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가능성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말은 성립 가능한가? 여기서 ‘남성’은 누구인가? 무엇이, 어떻게 ‘남성 페미니스트’를 만드는가? ‘남성 페미니스트’의 역할과 의무는 무엇이며, 그들의 위치는 어디인가? ‘남성’을 호명하고 그 역할을 고민하는 것은 옳은가? 이 책을 기획한 단체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과 저자들은 이러한 질문 사이를 오가며 막다른 길에서 균열을 내고자 노력해 왔다. 그리고 그 여정에서 만난 이들의 이야기를 한데 모아 책을 펴냈다. 지지부진하고 모순과 한계로 가득할지 모르는 이야기들 속에,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의 가능성이 있다.
페미니즘, 새로운 남성을 만들다
페미니즘은 그저 보편으로 여겨져 한 번도 낯설게 보기의 대상이 되어 본 적이 없는 남성 주체와 남성성을 다시 사유하게 한다. 그 결과, 기존의 모든 질서와 불화한 적 없던 남성들을 흔들어 깨운다. ‘나 정도면 괜찮지 않나’라는 안일함에서 벗어나게 한다. 그리고 기존의 질서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했던 주변부의 존재들에게 두 발을 딛고 설 곳을 제공한다. 그 과정은 결코 해방의 기쁨으로만 가득 차 있지 않다. 두려움, 분노, 외로움이 때로는 더 크다. 이 책에 담긴 목소리들이 말해 주듯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 길을 가고 있는 솔직한 목소리가 수면 위로 드러날 때, 그것은 단순한 토로가 아니라 일종의 길라잡이가 된다. 이 책이 누군가에게는 낯선 곳으로 발걸음을 뗄 용기가 되어 주는 것이다.
‘조립’을 멈추지 않기
페미니즘이 조립하는 남성에는 완성도가 따로 없다. 명확한 끝, 분명한 결과가 없는 지난한 여정이다. 변화와 그 가능성을 말하는 것이 쉽지 않은 때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냉소에 빠지기보다 각자의 위치에서 아주 작은 실마리라도 발견하고 놓치지 않으려 애써 보자. 누군가의 경험과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거기 비추어 자기 이야기를 길어 올리고 드러내는 것이 때로 그 일환이 될 수 있다. 『페미니즘, 남성을 조립하다』를 읽는 행위가 그 시작이 되길 바란다.
200자평
페미니즘을 경유해 자기 존재를 재구성하는 남성들, 페미니즘에 비추어 자기 자리를 찾는 남성들, 즉 남성 페미니스트의 ‘되어 가기’에 대한 기록이다. 남성 페미니스트라는 말이 성립하는지, 누구를 남성 페미니스트라 할 것인지, 이들의 역할은 무엇인지 하나씩 질문해 보자. 마침내 성별 이분법과 남성연대에 균열을 내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지은이
김선해
남성 페미니스트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사회학 연구자다. 안티 페미니즘 현상을 연구하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을 발견했다. 지금은 연구는 물론 운영위원으로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안티 페미니즘, 페미니즘, 남성이라는 이상한 삼각형을 그려내며 계속해서 글을 쓸 예정이다.
이한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가다. 성평등교육 활동가로도 일하고 있다. 서울시NPO지원센터의 활동가 연구지원사업 ‘활력향연’으로 남성 페미니스트 인터뷰를 시작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는 페미니스트의 모습을 기록하고 공유하며 연결하는 작업을 계속하고자 한다.
차례
남성 페미니스트가 바라보는 남성 페미니스트
1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이란 무엇일까?
2 남성 페미니스트를 만나 보자
페미니즘 리부트와 청년 남성
남성 페미니스트는 어디에 있을까
인터뷰는 이렇게 했다
3 우리는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나
이렇게 사람이 죽는구나
절교라는 매운 맛
먹잇감이 되는 삶
4 여성혐오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의 몸, 말, 태도에 주목하기
남성연대냐 고립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말 걸기를 포기하지 않기
5 ‘한남’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
진정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너는 남자라 이해하지 못한다
6 ‘남페미’에서 남성의 위치를 사유하는 페미니스트로
의문을 풀어 주는 열쇠
열쇠는 나를 면밀하게 바라보게 해 준다
남성의 위치를 전유하기
7 제언: 페미니즘, 남성을 조립하다
참고문헌
지은이의 말
책속으로
남성 페미니스트는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페미니즘을 ‘여성의 법적 권리 향상을 위한 운동’이라고 봤을 때, 여성과 남성의 동일 임금을 지지하는 남성은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을 젠더 권력과 그로부터 파생된 불평등에 대한 시야를 제공하는 인식론으로 바라봤을 때, 퀴어 운동에 참여해 온 남성은 페미니스트다.
– 15쪽
“학교가 정말 정글 같은 곳이잖아요. 특히 학교에서는 사람마다 각자의 성별이 정해져 있고 성역할을 수행하지 않으면 먹잇감이 된다고 느꼈어요. 처음에는 여기서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에 억지로 남성스럽게 행동하고 다녔는데, 제 자신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자각하고 나서는 ‘우리는 왜 이렇게 숨어 살아야 할까?’ 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 45쪽
인터뷰 참여자 대부분이 남성연대의 작동 방식이 ‘침묵’에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문제의식을 형성했다. 남성연대가 남성이 아닌 존재들의 배제로 형성되는 만큼, 소수자 배제가 자연스러운 분위기로 이해되는 것에 침묵하는 것은 남성연대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런 침묵을 깨뜨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해를 갖추고 이를 실천하고자 한다.
– 74쪽
그래서 우리에게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매몰되어 반성하거나 속죄하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위치를 성찰할 수 있는 공동체, 자신의 경험을 토로하고 해석할 수 있는 공동체, 그 안에서 실천과 의제를 발견하고 개진할 수 있는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러한 공동체가 꼭 ‘생물학적인’ 남성으로만 이뤄질 필요는 없다. 현재 필요한 것은 남성성과 남성을 페미니즘적으로 사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12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