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 이후 수많은 유럽의 탐험가와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향했다.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그중 한 명이다. 피사로가 ‘위대한 정복자’라는 소리를 듣게 된 것은 불과 167명의 소수 병력으로 당시 남미의 대제국이었던 잉카 제국을 정복했기 때문이었다. 잉카 제국은 완벽한 사회주의 체제를 갖춘 강력한 제국이었으나 언젠가 흰말을 탄 신이 와서 지배할 것이라는 전설을 믿고 있어서 저항하지 않고 멸망했다는 설이 있다. 바로 이 피사로의 잉카 제국 정복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태양 제국의 멸망>의 줄거리다.
황금을 찾고 식민지를 얻기 위해 또 암흑의 세계에 기독교의 밝은 빛을 전하기 위해 모인 피사로의 탐험대는 스페인을 떠나 남미의 정글과 험준한 산을 넘어 잉카 제국에 들어선다. 잉카의 인간신, 아타후알파는 피사로 일행을 전설 속의 신으로 믿고 카하마르카에서 그들을 맞이하지만, 피사로는 그들을 살육하고 아타후알파를 포로로 잡는 다. 그의 몸값으로 황금을 요구한 피사로는, 자신이 신이라 믿고 있는 이 젊은 지배자와 얘기를 나누고 또 그가 통치하는 제국의 사회 제도를 보며 내적으로 갈등한다. 결국 피사로는 자신이 믿었던 유럽의 사회 제도, 가치관, 그리고 기독교에 회의를 품고 아타후알파를 이해하게 되지만, 부하들과 기독교 사제들의 압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를 처형한다.
1964년 치체스터 페스티벌에서 영국 국립극단의 시즌 첫 작품으로 공연되었는데, 존 덱스터의 천재적인 솜씨로 공연 예술의 모든 요소가 합쳐진 ‘총체 연극(Total Theatre)’의 진수를 보여 격찬을 받았다. 특히 피터 셰퍼의 이전 작품들에서 이런 큰 규모를 보지 못했던 비평가들은 완전히 이 작품에 매료되었다.
200자평
피터 셰퍼의 <태양 제국의 멸망>은 1964년 초연되었다. 16세기 에스파냐 정복자 피사로에 의해 잉카 제국이 몰락하는 과정을 그린 사극이다. 제국주의, 종교와 문화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피터 셰퍼의 가장 중요한 작품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지은이
피터 셰퍼(Peter Shaffer, 1926∼2016)
피터 셰퍼는 1926년 영국 리버풀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자랐다. 전업 작가가 되기 전 잠시 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극작가로서 첫 성공을 거둔 작품은 1962년 글로브극장에서 초연된 단막 코미디 <개인적인 귀(The Private Ear)>와 <공적인 눈(The Public Eye)>이다. 두 작품으로 피터 셰퍼는 “중요한 작가이자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주요 작품으로는 <아마데우스>, <에쿠우스>, <태양 제국의 멸망>이 있다. 그 외 작품으로는 단막 코미디 <블랙 코미디>와 <새하얀 거짓말>이 1966년 공연되어 영국에서 인기를 끈 뒤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1년간이나 공연되었고, 1970년에는 현대극 <고해를 위한 전쟁(The Battle of Shrivings)>이 공연되었다. 이어 구약성서 속 다윗 왕과 그 아들 암논, 압살롬 등의 갈등을 그린 <요나답(Yonadab)>을 발표했다. 20세기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옮긴이
박준용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교육방송국 프로듀서, 영국 BBC 연수 지구비디오 프로듀서를 지냈다. 희곡 번역가로서 닐 사이먼의 ≪희한한 한 쌍≫과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 ≪플라자 스위트≫, ≪굿 닥터≫, 조 오튼의 ≪미친 사람들≫, 페터 바이스의 ≪마라 사드≫, 숀 오케이시의 ≪주노와 공작≫, 시드니 마이클스의 ≪칭칭≫, 피터 셰퍼의 ≪태양 제국의 멸망≫, ≪요나답≫, 윌리 러셀의 ≪리타 길들이기≫, 우디 앨런의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존 밀링턴 싱의 ≪서쪽 나라의 멋쟁이≫, 빌 노턴의 ≪바람둥이 알피≫, 줄스 파이퍼의 ≪폭력 시대≫ 외 다수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기며 1970∼1980년대 한국 연극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제1막 정복
제2막 살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발베르데 : (오른쪽의 인디언들 사이를 다니며) 주 예수는 가셨지만, 그의 안내자로 교황을 남기셨다.
데 니차 (왼쪽에서) 주 예수는 가셨지만, 그의 안내자로 교황을 남기셨다.
발베르데 : 교황께서는 모든 왕에게 명하셨나니, 왕은 모든 사람이 진정한 신을 믿도록 해야 한다.
발베르데, 데 니차 : (함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의 죄를 묻노니, 회개하고 주의 뜻을 따를지어다!
아타 : 나는 태양의 아들로 누구의 말도 따르지 않는다. 너희를 물 건너로 보낸 너희의 왕은 위대하다. 그러니 그는 나의 형제다. 그러나 교황이라는 자는 미쳤다. 그는 자기 것이 아닌 땅을 멋대로 나눠 주고 있고, 그가 믿는 신 역시 미친 신이다.
-87-88쪽
아타 : 피사로, 당신은 곧 죽을 거야. 그런데도 당신은 당신의 신을 믿지 않고 있어! 그래서 두려움에 덜덜 떨면서 신음 소리를 내는 거야. 나를 믿어! 그러면 내가 당신에게 기쁨을 줄게. 당신을 위해서 나는 죽음을 삼켰다가 뱉을 수도 있어!
사이, 이제부터 장면은 움직임이 거의 없다.
피사로 : (속삭이듯) 거짓말, 넌 그럴 수 없어!
아타 : 아버지의 뜻이라면 할 수 있어!
피사로 : 만일 아버지의 뜻이 아니게 되면?
아타 : 나의 백성들은 아직도 나를 필요로 하고 있어. 아버지께서도 원하실 거야.
피사로 : 아냐, 그건 불가능한 거야.
아타 : 믿으라니까!
피사로 : 정말 가능하다는 거야?
아타 : 내일 다시 해가 뜬다는 걸 못 믿어?
피사로 : (조용히) 그래, 난 아무것도 더 이상 믿을 수 없어!
아타 : 그러니까 날 믿어. 내가 당신의 상처를 씻어 내고 평화를 줄게!
-171-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