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타마르의 복수>는 17세기 스페인 황금세기를 대표하는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의 가장 뛰어난 작품 중 하나다. ≪구약 성경≫의 <사무엘기 하> 13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2대 왕 다윗과 그 자녀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다. 사제였던 티르소 데 몰리나는 역사와 신학에 정통했지만 성경 내용을 가져다가 극을 구상할 때는 작가로서 극적 재미를 가장 염두에 두었다.
성경에는 다윗 왕의 장자 암논이 이복 여동생 타마르를 성폭행한 뒤 성 밖으로 내쫓고, 이에 앙심을 품은 타마르가 암논에게 복수하는 과정이 단순하고 상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어 압살롬의 반란, 솔로몬의 등극 등 이스라엘 왕가의 흥망성쇠를 폭넓게 다룬다. 타마르와 암논 그리고 다윗의 인간적인 고뇌와 고통은 성경과 역사 기록에선 드러나지 않는다. 티르소 데 몰리나는 사료를 그대로 따르는 대신 모든 인물에게 감정과 욕망을 불어넣었다. 박제된 역사에 머물 뻔했던 ‘타마르의 복수’는 섬세한 인물 묘사와 짜임새 있는 전개를 통해 생생한 비극으로 다시 태어난다.
암논 : 주지 않으면 강제로 갖겠다!
티르소 데 몰리나는 후에 파우스트, 돈키호테, 햄릿과 함께 세계 문학사상 4대 캐릭터로 손꼽히는 희대의 바람둥이 ‘돈 후안’의 창안자답게 암논을 욕망에 사로잡혀 천륜도 저버리는 난봉꾼으로 그렸다.
다윗의 장자 암논은 첫 장면에서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한다. 하지만 이복 여동생 타마르에게 첫눈에 반해 사랑을 호소하며 “절대 사랑에 빠지지 않겠다”다던 맹세를 스스로 저버린다. 왕위계승권자로서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즉시 이룰 수 있었던 암논이 “사랑의 신”에게 도전한 대가를 혹독히 치르게 될 것임을 예고하는 복선이다.
타마르 : 방법은 잊는 것뿐, 그런데 잊는 법을 잊어버렸어
타마르는 암논의 성적 욕망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는다. 법과 정의에 호소했고, 아버지의 인정에 호소했지만 전부 소용없었다. 타마르는 암논을 향해 “타마르의 복수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은 뒤 스스로 복수의 화신이 된다.
티르소 데 몰리나는 여성 캐릭터 심리 묘사에 뛰어났다. 티르소 데 몰리나의 여성 인물들은 자립심 강하고 환경에 순응하지 않는다. 특히 성범죄 피해를 입었을 때 자책하거나 운명을 비관해 섣불리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법과 종교가 죄를 묵인하고, 가족조차 외면할 때 이들은 낙담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직접 응징에 나선다. 타마르는 그런 티르소 데 몰리나형 여성 인물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200자평
17세기 스페인 황금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극작가 티르소 데 몰리나의 가장 뛰어난 희곡 중 하나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다윗의 통치, 압살롬의 반란, 솔로몬의 등극으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왕가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하고 있다.
티르소 데 몰리나는 작가로서 역량을 최대로 발휘해 성경과 역사 기록이 간과한 타마르, 암논, 다윗 등의 인간적 고뇌와 고통, 욕망을 섬세하게 재현하고, 사실과 허구를 촘촘히 엮어 낸다. 이로써 박제된 역사에 머물 뻔했던 ‘타마르의 복수’는 생생한 비극으로 다시 태어났다.
특히 주인공 타마르는 자립심 강하고 환경에 순응하지 않는 티르소 데 몰리나형 여성 인물의 전형으로, 불의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정의를 세우기 위해 응징에 나서는 모습을 보여 준다.
국내 초역이다.
지은이
필명 티르소 데 몰리나(Tirso de Molina, 1579∼1648)로 유명한 가브리엘 테예스(Gabriel Téllez)는 17세기 대표적인 스페인의 극작가다. 생애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티르소는 1579년 3월 24일 고위 귀족 시종의 아들로 마드리드에서 태어난다. 1600년 11월 4일 은혜로운 성모 마리아 교단(Orden Real y Militar de Nuestra Señora de la Merced)에 들어가 161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이 시기부터 작품 활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1612년에 처음으로 자신이 쓴 희곡을 판매했다고 한다. 1616년부터 1618년까지 중남미의 산토도밍고에 파견되어 그곳 대학에서 신학과 교수로 3년간 재직하다가 1618년 유럽으로 돌아와 마드리드에 있는 은혜로운 성모 마리아 수도원에 들어간다. 세바스티안 프란시스코 데 메드라노(Sebastián Francisco de Medrano)가 세운 마드리드 시학 아카데미(Academia poética de Madrid)에서 발간하는 프로시딩 작업에 참여하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희곡을 집필한다. 첫 번째 출판물은 ≪톨레도 별장(Los cigarrales de Toledo)≫(1621년에 쓰여 1624년 출판)이라는 수필집으로, 단편 이야기와 소설, 시와 세 편의 희곡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 희곡 <궁으로 간 소심한 남자(El vergonzoso en palacio)>가 유명한데, 티르소 데 몰리나의 극작가로서 위트와 재치가 두드러진다. 또한 ≪톨레도 별장≫의 서문을 보면 티르소 데 몰리나는 이 시기에 이미 300편가량의 희곡을 썼으며, 당시 로페 데 베가 다음으로 인기 많은 극작가로 경력을 쌓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사제로서 이처럼 세속적인 희곡을 썼다는 이유로 1625년 고발당한다. 1626년 교단으로부터 제재를 받아 살라망카로 갔다가 다시 세비야의 성모 마리아 교단 수도원에서 한동안 지내며, 대중 공연을 위한 희곡 집필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한다. 한동안 희곡을 쓰지 않다가 1636년 다섯 번째 희곡집 출판 이후 완전히 절필했다. 희곡을 계속해서 쓰고 출판하는 문제로 교단의 사제들과 마찰을 빚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1640년 교단에 의해 쿠엔카(Cuenca) 지방으로 추방된다. 그러나 곧 복권되어 1645년 소리아(Soria) 지역의 은혜로운 성모 마리아 수도원장으로 임명되어 재직하다가 1648년에 사망했다.
옮긴이
김선욱은 서울 출생으로 고려대학교 서어서문학과와 동대학원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고,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국립대학교(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에서 스페인 연극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고려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스페인과 중남미 연극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으며, 스페인과 라틴아메리카의 연극을 번역하고 무대에 올리는 한편 드라마투르그(문학 감독)와 연극 평론가로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공연 예술≫(공저), ≪작품으로 읽는 스페인 문학사≫(공저) 등과 역서로 ≪누만시아≫, ≪살라메아 시장≫, ≪푸엔테오베후나≫, ≪죽음 혹은 아님≫ 등 다수가 있다. 논문으로는 <연극사 각 시대별 연기 양식 비교 연구 : 음악적 대사의 연극적 재현의 역사>, <르네상스와 바로크 과도기 시기 스페인 연극의 관객 : 또레스 나아로를 중심으로>, <20세기 라틴아메리카 연극과 연극 축제> 등과 평론으로 <젊은 작가와 극단의 재기발랄한 놀이 : 극단 이상한 앨리스의 변기 속 세상>, <사회적 폭력에서 잉태된 개인의 폭력, 그리고 그 치유에 대한 희망 : ‘주인이 오셨다’의 텍스트 구조와 의미>, <‘마호로바’의 미덕 : 그 구조와 연기 앙상블> 등 다수가 있다. 이외에도 <번역극의 드라마투르그 임무와 역할>과 같은 연극과 관련한 많은 문화 칼럼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암논: 오! 신이시여! 진분홍색 옷의 불길이
이미 나를 불살라 버렸도다.
저 붉은 옷을 입은 사람은
내 여동생 아닌가? 하늘이시여, 저 여자는
타마르 아닌가? 행운이 날아갔구나!
아아!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내 동생에게 반했단 말인가?
빌어먹을 정원아, 아멘!
내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것은
슬프고 어두운 밤이다.
빌어먹을. 아멘. 미쳤어.
내 행복을 위해서도 좋지 않아.
나는 자유 의지로 폭압자인 사랑의 신의
성벽을 올랐어!
영혼이여, 죽어라. 입을 다물라.
연인이면서 오빠라니.
잊는 게 상책이야.
오, 하늘이시여, 제 마음의
불길이 꺼져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 주소서.
-52쪽
타마르 : 나쁜 놈, 너는 이제 머지않아
타마르의 복수를 보게 될 것이다.
-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