐, 2001, 편저), 역서로는 《카릴 처칠 희곡집 : 비네가 탐/클라우드 나인》(평민사, 1997), 《꾀뜨미네의 사흘》(일월서각, 1985), 《벨 자》(고려원, 1983), 《운전 배우기》(지만지, 2012), 《빨래》(지만지, 2016), 《이 집에 사는 내 언니》(지만지, 2017), 《포럼으로 가는 길에 생긴 재밌는 일》(지만지, 2018) 그리고 《넘버》(지만지, 2021)가 있다. 논문은 〈King Lear의 모성 부재〉, 〈King Lear와 민담 Source로서의 Cinderella Cycle〉, 〈‘베니스의 상인’의 시간과 공간〉, 〈꿈과 생시 : 최인훈의 ‘둥둥낙랑둥’〉 등이 있다. 미국 UCLA대학, 브라운대학, 일본 도시샤대학에서 방문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창원대학교 영문학과 명예 교수다.
〈기우제〉로 1994년 여성신문사에서 수여하는 희곡 부문 여성문학상을 수상했고 이후 영미 여성주의극의 번역과 무대화에 주력해 왔다. 카릴 처칠의 〈비네가 톰〉, 팸 젬스의 〈두자, 피시, 스타스 그리고 비〉, 마리아 아이린 포네스의 〈진흙〉, 자작극 〈그 많던 여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나?〉, 웬디 케슬먼의 〈빠뺑 자매는 왜?〉를 연출했고 그 외 부조리극으로 해럴드 핀터의 〈방〉, 베케트의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 아라발의 〈장엄한 예식〉 등의 작품을 연출했다.
2012년 극단 TNT 레퍼토리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폴라 보글의 〈운전 배우기〉를 국내 초연으로 연출한 바 있으며, 2015년 한국여성연극인협회에서 수여하는 올빛상(극작)을 수상했다.
자작극 〈나의 강변북로〉를 연출하고 출판했으며(평민사, 2020), 2020년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대본 공모에 〈여로의 끝〉이란 작품이 선정되어 출판되었다(독서학교, 2020). 이어 희곡 《머나먼 벨몬트》(평민사, 2021), 《조카스타》(평민사, 2022) 그리고 《라희도희》(평민사, 2024)를 출판했고 2022년 서울연극협회로부터 극단 활동 40년으로 특별공로상을 수상했다. 그 기념으로 극단 40년사를 기록한 《TNT 레퍼토리와 나의 연극이야기》(평민사, 2023)를 출간했다. 〈여로의 끝〉은 서촌 공간 서로에서 백순원 연출로 낭독극으로 초연되었고 영한 합본이 출간되었다(평민사, 2023).
극단 TNT 레퍼토리(1982년 창단) 대표이며 2017년부터 드라마 연구소 ‘D Forum’을 열고 연극인과 일반인을 위한 희곡 읽기 세미나 강좌와 창작에 주력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제2막
작가의 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조슈아 : 내 피부는 검어요. 하지만 내 영혼은 하얗죠.
난 내 종족을 싫어해요. 주인님이 내 빛이죠.
오직 주인님을 위해 삽니다. 보시는 대로요
백인이 원하는 것, 바로 그것이 내가 되고 싶
은 거랍니다. _13쪽
모드 : 젊은 여자들은 결코 행복하지 않아. _27쪽
베티 : 미안해요, 미안해요. 잘못했어요. 해리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내 잘못이에요. 해리는 도덕적이에요. 그는 거절했어요. 내가 나빴어요. 난 지루했고 불안했고 상상을 했어요. 내 속에는 굉장히 악한 어떤 것이 있어요, 클라이브. _74쪽
빅토리아 : 왜 저 친군 그냥 마누라가 돼서 날 따라오지 못하지? 왜 마틴은 내가 날 동아줄에다 꽁꽁 묶어 놓게 만들까? 우리가 단순한 섹스도 못 하는 건 다 이유가 있어. 아니, 마틴이 아냐, 왜 나는 날 동아줄에다 꼭 묶어 놓지? 이제 더는 안 돼, 린. 너와는 그렇지가 않아. 넌 내가 맨체스터로 가도 날 사랑할 거니? _138쪽
빅토리아 : 섹스와 경제를 분리할 수는 없거든. _1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