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러시아 여성 문학의 선구자, 톨스타야의 국내 최초 번역작
타티야나 톨스타야는 여성의 삶을 주제로 많은 작품을 썼지만, 여성 작가들의 작품 소재가 지극히 일상적인 미시 담론에 한정되어 있다는 편견을 깨는 작가다. 그녀의 작품 속 일상성은 현대 사회의 비인간적이고 비도덕적인, 소외된 삶을 반영한다. 이 책에서 그녀는 물질 우위의 현대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지난한 삶을 주요 소제로 삼아 부조리한 사회를 비판하고 있다.
타티야나 톨스타야의 대표 단편집 ≪오케르빌 강≫에 수록된 단편들 중에서 네 편을 실었다. <밤>은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는 한 정신지체를 가진 주인공을 통해 보편이라는 잣대에 의해 일방적으로 소외되어 타자로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삶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백지>는 인간과 인격이 사물화되는 현대의 인간 소외 현상을 첨예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삶의 중압감을 견디지 못하고, 인간의 최고 가치라고 할 수 있는 ‘양심’을 제거하는 주인공의 선택은 독자에게 비인간적 사회로 치닫고 있는 현실을 환기시키고 있다. <새와의 만남>은 순진무구한 아이의 눈을 통해 현실에 대한 환상과 꿈을 빼앗는 어른들의 비속함이 통렬하게 드러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매머드 사냥>은 삶의 의미를 남자를 통해서만 찾으려는 의존적인 여성들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그들이 잡으려는 것은 거대하고 육중하기는 하나 이미 멸종되어 버린 ‘매머드’에 불과하다는 설정은 타티야나 톨스타야의 작품 곳곳에서 만나는 칼날 같은 풍자의 백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식을만드는지식 고전선집>을 통해 처음으로 소개되는 타티야나 톨스타야의 작품이 독자들에게 현대 러시아 여성 문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200자평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되는 러시아 작가 타티야나 톨스타야의 대표 단편집. ≪오케르빌 강≫에 수록된 단편들 중에서 네 편을 실었다. ‘밤’은 엄마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는 한 정신지체를 가진 주인공을 통해 보편이라는 잣대에 의해 일방적으로 소외되어 타자로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삶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백지’는 인간과 인격이 사물화되는 현대의 인간 소외 현상을 첨예하게 보여주는 작품이다. ‘새와의 만남’은 순진무구한 아이의 눈을 통해 현실에 대한 환상과 꿈을 빼앗는 어른들의 비속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매머드 사냥’은 삶의 의미를 남자를 통해서만 찾으려는 의존적인 여성들에 대한 작가의 신랄한 비판을 담고 있다.
지은이
1951년 3월에 레닌그라드(지금의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문학적 자질을 키울 수 있는 배경에서 성장했다. 톨스타야의 할아버지는 20세기의 유명한 러시아 작가 중 한 사람인 알렉세이 톨스토이(1882/1883∼1945)이며 할머니는 시인인 크란디옙스카야다. 유명한 집안에서 태어난 톨스타야는 1974년 레닌그라드 국립대학 고전어문학부를 졸업하고, 단편 <황금빛 현관 계단에 앉아서…>(1983)로 문단에 정식 데뷔한다. 데뷔는 성공적이었으며 이후 몇 년 동안 톨스타야는 국내는 물론 외국의 비평가들로부터 새로운 러시아 문학을 선도하는 작가로 인정받았다. 톨스타야는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며 주옥같은 작품들을 선보였고 저널리스트, 각종 문학상의 심사위원, TV 프로그램 <스캔들 학교>의 공동 진행자로 활동했다. 또 미국으로 건너가 여러 대학에서 러시아 문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첫 장편소설인 ≪키시≫는 그녀의 존재를 다시 인식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이전의 모든 작품들이 재출간되는 현상을 빚기도 했다.
≪키시≫로 ‘제14회 모스크바 국제서적박람회’에서 소설 부문 ‘올해의 작품상’, ‘러시아 부커상’, ‘트리움프 문학상’을 받았다. 현재 톨스타야의 작품들은 영어를 비롯해서 독일어, 프랑스어, 스웨덴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출간되고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데뷔작 외에 단편집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1997), ≪자매들≫(1998), ≪오케르빌 강≫(1999), ≪밤≫(2001), 장편 ≪키시≫가 있다. 그 외에 ≪낮≫(2001), 나탈리야 톨스타야와 공저로 쓴 ≪두 사람≫(2001), ≪건포도≫(2002), ≪하얀 벽≫(2004)이 있다.
옮긴이
이수연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와 동 대학원 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러시아 국립과학아카데미 산하 문학연구소 ‘푸시킨스키 돔’에서 <튜체프의 자연철학시 연구>라는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 ≪튜체프 시선집≫, 논문으로 <포스트소비에트 여성문학에 나타난 고통과 구원의 시학>과 <타티야나 톨스타야의 ‘밤’ 고찰> 등이 있다.
차례
밤
백지
새와의 만남
매머드 사냥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알렉세이 페트로비치의 머릿속에는 자신만의 참된 세계가 있다. 그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반면, 바깥의 세계는 어리석고, 부정하다. 이 세계에서 좋고 나쁜 것을 구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 세상 사람들은 조건과 약속, 복잡한 규칙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들의 규칙에 따라 산다는 것은 알렉세이 페트로비치에게 어려운 일이다.
호숫가 건너편 기슭을 따라 흰옷을 입은 아줌마가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느릿느릿 걷고 있다, 부드러운 미소를 짓지만, 시선은 초점을 잃었고 표정은 더 없이 우울하다. 오래전 아줌마의 어린 딸이 호수에서 익사했다고 한다. 아줌마는 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
페차는 아줌마의 슬픔을 알고 불쌍한 마음이었지만, 타밀라가 어린 소녀는 물에서 익사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가라앉을 뿐이라고 말해 주어 조금은 안심이 되었었다. 아이들은 아가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에 빠진다 해도 물고기로 변할 뿐이라고 했다, 물론 즉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소녀는 은빛 물고기가 되어 헤엄쳐 다니고 있을 것이다. 머리를 수면 위로 내밀어 엄마를 부르고 싶지만, 목소리를 낼 수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