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비자≫는 전국시기에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저작이다. 한비가 활동했던 시대인 전국시기는 중국 역사상 강대한 제후국들이 서로 정벌 전쟁을 일삼은 혼란의 시기였다. 또 각국에서는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아들이 부친을 살해하는 등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런 시기에 한비의 조국 한나라는 늘 외세의 침략을 받아 쇠퇴 일로를 걷고 있었다. 한비는 기존 사고방식과 체제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해 법치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
한비의 핵심 주장은 법(法)·통치술[術]·권세[勢]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다. 이 중 법에 따른 다스림은 상앙(商鞅)의 영향을 받았고, 통치술에 따른 다스림은 신불해(申不害)의 영향을 받았고, 권세에 따른 다스림은 신도(愼到)의 영향을 받았다. 한비의 주장이 이들과 다른 점은, 상앙·신불해·신도는 각각 법·통치술·권세로만 다스리려고 생각했을 뿐 다른 요소들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들의 한 가지 주장만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고 불안한 것이었다. 한비는 이들의 법·통치술·권세를 유기적으로 결합해 하나의 진일보한 법치 체계를 만들었다.
≪한비자≫ 55편의 내용은 대략 열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 각종 세태를 비판하고 법치를 주장했다. 둘째, 제위를 찬탈하려는 간신들의 은밀한 활동과 궁정 내부에 잠재된 위험을 분석했다. 셋째, 한비의 정치적 경험과 주장들을 반영했다. 넷째, 군주가 나라를 세우는 방법을 기술해, 한비의 법치 주장과 이를 실현하는 방법을 서술했다. 다섯째, 선진 제가들의 학술 주장을 비판하며 사상 통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했다. 여섯째, ≪노자≫ 혹은 황로(黃老) 사상을 해설하며 자신의 관점을 기술했다. 일곱째,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반박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논리적으로 기술했다. 여덟째, 많은 역사적 이야기와 민간 전설을 들어 법·통치술·권세가 결합된 법치 이론을 기술했다. 이 부분은 문장이 생동적이고 문학성이 뛰어나다. 아홉째, 한비가 수집한 원시 자료로 자신의 법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인용했다. 열째, 한비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했다.
200자평
진시황제는 법가 사상을 기초로 부국강병책을 시행해 춘추전국시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진시황제도 반한 인물, 한비는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사상가로 명성을 얻었다. 유가를 배척하고 공정한 법 집행을 통한 다스림을 추구한 한비의 글을 엮은 ≪한비자≫는 훗날 중국의 지도자들이 즐겨 읽고 통치에 활용한 책이다. 사상뿐만 아니라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가치가 있다.
* ≪한비자≫ 전체 55편을 1∼3권으로 나누어 출간했습니다. 그중 1권은 1편부터 29편을, 2권은 30편부터 35편을, 3권은 36편부터 55편을 수록했습니다.
지은이
한비는 법치로 세상을 다스릴 것을 주장한 전국시기 한(韓)나라의 사상가다. 왕실 공자 출신으로, 말을 더듬거렸다고 한다. 진(秦)나라의 승상 이사(李斯)와 함께 순황(荀况), 즉 순자(荀子)에게서 학문을 배운 적도 있었다. 성악설(性惡說)에 근거한 그의 주장은 스승 순자의 영향을 받은 바 컸다.
한비의 조국 한나라는 국력이 약해 수시로 진(秦)나라의 침략을 받았다. 그는 군주에게 누차 부국강병책을 올리기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난언(難言)>과 <화씨(和氏)> 등을 써서 한나라 군주에게 법과 통치술로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음을 설파했다. 당계공(堂谿公)이 한비에게, 강력한 법치를 펼친다면 몸이 위태로워질 수 있음을 지적하며 지혜를 숨기고 인의를 행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한비는 법치만이 백성을 위하는 길이라고 믿고 그의 말을 거절했다. 한비는 한나라 군주가 법치를 행하지 않고, 농사짓고 전쟁하는 사람을 격려하지 않고, 허황된 말과 유가의 말을 믿는 것에 분개했다. 이런 세태를 보고 <고분(孤憤)>·<세난(說難)>·<오두(五蠹)> 등 ≪한비자≫를 대표하는 글을 썼다.
한비는 한나라 군주 안(安)이 즉위하자 중용되었다. 안은 즉위한 이듬해인 기원전 237년에 한비와 진나라를 물리칠 방안을 생각했다. 안 5년(기원전 234)에 훗날의 진(秦)나라 군주가 되는 영정(嬴政)은 한비가 쓴 <고분>과 <오두> 등을 보고 “아,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 교류할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라고 감탄했다. 진나라는 한비를 얻기 위해 한나라를 공격했다. 한나라는 한비를 사신의 자격으로 진나라로 보냈다. 한비는 진나라에 도착해 진나라 군주에게 한나라를 쳐서는 안 되는 이유를 담은 글을 올렸으나 동문수학한 이사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여기에 한비가 진나라 군주 면전에서 총신 요가(姚賈)를 비판했다. 이사와 요가는 합심해 한비를 한나라의 간첩이라고 모함했다. 진나라 군주는 이 말을 믿고 한비를 체포해 감옥에 가두었다. 이사는 한비에게 독약을 보내 한비에게 자결할 것을 강요했다.
한비는 진나라 군주에게 자신의 결백을 알리고 싶었으나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얼마 후 진나라 군주는 후회하며 한비를 사면하려고 사람을 보냈지만 한비는 이미 옥중에서 숨을 거둔 후였다.
옮긴이
권용호는 경북 포항 출생으로 중국 난징대학교 중문과에서 고전 희곡을 전공했으며, 위웨이민(兪爲民) 선생의 지도 아래 ≪송원남희곡률연구(宋元南戱曲律硏究)≫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동대학교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중국 고전 문학의 연구와 번역에 힘을 쏟고 있다. 특히 거시적 관점에서의 중국 문학 연구와 중국학의 토대가 되는 경전의 읽기와 번역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저서로는 ≪아름다운 중국 문학 1≫, ≪아름다운 중국 문학 2≫, ≪중국 문학의 탄생≫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중국 역대 곡률 논선≫, ≪송원 희곡사≫, ≪중국 고대의 잡기≫(공역), ≪초사≫, ≪장자 내편 역주≫, ≪그림으로 보는 중국 연극사≫, ≪꿈속 저 먼 곳−남당이주사≫(공역), ≪서경≫ 등이 있다.
차례
제36편 난일(難一)-옛 이야기를 반박함 일
제37편 난이(難二)-옛 이야기를 반박함 이
제38편 난삼(難三)-옛 이야기를 반박함 삼
제39편 난사(難四)-옛 이야기를 반박함 사
제40편 난세(難勢)-권세를 밝힘
제41편 문변(問辯)-변론을 묻고 답함
제42편 문전(問田)-전구(田鳩)에게 물음
제43편 정법(定法)-법으로 제정함
제44편 설의(說疑)-신하들의 간교한 행위를 설명함
제45편 궤사(詭使)-법치의 원칙에 어긋남
제46편 육반(六反)-거꾸로 된 여섯 가지 현상
제47편 팔설(八說)-나라를 어지럽히는 여덟 가지 언행
제48편 팔경(八經)-나라를 다스리는 여덟 가지 법도
제49편 오두(五蠹)-나라에 해를 끼치는 다섯 가지 좀
제50편 현학(顯學)-유가와 묵가를 비판함
제51편 충효(忠孝)-선왕들의 충효를 비판함
제52편 인주(人主)-군주가 해야 할 일
제53편 칙령(飭令)-명령을 바르게 함
제54편 심도(心度)-민심과 법도
제55편 제분(制分)-상과 벌의 경계를 구분함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평범한 군주는 위로는 요와 순에게 미치지 못하고 아래로는 걸과 주 같은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이 법을 지키고 권세를 부린다면 나라는 잘 다스려질 것이고, 법을 어기고 권세를 버려둔다면 나라는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지금 권세를 버려두고 법을 어기면서 요와 순을 기다린다면, 설사 요와 순이 나타나 나라를 다스린다 해도 천 세대의 혼란을 겪은 후에나 한 세대의 다스림이 있을 것이다.
-843~844쪽
유가가 숭상하는 은나라와 주나라는 지금으로부터 칠백여 년이나 되었고, 묵가에서 받드는 우나라와 하나라는 지금으로부터 이천여 년이 되었으니, 유가와 묵가가 선양하는 주장을 검증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삼천 년 전 요와 순의 도를 알고자 하는 것은 생각해 보면 검증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로 검증하지 않고 사물을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사물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확정할 수 없는데 이를 근거로 삼는 것은 속이는 것이다.
-99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