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형식과 기교에 각별히 관심을 기울인 세심한 시인 테니슨은 풍부한 이미저리를 구사하는 법을 알고 있었으며 묘사적·감각적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그는 대상이 자신의 정교한 감각에 준 인상을 가지고 작품을 썼기 때문에 영국 낭만주의 시인 키츠와 셸리의 전통을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는 “영국 시인 중에서 가장 섬세한 귀의 소유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시에서 청각적인 어휘를 즐겨 사용했다. 따라서 테니슨은 언어의 음악성을 중요하게 여겨 그 리듬을 잘 다루었다.
그의 언어는 작품의 주제를 한층 더 심화하고, 강렬화하고, 집중화함으로써, 독자에게 매우 예민한 감수성으로 세상의 황무지에서 영속적인 마음과 지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인간의 문제에 대해 뼈저리게 공감하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기교적인 측면에서, 심상이나 리듬을 통해 상징주의 기법을 취했다. 극적 독백의 기교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는 독립적 화자를 내세워 객관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고 후에 훨씬 세련된 브라우닝의 본격적인 극적 독백 형식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시의 주제는 아주 광범위하다. 중세의 전설로부터 고전 신화, 가정의 상황, 자연의 관찰 등을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또한 인생의 심오하고 영원한 문제를 다룬 시들로, 서정성이 넘쳐 나며, 아름다운 비유와 뛰어난 상상력으로 음악적인 효과를 살린 구절들을 많이 갖추고 있다.
테니슨의 시에는 현실적이고 희극적인 면이 있으며, 인생의 신비에 대한 경외감 같은 것도 있다. 이러한 면들은 언어적인 세련미에 더해져 금세 당대의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고 그들의 정서와 정신에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테니슨을 계관시인으로 만들어 명성을 얻게 해 준 테니슨은 사별의 슬픔을 맛보게 되고, 이제는 천상의 불멸의 존재가 된 친구로부터 영원한 우정에 대한 확신과 영생에 대한 희망을 얻게 된다. 이 시에서 그는 개인의 감정의 변천 과정을 묘사할 뿐 아니라 시대의 영적 상태, 인간과 자연과 신과의 관계, 종교와 과학의 대립 등의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즉 테니슨은 고독과 절망을 주제로 한 감정적이고 낭만적인 우수에 잠긴 시를 쓰는 과정을 거친 후에 한층 더 수준 높은 일반적이고 보편화된 사고, 말하자면 좀 더 이성적이고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인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로써 그가 애초에 보여 주던 고독과 절망이 마침내 극복되는 것이다. 친구를 잃는 비운을 겪은 한 개인사가 시인으로서의 시적 역량과 인간으로서의 사고를 발전·확대시킴으로써 그의 삶을 활짝 개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부정을 긍정으로, 부재를 존재로, 슬픔을 기쁨으로 영원히 승화한 대표적인 인간이라 하겠다.
이 책은 테니슨의 시 중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유명한 짧은 시들과, 133편으로 구성된 장시 <A. H. H.를 추모하며> 중 테니슨의 감정과 그의 사상을 가장 잘 엿볼 수 있는 시들을 선별해 엮었다. 테니슨은 역설적이게도 친구를 잃은 비운이 시인으로서의 시적 역량과 인간으로서의 사고를 발전·확대시켜 그의 삶을 활짝 개화시켰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부정을 긍정으로, 부재를 존재로, 슬픔을 기쁨으로 영원히 승화한 대표적인 인간이다. 따라서 테니슨의 시를 읽으면 슬픔, 혹은 우울에의 몰두가 어떻게 존재의 핵심을 파악하게 하며 더 나아가 그것을 기쁨과 환희로 변화시키는지 체험할 수 있다.
200자평
테니슨은 언어적 교사라고 불렸던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인 시인이다. 그는 “언어의 마술사”, “언어의 왕”, “단어의 발견자”라고 불렸다. 그만큼 이미저리가 풍부하고 묘사적·감각적 표현을 즐겨 사용했다. 사람들의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민중의 시인 테니슨의 뛰어난 언어적 기교를 감상할 수 있다. 특히 테니슨을 시인으로서 명성을 얻게 해 주었던 절친한 친구를 위한 애도의 장시 ‘A. H. H.를 추모하며’가 실려 있다.
지은이
앨프리드 테니슨은 1809년 영국 랭커셔의 서머스비에서 태어났다. 테니슨 경(Lord Tennyson)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영국의 왕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이기도 하다. 문학적으로 조숙해서 다섯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고, 10대가 되기 전에 알렉산더 포프(Alexander Pope), 월터 스콧(Walter Scott), 존 밀턴(John Milton)의 문체를 흉내 내어 글을 쓸 수 있었다. 1828년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칼리지에 입학하여, 1829년 ‘팀북투’로 총장상 메달을 받았다. 1827년에 이미 형 찰스와 <두 형제 시집>을 익명으로 내놓았다. 이어서 <서정시집>을 발표했고, 아버지가 죽자 대학 공부를 그만두었다. 테니슨이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만난 친구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친구로 역사가 헨리 핼럼(Henry Hallam)의 아들이며 후에 테니슨의 여동생과 약혼을 한 아서 헨리 핼럼(Arthur Henry Hallam)을 들 수 있다. 그와의 교제는 테니슨의 생애에서 가장 깊이 있었으며, 두 사람은 열렬한 지적 흥미를 가진 학부생 클럽인 ‘케임브리지 사도들(Cambridge Apostles)’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핼럼이 1833년 9월, 22세의 나이로 오스트리아의 빈을 여행하다가 갑자기 죽자 테니슨은 큰 충격을 받아 한동안 절망에 빠졌고 후에는 그를 위해 많은 헌시를 썼다. 1850년에 걸작 <인 메모리엄>이 출간되었으며, W. 워즈워스의 후임으로 계관시인이 되었다. <인 메모리엄>은 그가 17년간 생각하고 그리워하던, 죽은 친구 핼럼에게 바치는 애가로, 어두운 슬픔에서 신에 의한 환희의 빛에 이르는 과정을 담았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일 뿐만 아니라 빅토리아 시대의 대표적 시이기도 하다. 테니슨의 명성은 생전의 바이런 못지않게 대단한 것이었으며 수입도 넉넉한 가운데 시골집에서 한적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1844년에는 그의 시를 좋아하고 그를 열렬히 찬미하는 빅토리아 여왕(Queen Victoria)으로부터 남작의 작위까지 받아 테니슨 경이 되는 영예까지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경제적인 성공과 인기는 그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거나 대중의 기호에 지나치게 영합하도록 함으로써 그의 창작력을 감소시켜 말년에는 중요한 몇 편의 작품을 빼고는 그다지 뛰어난 작품이 없다. 그러나 계속해서 그는 영국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았으며, 83세의 나이로 1892년 10월 6일 세상을 떠났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혔다.
옮긴이
윤명옥은 충남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에서 존 키츠의 시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캐나다와 뉴질랜드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다. 국제계관시인연합 한국위원회 사무국장과 한국 시 영역 연간지 <POETRY KOREA>의 편집을 맡았었으며, 충남대학교, 홍익대학교, 인천대학교 등에서 강의했다. 영미 시와 캐나다 문학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전공 저서로 ≪존 키츠의 시세계≫, ≪역설·공존·병치의 미학 : 존 키츠 시 읽기≫가 있고, 우리말 번역서로 ≪키츠 시선≫, ≪디킨슨 시선≫, ≪내 눈 건너편의 초원≫, ≪나의 안토니아≫, 영어 번역서로 ≪The Hunchback Dancer≫, ≪Dancing Alone≫, ≪A Poet’s Liver≫ 등이 있다. 또한 허난설헌 번역문학상, 세계우수시인상, 세계계관시인상을 수상했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말 시집(필명 : 윤꽃님)으로 ≪거미 배우≫, ≪무지개 꽃≫, ≪빛의 실타래로 풀리는 향기≫, ≪한 장의 흑백사진≫, ≪괴테의 시를 싣고 가는 첫사랑의 자전거≫가 있고, 미국에서 출간된 영어 시집(필명 : Myung-Ok Yoon)으로 ≪The Core of Love≫, ≪Under the Dark Green Shadows≫가 있다.
차례
독수리: 단편
금이 간 담장에 핀 꽃
바다 이무기
부서져라, 부서져라, 부서져라6
소네트
마리아나
연밥 먹는 사람들
합창
율리시스
티토노스
향긋하게 나직이
찬란한 빛이 내리네
눈물이, 부질없는 눈물이
더 이상 묻지 마세요
이제 진홍색 꽃잎이 잠들고
저녁에 우리는 들판을 지나갔네
오, 아가씨여, 내려와요
섈럿의 숙녀
모래톱을 건너며
모드
A. H. H.를 추모하며
서시
1∼131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1.
누군가가, “다른 친구들이 남아 있다”고,
“사별은 인류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흔히 있는 일이라는 것은 상투적인 말일 뿐,
낟알의 의미를 잘 드러내 주는 것은 빈 왕겨다.
-<A. H. H.를 추모하며> 중 한 편
2.
그대는 영혼과 그런 신용거래를 했는가?
그렇다면 세 배나 강력한 아편을 가져와,
잘못을 분별하지 못하는 감각을 마취시켜,
내 기쁨이 완전한 기쁨이 되게 하라.
-<A. H. H.를 추모하며> 중 한 편
3.
더 이상 묻지 마세요. 달도 바다를 끌어당기고,
구름도 하늘에서 몸을 구부려, 층층이 포개
산의 형태나 갑의 형태를 취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 너무나 좋아서, 언제 내가 그대에게 대답을 했나요?
더 이상 묻지 마세요.
-<더 이상 묻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