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매우 낯설고 독특한 공자와 논어 이야기
공자의 벼슬 욕망이 행정을 지배행위로 만들고
공자의 상하질서 강박증이 위계적 관료제 낳아
행정의 공공화 과제, 욕망·강박 해체해야 풀려
공자에게 벼슬은 삶의 전부였다. 그리고 신념이자 욕망이었다. 15세에 벼슬에 뜻을 두고 공부를 시작해서 73세로 죽을 때까지 공자는 벼슬을 위한 공부를 하거나, 벼슬을 하고자 하는 제자들을 가르쳤다. 공자에게 가장 군자적인 사람은 벼슬욕망이 가장 강한 사람이다.
공자는 상하질서 강박과 호학·정확 강박증을 가진 사람이다. 공자는 사람을 평가할 때 서로 비교하여 상하로 서열화한다. 예(禮)에 대한 강조도 상하질서 강박에서 나왔다. 예는 상하 신분적 구별을 규정하는 구체적 행동 규칙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앉는 자리가 ‘정확하게’ 자신의 자리가 아니면 앉지 않았고, 잠도 엎드리지 않고 반듯하게 누운 자세로 잤다. 공자는 음식의 빛깔과 냄새 그리고 조리된 상태에 대해서도 민감했다. 그 음식에 어울리는 간장이 꼭 있어야 했고, 식재료는 제철로 된 것들만 요구했다. 심지어 고기가 나올 때는 모양이 반듯하게 썰어져 있어야만 먹었다.
정치와 사회 그리고 행정이 서구화된 지금, 공자의 벼슬 욕망은 유교적 전통유산으로 전래되어 아직까지도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유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가는 충이나 효와 같은 유교적 가치나 제도를 얼마나 보존하고 있는가보다는 공자의 벼슬 욕망을 얼마나 강하게 간직하고 있는가 등으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공자의 벼슬 욕망이 행정에서 작용한다면, 행정 관료는 벼슬하는 지배자(君子)가 되고 일반 시민은 지배받는 민(民)이 된다. 그래서 행정은 일종의 ‘지배’ 행위가 되고, 시민은 행정으로부터 받은 지시와 명령 등을 실천하는 수동적 존재가 된다. 행정 관료와 일반시민 간에 정치적 ‘신분’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행정 관료는 가장 선망하는 직업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민주주의와 민주행정이 그 실행에서 왜곡이 되는 것은 ‘공자의 벼슬 욕망’이 제도와 가치의 이면에서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자의 상하질서 강박은 맹목적 서열화와 지나친 경쟁 혹은 성공 제일주의를 생산한다. 행정조직에서는 공무원들이 승진에 목을 매는 승진 제일주의의 병폐를 낳게 하고 있다. 상(上)은 하(下)를 돌보는 대신, 하가 상을 ‘모셔야’ 하는 것이 한국 행정 조직의 현실이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계급제적 공무원 인사제도가 실시되고 있지만 공무원의 계급이 신분화 되지는 않는다. 유독 한국 행정에서만 상하 위계적 관료제가 직무적 서열이 아닌 신분적 서열로 작용된다.
우리가 논어에서 공자의 벼슬 욕망과 강박증을 읽는 이유는 현재 우리 속에 있는 벼슬 욕망과 강박 무의식 을 찾아 해체시키기 위해서다. 우리가 평등하고 민주적 사회를 추구한다면, 또 행정이 시민들에게 보다 봉사적이길 바란다면 우리 안에서 활동하는 공자의 벼슬 욕망과 상하질서 강박 등은 당연히 해체되어야 한다.
행정이 특정 정권의 정치적 도구가 되는 것을 넘어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라는 본질적 측면에서 공공성을 확보하는 문제는 대단히 중요하다. 오랜 권위주의 정권 아래 있었던 우리나라 행정에서 공공화(publicization) 과제는 더욱 절실한 실정이다. 저자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인사행정이 어떻게 공무원을 “정치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했는가를 들여다보면서, “선공후사(先公後私)”가 강조되었던 조선시대 유교적 행정에 관심을 가졌다. 이때부터 논어를 읽기 시작해 28년 만에 행정학자의 눈으로 본 ‘공자와 논어’ 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책은 공자와 논어에 대한 통상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과감한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우리에게 매우 낯선 공자와 논어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행정학을 공부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유학을 공부하는 사람, 동양 고전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도 공자와 논어를 새롭게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200자평
학식과 덕망 높은 사상가 ‘공자’를 벼슬 욕망이 가득한 사람, 동양 최고의 고전 ‘논어’를 벼슬입문서라고 평가한다면 반발이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공자와 논어에 대한 통상적인 해석에서 벗어나 과감한 논쟁거리를 제공한다. 우리에게 매우 낯설고 독특한 공자와 논어를 만나게 하는 것이다. 행정학자인 저자는 조선시대의 유교 행정을 알기 위해 논어 공부를 시작했다가 논어에 숨어 있는 복잡한 퍼즐을 발견하고 28년만에 마지막 퍼즐을 완성했다. 공자의 욕망과 강박이 한국 행정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 우리나라 행정의 공공화와 민주화는 어떻게 달성 가능한지를 함께 짚어본다.
지은이
정성호
경기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정치외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의 델라웨어대학(University of Delaware) 정치학과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한국 행정과 행정이론을 중심으로 행정학을 연구를 했으며,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의 이론으로 한국 행정과 한국의 행정학을 설명하는 논문들을 발표했다. 최근에는 시민민주주의 시대의 행정(학), ‘그리움의 행정학’에 대한 사색을 하고 있으며, 동양고전들을 행정학적으로 읽고 해석하는데 관심이 많다. 박사학위 논문은 “Politics of Civil Service Reform: The First Attempt to Establish a Higher Civil Service in the Eisenhower Administration, 1953-1961”이다. 주요 논문으로는 “한국행정 연구에 있어 문화심리적 접근의 평가”(1991), “한국 인사행정의 정치이론적 방향모색”(1993), From Imitation to Creation: Public Organization Research in Korea, 1967- 1996(1998), “21세기 한국행정의 업무수행가치 모색”(2001), “한국행정학의 근대성: 담론분석”(2001), “Machiavelli의 군주론과 Ego중심적 통치”(2002), “한국의 행정언어와 정부간의 인사교류 딜레마”(2004), “Reading Korean Public Administration: An Application of Lacanian Four Discourses”(2007), “미국 정치적 임용제도의 특징과 쟁점” (2008), “공무원과 정치: 정치적 중립과 정치참여”(2009), “‘행정학의 한국화’에 대한 정신분석적 사색”(2013), “민주주의와 관료주의: 내 행정학의 오래된 미래”(2018) 등이 있다.
차례
머리말: 어떻게 논어와 라캉이 한국 행정과 만났을까
01 논어와 라캉, 그리고 행정학
라캉의 주체 ; 소외, 분리, 욕망
라캉으로 행정학 하기
라캉으로 논어읽기
참고문헌
02 논어를 읽는 세 가지 방법
전통적(종교적) 독법 ; 유교적 인간되기
행정학자의 논어읽기 ; 골동품 쇼핑하기
– 부분적 · 선택적 독서
– 활용성의 논쟁
– 자기 생각 담기
그림퍼즐 맞추기식 논어읽기
– 온전한 공자 찾기
– ‘벼슬’ 그림으로 읽기
– 논어의 시간 ; 벼슬은 계급이며 신분이다
– 공자의 세계 ; 벼슬은 신성한 사명이다
참고문헌
03 공자의 벼슬욕망
한국 행정의 유교적 전통 유산
공자의 벼슬 신념
– 대의적 사명 ; 천명세상의 관리자
– 개인적 의미 ; 계급적 신분유지
벼슬거취의 원칙
– 방무도(邦無道)에 벼슬하지 않고 방유도(邦有道)에서 벼슬한다
– 벼슬(자리)에 대한 욕심은 없어야 한다
– 벼슬은 구하는 것이 아니다 군자가 알아보고 등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공자의 벼슬욕망 읽기
공자의 벼슬욕망과 한국 행정
참고문헌
04 공자의 상하질서 강박
공자의 걱정, 난(亂)
강박의 원천 ; 천명신앙(사상)
공자의 상하질서 강박신경증
– 상하적 명분질서 강조 ; 정명론(正名論)
– 예 강조 ; 복례론
– 사람에 대한 상하 서열화
공자의 상하질서 강박과 한국 행정
참고문헌
05 공자의 정확 · 호학 강박
주인기표(S₁)로서의 천명과 공자의 정확 강박
공자의 중용사상
공자의 호학사상과 호학 강박
– 공자학습의 내용 ; 온고이지신
– 공자학습의 핵심요소들 ; 취유도이정
– 학습자의 자세 ; 절차탁마
– 호학의 의미 ; 하학상달
– 호학의 사례 ; 안연
공자의 정확 · 호학 강박과 한국 행정
– ‘받아쓰기’와 명령복종의 행정
– 미국 모방의 행정학과 행정개혁
– 학력 경쟁주의와 공부 강박적 시험제도
참고문헌
06 공자의 ‘계급적’ 몸
공자의 학문 ; 위기지학
수신론 ; ‘군자적’ 몸 만들기
– 수신의 의미
– 수신의 방법
– 세 가지 몸 ; 군자, 소인, ‘사이비’ 군자
군자의 역할과 ‘군자적’ 몸
– 군자의 양가적 역할 ; 사(事)와 사(使)
– ‘군자적’ 몸의 양가성 ; 상하 계급적 몸
‘군자적’ 몸의 실례 ; 공자의 몸
– 공자 몸의 양가성
– 공자 몸의 ‘계급적’ 외관 ; 복장
– 공자 몸의 강박적 ‘반듯함(正)’ ; 식사와 기타 생활
한국 행정의 ‘공자적’ 몸
– 한국사회의 공자적 몸만들기
– 우리 사회의 계급놀이
참고문헌
책속으로
라캉으로 논어를 읽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나? 공자의 무의식을 읽는다는 것이다. 공자를 우리와 같이 의식과 무의식을 가지고 욕망하는 ‘주체(subject)’로 보고 그의 욕망과 강박, 그리고 그의 무의식의 언어를 형성하는 기표들을 읽는 것이다. 또한 공자의 사상을 읽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는 공자의 벼슬욕망을 읽을 때에는 그의 벼슬신념과 원칙들을, 상하질서 강박에서는 정명론과 복례론을, 정확·호학 강박에서는 중용사상과 호학론을, 공자의 몸을 읽을 때에는 그의 수신론을 살펴볼 것이다.
_“01 논어와 라캉, 그리고 행정학” 중에서
유교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논어읽기를 통해 현재의 질서나 권력을 정당화하기보다는 현재의 행정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가? 논어독서를 통해 우리 자신 속에 살아 있는 ‘공자’를 보다 잘 파악할 방법은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논어를 그림퍼즐 맞추기식으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_“02 논어를 읽는 세 가지 방법” 중에서
공자에게 벼슬은 삶의 전부였다. 15세에 벼슬에 뜻을 두고 공부를 시작해서 73세로 죽을 때까지 공자는 벼슬을 위한 공부를 하거나, 벼슬을 하고자 하는 제자들을 가르쳤다. 공자의 벼슬 욕망은 두 얼굴을 갖는다. 벼슬을 해서 사람들로부터 지배자로 인정을 받고자하는 ‘지배’ 욕망과 지배자를 인정함으로써 지배자로부터 시혜를 받고자 하는 ‘혜택’ 욕망이다.
_“03 공자의 벼슬욕망” 중에서
공자의 정명론은 당시 흐트러진 신분의 상하질서, 즉 명분 질서를 원래대로 바로 잡는다는 뜻이다. 공자의 정명론은 천자, 제후, 경대부와 사 및 민의 신분들이 상하로 배치되어 각자 자신의 자리를 지킬 때만이 천명의 질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공자의 상하질서 강박은 사람에 대한 평가에서도 나타난다. 공자는 학습 능력에 따라 사람을 상하 네 등급으로 나눈다.
_“04 공자의 상하질서 강박” 중에서
공자는 바르게 썰지 않은 고기는 먹지 않았고, 그 음식에 맞는 간장이 없으면 먹지 않았다. 음식의 맛과 모양의 ‘정확함’을 추구했다. 공자는 앉는 자리나 잠자리에서도 ‘정확함’과 반듯함을 추구한다. 앉는 자리가 ‘정확하게’ 자신의 자리가 아니면 앉지 않았고, 잠도 엎드리지 않고 반듯하게 누운 자세로 잤다.
_“05 공자의 정확·호학 강박” 중에서
공자가 군자에게 요구하는 역할과 몸은 양가적이다. 모시는(事) 자에게는 몸을 구부리는 경함을, 그러나 부리는(使) 자에게는 반대로 몸을 세우는 엄함을 요구한다. … 국정감사장에서 국회의원들의 몸이 ‘엄’일 때 공무원의 몸은 ‘경’이다. … 우리 몸의 ‘탈’공자화가 진행되어야 비로소 우리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나오는 계급적 사고와 행동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있다.
_“06 공자의 ‘계급적’ 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