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의 원제는 ‘패셔닝 비엔나: 아돌프 로스의 문화비평’이다. 제목에 명확히 드러나 있듯, 이 책이 다루는 내용의 줄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세기말 빈의 상황을 ‘패션’이라는 관점에서 다루고, 다른 하나는 건축가이자 비평가인 아돌프 로스를 ‘문화비평’의 관점에서 새롭게 조명한다.
패션으로 분석한 세기말 빈
세기말 빈에 관한 저작들은 정신사와 문화사, 총체 예술의 도시, 문명과 사회, 언어ᐨ윤리ᐨ표상과 같이 광범위한 영역을 다루고 있지만 구체적인 얼개를 제시한 경우는 없었다. 1900년 전후(1880∼1920년)의 세기말 빈을 ‘세계 파괴의 실험장’이라 했던 크라우스(Karl Kraus)의 규정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는 예술, 철학 및 과학 등 상이한 영역들이 혼종적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조합과 분열’이 반복되는 통합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던 당시 빈의 독특한 상황 및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그 시절 빈은 합스부르크 왕조의 안정과 새로운 변화(모더니즘)의 교차, 과거와의 날카로운 단절, 주관정신과 객관현실(Wirklichkeit)의 불일치(Diskrepanz)가 야기했던 불안, 이로 인한 내적 존재의 발견과 신경과민 등이 뒤섞여 있었다. 또 경제발전과 찬란한 지적·문화적 삶이 부여한 명랑함[벨 에포크(Belle Époque, 아름다운 시절)]과 급격한 시대 변화로 인한 미래불안과 비관적 체념(데카당스)이라는 ‘양가적 감각’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기도 했다. 이처럼 복잡 다양한 분석 범주를 벗어나 저자 재닛 스튜어트는 자신이 살고 경험했던 도시 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았던 아돌프 로스의 시선을 짚어낸다. ‘패션’이란 용어는 의복 혹은 피복(Bekleidung), 작위성과 겉치레(드러냄과 감춤), 장식(Ornament) 등과 관련하여 시대에 대한 ‘비판의식’을 보다 분명히 드러낸다.
문화비평의 관점에서 조명한 아돌프 로스
지금까지 로스에 관련된 여러 연구는 ‘건축’ 영역에 한정되었다. 하지만 재닛 스튜어트는 로스의 비평 행위가 건축비평뿐 아니라 ‘문화비평’의 성격을 띠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이로써 ‘건축’이 하나의 특정분과가 아니라 그 자체로 시대를 읽는 ‘문화코드’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건축’은 한정된 영역으로 인식되지만 건축을 살피는 일은 ‘문화 그 자체’를 들여다보는 일이다.
재닛 스튜어트의 분석 과정은 (1) 로스 저작에 대한 탐구와 발굴, (2) 다른 것(혹은 타자성)에 대한 인식, (3) 자아의 문제, (4) 다름 혹은 차이, (5) 서사성으로 구도 잡혀 있다. 일련의 과정은 [타자를 통한] ‘변증법적 자기반성’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비평은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변증법적’일 수밖에 없다. 즉 자신이 처한 상황 혹은 주변세계(Umwelt)에 대한 ‘멈추지 않는’ 반성적 성찰이 바탕에 있다는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변증법은 고정된 도식이 아니라 ‘과정’인 동시에 ‘되어 감(Werden, 변화)’이다. 더구나 로스의 언설이 설득력을 발휘하는 이유가 [베냐민(Walter Benjamin)이 언급하기도 했던] ‘경험(Erfahrung)’을 바탕으로 한 서사성에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로스의 문화비평은 이를 종합적으로 보여 준다.
200자평
‘세계 파괴의 실험장’이라고까지 불린 세기말 빈을 ‘패션’이란 키워드로 해석해 낸다. 저자는 세기말 빈에서 명성을 떨친 건축가이자 그 시절 커피하우스에서 문화담론을 생성하고 이끌어 간 아돌프 로스(Adolf Loos, 1870∼1933)의 비평을 통해, 복식이 은유하는 가면의 기능, 복식에 의한 계층 구분, 복식의 변화에 따른 사회 변화를 짚는다. 아울러 ≪장식과 범죄≫로 널리 알려져 지금까지 ‘건축’ 영역에 한정되었던 로스 연구를 문화비평 영역으로 확장한다. 독자들은 그 시절의 ‘건축’이 그 자체로 시대를 읽는 ‘문화코드’였음을 알 수 있다.
지은이
재닛 스튜어트(Janet Stewart)는 ≪패셔닝 비엔나: 아돌프 로스의 문화비평≫(2000)과 ≪도시에서의 대중연설≫(2009)의 저자이며, 오스트리아와 독일 문학과 시각 문화, 문화 사회학 및 도시 역사에 관련하여 폭넓은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더럼대학교 예술인문학부 학장으로 재직 중이다.
옮긴이
건축 비평가. ≪건축평단≫ 편집장을 지냈으며, 대학에서 건축인문학, 건축비평, 건축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은 비평서 ≪꽃과 칼: 건축 아르고스≫(한국문화예술위원회 비평지원), ≪시티 몽타주≫(공저)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주세페 테라니의 단테움≫, ≪근대건축 이론: 역사적 탐구 1673-1968≫, ≪건축의 이론과 실천 1993-2009≫(공역)이 있으며, <비판적 글쓰기: 역사와 이론 사이에서>, <건축-인문학 논의에 관련한 비판적 소고> 등 다수의 논설이 있다.
차례
감사의 글
들어가며
1. 탐구하기와 발굴하기
원텍스트성
출간된 로스 텍스트 컬렉션
‘기록보관소의 어질러진 공간’
강연과 에세이
‘공연의 중대한 비결’
파라텍스트성
봄(seeing)에 관한 예증적 범주
로스 텍스트의 위치 찾기
자아와 타자의 변증법
이야기꾼
2. 다른 것−국가문화 신화론
미국: 영감의 원천
잉글랜드: ‘파괴에 기뻐하기’
고전적 고대성: ‘우리는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에서 고전주의자들이다’
독일: ‘돼지의 문화’
터키 그리고 발칸 국가들: 동양의 위협
일본: ‘납작해진 꽃들’, ‘납작해진 사람들’
파푸아뉴기니: 내면의 레드 인디언 극복하기
3. 자아−로스가 말하는 빈의 사회적 차이
소비의 영역
부르주아지
부르주아지와 귀족의 관계
고상함의 이상
귀족: 변화와 안정의 변증법
엘리트 소비
생산 영역
농민: 산업화 이전의 농촌 디스토피아
장인: 산업화 이전의 도시 유토피아
민주적 소비의 이상(理想)
대중 소비와 엘리트 소비 간의 긴장
4. 차이의 드러냄과 감춤
패션
표상 의복(Tracht, 민속의상)의 역할
숙녀복
영국 신사
5. 내러티브의 위치 찾기−도시, 그 인공물 및 명소들
실내로서의 도시
전시회 및 박물관
≪다른 것≫(1903)
<가정의 실내 둘러보기>(1907)
‘도시 투어’(1913∼1914)
교외로부터의 위협(1920년대)
맺으며
참고문헌
찾아보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여성복의 바탕이 되는 동기는 감춤(disguise)이라고 하지만, 이러한 감춤의 요점은 감추어진 것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것이다. 감춤은 드러냄의 도구가 된다. 에두아르트 푹스(Eduard Fuchs)는 “사람들이 자신의 신체 특정 부분을 가리게 된 것이 원래 본능적인 수치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오해라는 것은 (…)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보다도 우리는 의복이 장식과 치장으로만 기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라고 주장함으로써 이런 견해를 뒷받침한다.
-322~323쪽
로스의 사회·문화적 변화 모델에 따르면 사물의 형태 변화는 문화적 변화를 따라야 하기 때문에, 그는 사물의 형태를 직접 바꾸려는 시도에 비판적이다. 그는 ≪다른 것≫에서 안장 제작자에 얽힌 이야기를 활용하여 실용적인 지식이 없으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여전히 현대적인 형태를 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예술 공예 운동의 대표자들을 비판한다.(Loos 1903b: 1ᐨ2) 로스가 말하는 이야기 주인공인 안장 제작자는 자신이 제작한 제품이 정말로 현대적인 것인지 확인하고 싶어 자문을 구하기 위해 응용예술학교 교수를 찾았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정말로 현대적인 안장을 디자인하라는 과제를 내놓았다. 그는 [학생들이 제출한] 결과물에 흐뭇해하면서, 안장 제작자에게 제작된 물건들의 형태를 와서 보라고 일렀다. 안장 제작자는 그 디자인들을 주의 깊게 살핀 다음 그 교수를 돌아보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존경하는 선생님! 만약 제가 말 타기, 말, 가죽과 노동에 대해 당신만큼 아는 게 없었더라면 저 역시 당신만큼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했을 것입니다.”(Loos 1903b: 2) <절약에 대하여>에서는 이 이야기와 예술 공예 운동[의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여성복의 형태(Loos [1924] 1983: 213)를 연결한다. 안장의 형태가 그 장식적 기능에 종속된 것처럼, 여성의 몸은 예술 공예 드레스의 장식 기능에 종속된다. 두 경우 모두 디자이너의 실수는 내부로부터 디자인하기보다 외부로부터 디자인하려 한 것인데, 그 때문에 ‘자연스러운’ 형태가 옷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옷에 형태를 부과하는 것이다.
-332~333쪽
전시회는 현재[의 것]에 초점을 맞추고, 단 몇 달만 유지될 터이므로(Eco 1997b: 204) 덧없는 느낌이 특징인 반면, 박물관은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연속성의 감각을 특징으로 한다. 역설적인 것은 박물관은 변화를 문서화함으로써 영속성과 지속성을 내포하는 반면, 전시회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시간 속에 얼어붙은 도시의 스냅 샷으로서의 모습을 통해 변화를 분명하게 표현한다는 점이다.
-389쪽
이전에는 기념비적 건물을 둘러싼 건물은 스타일과 특성에서 물러나 있고 겸손했다. 그것들은 꾸미지 않은 도시 주택이었다. 하나가 말하면, 나머지는 침묵했다. 그러나 요즘은 화려한 건물들이 모두 비명을 질러 대는 불협화음을 만들어 내서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4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