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포의교집≫은 적어도 1866년 이후에 창작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문 소설이다. 작자는 미상이다. 규장각에 소장된 1책 필사본으로 유일본(古3477−8)이다. 책 크기는 32×20센티미터이며, 전체 84면이다. 매 면 10행이고 매 행 20자의 해서체로 필사돼 있다.
이 작품은 남녀 주인공의 결연 방식, 지기(知己)의 추구, 시사(詩詞)의 삽입 등에서 전기 소설의 창작 기법을 이어받았으면서도 전기 소설에서 벗어나 있다. 남주인공이 재자(才子)가 아니고 용모와 재주가 모두 보잘것없으며, 신분과 나이가 현격하게 차이 나는 기혼 남녀의 사랑을 담고 있으며, 지기를 욕망하는 주체가 남성이 아니라 하층 계층인 여성이며, 그러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결국 오해와 착각으로 어그러진다.
시공간도 극히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시간적 배경은 동치(同治) 갑자(甲子)인 1864년부터 병인(丙寅)인 1866년까지인데, 1866년(고종 3) 음력 3월에 운현궁에서 거행됐던 고종과 명성황후의 가례처럼 ≪포의교집≫의 사건이 당시 역사적인 사건의 시간과 일치하고 있다. 공간적 배경은 한양으로 설정하고 있다. 남녀 주인공이 만난 곳이며 작품의 주요 배경지가 된 곳인 중구 을지로 2·3가, 수표동, 장교동, 저동 2가에 걸쳐 있던 대전골[竹洞], 민궁이 있었던 안동, 초동, 도선암, 북한산의 승가사, 경모궁 등이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제시됐다.
또한 ‘기혼’ 남녀의 연애담을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생은 고향에 젊은 부인이 있는 유부남이고 양파도 유부녀다. 이 둘은 양파의 남편과 시아버지가 함께 기거하고 있는 집에서 만나고 사랑을 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알 정도로 감추지 않는 사랑을 한다. 양파는 이생과의 만남을 남편과 시아버지에게 들켰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들의 사랑을 지켜보는 주변인들의 시선도 오늘날 사람들이 생각하는 조선 시대 사람들의 모습과는 다르다. 당파는 이생과 양파가 기혼 남녀인 것을 알고도 둘의 만남을 돕고, 이생의 주변인들은 둘의 사랑을 부러워할 뿐 비난하거나 말리지 않는다. 더구나 양파의 시아버지는 며느리인 양파가 이생과 한방에 있는 것을 보고도 모른 체한다. 작가도 뛰어난 재능을 가진 양파가 변변찮은 이생과 사랑을 하고 지기를 만나는 것을 추구하는 것에 관심을 둘 뿐 양파의 행위를 비난하는 논조는 보이지 않는다.
200자평
이 책은 유부남과 유부녀의 막장 연애 스토리다. 규범을 중시하고 권선징악을 중시하는 유교 이념은 이미 없다. 양반님이 옳고 남자가 영웅이 되는 봉건주의 이념도 사라졌다. 이 소설 한 권에 근대화를 향해 달리는 19세기 조선 사회가 드러난다.
옮긴이
하성란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조선 후기 문학의 화폐 경제 반영 양상>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국 산둥성(山東省) 옌타이대학교(烟台大學校) 초빙교수와 고려대학교 BK21 한국어문학교육연구단 연구교수를 지냈고, 현재 동국대학교 조선 후기 야담집 정본화 연구단에서 전임 연구원으로 있으며, 강남대학교와 동국대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조선 후기 문학과 화폐 경제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매점매석의 문학적 형상화 방식과 그 인식>, <놀부 박사설의 성격과 화폐 경제 인식−퇴장화폐 문제를 중심으로−>, <포의교집의 삽입시 연구> 등의 논문을 썼으며 공저로 ≪우리의 옛 문화와 소통하기≫가 있다.
차례
포의교집
원문
부록
해설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정공보(鄭公輔)가 말했다.
“예로부터 천자가 필부를 사귀거나 대장군에게 읍객(揖客)이 있었다. 그런데 미인이 벼슬 못한 선비를 사귄다는 것은 듣지를 못했다. 양 소부는 과연 미인 중 의로운 기운을 지닌 협기 있는 인물이다. 게다가 한동안 낯빛이 변한 채로 있더니 잠시 고개를 떨어뜨리고 눈물을 흘린 것은 시간이 지나도 세속의 관례대로 대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