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평
대다수 관객이 영화와 일차적 관계를 맺는 곳은 극장이다. 극장은 그것이 자리한 지역과 도시 그리고 지역민이자 관객과 연관을 맺으며 자신의 역사를 이뤄 왔다. 이 책은 기존 서울 중심의 역사 서술을 재고하고 지역성 규명을 목표로 한국 극장의 사회문화사를 탐구한다. 도시의 성격과 공간 변화의 맥락에서 극장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을 살펴보고 일상생활 세계의 경험 공간으로서 극장의 의미와 장소성을 기술한다. 극장 문화의 다층적 양상에 대한 이해는 지역의 대중문화 발굴과 문화적 정체성을 제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멀티플렉스 시대 개인과 공동체를 아우르는 대안적 영상 문화의 생산과 향유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시사점을 제공한다.
지은이
위경혜
순천향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학술연구교수다. 전남대학교에서 사회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하고 미국 텍사스주립대학교 영화학과에서 영화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Irvine) 동아시아문화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학했으며,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영상예술학과에서 영화영상이론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저서로 『혼종성 이후』(공저, 2017), 『한국의 근현대 통치질서와 지역사회의 대응』(공저, 2017), 『새만금도시 군산의 역사와 삶』(공저, 2012), 『호남의 극장문화사: 영화수용의 지역성』(2007), 『광주의 극장 문화사』(2005) 등이 있다. 논문은 “극장 문화의 지역성―한국전쟁 이후 대전을 중심으로”(2017), “인천의 극장 문화: 한국전쟁이후∼1960년대를 중심으로”(2016), “식민지 엘리트의 ‘상상적 근대’: ‘최남주’의 활동을 중심으로”(2015), “군민(軍民) 협동과 영화 상영: 강원도 ‘군인극장’”(2014), “식민지 근대문화의 혼종성: 1920년대 목포극장과 동춘서커스”(2013), “1950년대 ‘굿쟁이’ 이동영사: 유랑예인 연행과 시각적 근대의 매개”(2012), “한국전쟁 이후 극장 문화 로컬리티(locality): 강원도 도시를 중심으로”(2010), “한국전쟁이후∼1960년대 문화영화의 지역 재현과 지역의 지방화”(2010), “한국전쟁이후 1960년대 비도시 지역 순회 영화 상영: 국민국가 형성과 영화산업의 발전”(2008) 등이 있다.
차례
01 ‘최초’의 극장: 애관극장
02 ‘수도 서울’ 극장의 자존심: 단성사
03 일제강점기 도시와 극장: 군산극장
04 박람회와 동춘서커스: 목포극장
05 현존 유일의 단관 극장: 광주극장
06 실버 관객을 위한 ‘오래된’ 극장: 미림극장
07 군인과 지역민의 극장: 군인극장
08 순회 영업과 이동영사: 가설극장
09 예술·독립영화전용관: 강릉 독립예술극장 신영과 대구 오오극장
10 우리 동네 ‘마을 극장’: 작은 영화관
책속으로
이 책은 ‘지방’의 극장을 중심축으로 설정하여 한국의 극장 역사를 재구성했다. 이는 서울 중심 역사 기술의 일반화 오류를 극복하고, 전체 문화를 구성하는 개체로서 ‘지방’ 극장 문화의 다양성을 확인하며, 이를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재해석한 것이다. 나아가 관객 주체의 ‘지방’ 극장을 둘러싼 다양한 문화적 실천 양상 규명은 문화 향유 주체로서 지역과 지역민을 역사 서술(敍述)의 전면에 내세운다. 따라서 이러한 각 지역과 지역 간 극장 문화 전개의 독자성과 연관성을 포착하는 노력은 역사적 과정(historical process)으로써 영화와 사회 전체를 조망하는 작업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극장의 역사 쓰기” 중에서
항구 도시 특성상 일찍부터 유흥업이 발달한 군산은 1910년대 이미 경제 활동 여성 열 명 가운데 여섯 명 이상이 예창기작부(藝娼妓酌婦)로 일하고 있었다. 조선인이 빈곤할수록 유곽은 번창했다. 1930년대 세계 공황으로 산비탈 조선인들이 하루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권번(券番)이 벌어들인 하루 평균 수입 33원은 경성의 백화점 점원 월급 30원보다 많았다. 소비 능력이 있는 기생이 극장을 찾는 것은 당연했다.
“일제강점기 도시와 극장: 군산극장” 중에서
1960년대 후반 오일장 관습이 여전히 일상생활을 지배한 지역에서 거주한 관객들은 ‘장날’ 읍내에서 각자 일을 마치고 군인극장에 들렀다. 일례로, 육군 3군단 수송부는 원통리에서 2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인제읍 가아리 상촌과 같은 오지 마을까지 차량을 보냈고, 트럭을 이용한 지역민들은 군인극장인 설악극장에서 ‘극장 구경’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관객들은 1960년대 후반까지 설악극장 무대에 오른 국극(國劇)과 악극(樂劇) 공연을 관람하는 한편으로, 영화를 보면서 신문물을 경험했다. 지역민들은 집으로 향하는 길에 다시 군부대 트럭을 이용했는데, 이때 극장 입장표는 승차권을 대신했다. 요컨대, 군인극장은 강원도 비도시 지역에서 군(軍)이 주관하고 민(民)이 함께한 군민(軍民) 협동의 문화 공간이었다.
“군인과 지역민의 극장: 군인극장”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