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칼라브리아의 왕은 시칠리아의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딸을 스페인 왕자와 결혼시키려 하지만, 공주는 정당한 왕위 계승자인 필래스터를 사랑하며 그와의 혼인을 통해 왕좌를 되찾고자 한다. 정치적 음모와 개인적 오해가 얽히며 극은 긴장감을 더해 가지만, 결국 모든 오해가 해소되며 행복한 결말로 이어진다.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빠른 전개 속도로 펼쳐지며, 때로 개연성을 뛰어넘는 독창적이고 낭만적인 스토리가 독자를 사로잡는다. 변장과 극적인 반전, 사랑과 욕정의 대비, 감상적이고 선정적인 요소는 당대 관객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보몬트와 플레처는 산문 로맨스라는 장르를 대중적인 드라마로 재구성하며 ‘비희극’을 탄생시켰다. 플레처는 자신이 시도한 새로운 문학 장르인 서정적 비희극을 “죽음에 근접하지만 죽음으로 결말을 맺지 않으며, 즐거움이나 죽음을 주제로 취하지 않는 장르”로 정의한다. <필래스터>는 왕위 찬탈, 시민 반란, 외국과의 정략결혼 등 제임스 1세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면서도, 비희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그 심각성을 완화한다. 이는 당시 정치적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다가 탄압받은 작가들의 사례를 고려한 선택이었다. 몇 년간 실험적인 시도를 거치며 관객의 취향 변화를 주도한 두 작가 덕분에 비희극은 이후 30여 년간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200자평
프랜시스 보몬트과 존 플레처는 17세기 초 영국에서 활동하며 <필래스터>, <처녀의 비극> 등 많은 걸작을 발표했다. 당대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인기와 명성을 누렸으며 사후에 전집이 출판된 몇 안 되는 작가였다. 〈필래스터〉는 두 작가가 대략 1608년 이후에 국왕 극단을 위해서 쓴 최초의 작품이라고 알려져 있다. 제임스 1세 시대 영국 사회를 반영하며, 당시에 드물었던 비희극 장르를 도입해 스튜어트 왕조 시기 연극에 큰 영향을 미친 작품으로, 영문학사상 특별한 가치를 지닌다.
지은이
존 플레처(John Fletcher, 1579~1625)
1579년에 태어나 1591년경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했다. 1607년에 그는 보몬트와 같이 벤 존슨의 희곡 〈여우 볼포네〉의 추천사를 쓰고 보몬트의 첫 희곡인 〈여성 혐오자〉를 손봐 준 것 같다. 첫 번째 희곡 〈헌신적인 양치기 처녀〉는 1607년경에 나왔으나 공연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1608년경 그가 29세였을 때 24세였던 보몬트와 함께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첫 공저 희곡인 〈큐피드의 복수〉는 블랙프라이어스에서 공연되어 성공을 거두었고 1609년경에 보몬트와 같이 쓴 〈필래스터〉는 당시 셰익스피어가 주주와 배우로 참여하던 극단인 국왕 극단에서 공연되었다. 1613년경 보몬트가 집필을 그만둔 후에도 플레처는 1625년경 사망할 때까지 셰익스피어, 필립 매신저, 윌리엄 로울리 등 당대 유명 작가들과 합작을 계속했고 셰익스피어가 은퇴한 후 런던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랜시스 보몬트(Francis Beaumont, 1584~1616)
1584년 법관의 아들로 태어나 옥스퍼드에서 수학했다. 플레처와 합류하기 전에 쓴 코미디 걸작인 〈불타는 절굿공이의 기사〉는 1607년 소년 극단에서 공연되었다. 플레처와 〈큐피드의 복수〉(1608), 〈필래스터〉(1609), 〈처녀의 비극〉(1611), 〈왕과 왕이 아닌 왕〉(1611), 〈여자의 전리품〉(1611) 등 합작품을 남겼다. 1613년경 유복한 상속녀와 결혼하며 은퇴했고 1616년에 사망해 웨스트민스터에 묻혔다.
옮긴이
최경희
최경희는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영어영문학 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 〈연극의 정치학: 셰익스피어의 후기 사극 연구〉를 비롯해 영국 르네상스 시기 희곡 작품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대표 논문으로는 〈근대 초기 직업 작가의 자의식적 글쓰기: 토머스 내쉬의 《피어스 페닐리스》를 중심으로〉, 〈기억과 망각의 정치학: 《헨리 4세》 1부에 나타난 국가 통합의 전략〉, 〈전쟁 드라마 《헨리 5세》에 나타난 계층 갈등과 이데올로기의 균열〉 등이 있다. 셰익스피어와 17세기 영문학 텍스트 단독 번역과 공동 번역에 참여했으며 역서로는 《헨리 5세》(도서출판 동인, 2014), 《네덜란드 매춘부》(지만지드라마, 2019) 등이 있다. 한국 고전르네상스 영문학회와 한국 셰익스피어학회 편집이사를 지냈고 중세근세영문학회의 상임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미래캠퍼스 영어영문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차례
필래스터 혹은 피 흘리는 연인
서문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4막
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디온 : 왕자님,
소신들은 왕자님 마음속에 있는
그 자질을 불러일으키려고 왔습니다.
일어나서 거사를 일으키십시오!
귀족이나 백성이나 전부 왕위를 빼앗은
현왕에 무감각해져서, 미덕이라는 것에 대해
들어 보거나 알고 있는 그 어떤 사람도
왕자님의 거사를 돕지 않을 것입니다.
_98쪽
아레투사 처녀가 깨끗한 명예를 지키며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산 사람들 사이에선 불가능해.
그들은 생각과 잘못과 공상을 먹고 자라서
진실로 만들어 버리고 중상모략을
먹고 크며 치욕을 먹고 살찐다.
만약 어떤 이가 그들의 혀로 공격해도
무너지지 않을 만큼 튼튼한 미덕을 지녔다면
온갖 수단을 다해서 침몰시키고 만다! 그렇게 패배하고
독으로 마음이 병들어, 고결한 명성이 깃들어 있는
기념비를 때려서 차가운 대리석이 녹아내리게 만든다.
_120쪽
필래스터 : 이 세상이 우리 모두를 지탱할 수 있겠소?
_180쪽
메그라 : 그런데 저만 영원히 수치심을 느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은
괜찮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왕족에겐 평민에게는 없는
고약이 있어 나쁜 평판을 좋게 만들어 준답니까?
_21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