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한흑구’는 수필 <보리>를 쓴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시인으로서 한흑구는 낯선 면이 있다. 그러나 그는 16세에 이미 ‘시’를 쓰려고 갈망했던 학생이었다. 즉 그의 문학 세계의 근원은 ‘시’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그 스스로도 “수필의 정신은 시의 정신으로서 창작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한흑구의 문학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아버지 한승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한승곤은 기독교적 민족주의자로 우리나라 초기 기독교사에 굵직한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일제가 데라우치(寺內正毅) 총독 암살 모의 사건을 조작해 105명의 애국지사를 투옥한 ‘105인 사건’ 여파로 미국으로 이주한다. 이후 안창호가 조직한 흥사단의 의사장을 맡으며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한흑구는 이런 아버지의 영향을 깊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보성전문학교를 다니던 한흑구는 스무 살에 아버지가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5년간 체류하면서 흥사단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했다. 교민 단체 ‘국민회(國民會)’의 기관지인 ≪신한민보(新韓民報)≫에 조국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시 <그러한 봄은 또 왔는가>를 발표한 것을 시작으로 ≪신한민보≫와 흥사단 계열의 잡지 ≪동광(東光)≫, 미국 유학생들의 잡지 ≪우라키(The Rocky)≫에 시와 번역시, 평론, 소설을 발표하며 활발한 창작 활동을 했다. 대부분의 작품 행간에 식민지로 전락한 조국의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독립을 갈망하는 심정이 배어 있다.
귀국하여 창작 활동을 하던 그는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기소되어 고초를 겪은 후 고향 평안남도로 귀향한다.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지고 예술가들이 친일 대열에 합류했지만 그는 회유와 압박에 요지부동이었다. 한흑구는 “단 한 편의 친일 문장도 쓰지 않은 영광된 작가”(임종국, ≪친일문학론≫)라고 일컬어진다.
한흑구의 시가 초기에는 타지에서 고국의 식민지 현실을 개탄하며 그곳에 닿을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통한 마음을 담았다면 이후에는 타지에서 겪는 고독과 슬픔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같은 고독과 유한적인 존재에 대한 인식은 ‘사막’이라는 자연 공간에서, 살아 있는 존재만이 지닐 수 있는 열정과 의지로써 극복하고 승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가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 <동면>에는 “나는 봄이 오기를 바라며/ 머구리와 같이 冬眠을 계속한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가 처음 발표한 시에서처럼, 마지막 시 역시 ‘봄’에 대한 갈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봄이 또 왔는가>에서 시적 자아가 자신의 비애감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었다면, <동면>에서는 자아 스스로가 자청해 겨울잠에 들어가는 자세를 보인다. 이는 그가 시를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것과도 연결되는 면이 있지만, 무엇보다 자발적으로 ‘봄’을 기다리는 자세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미래에 대한 의지를 선연하게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이 책 소개는 ≪초판본 한흑구 시선≫의 해설과 김도형 논문 <송도 바다 위에 시를 쓴 검은 갈매기>를 참조해 작성했습니다.)
200자평
수필 <보리>의 작가로 더 유명한 한흑구. 그러나 스스로도 “수필의 정신은 시의 정신으로서 창작되어야 할 것이다”라고 할 정도로 그의 문학 세계는 ‘시’에서 시작한다. 식민지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독립을 갈망하는 비애감에서 출발한 그의 시는 “사람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인 질문으로 연결되고, 점차 ‘자연’에 대한 관심과 이를 통한 생의 통찰로 나아간다.
지은이
한흑구(1909∼1979)는 1909년 음력 6월 19일 평양 하수구리에서 아버지 한승곤과 어머니 박승복의 1남 3녀 중 독자로 태어났다. 본명은 세광(世光)이다. 1928년에 숭인상업학교(崇仁商業學校)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普成專門學校) 상과에 입학했으며, 1929년에 도미해 시카고 노스파크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이때 캐나다 여행을 다녔으며, 1930년 ≪우라키≫에 ‘쉬카고 한셰광’이라는 이름으로 <그러한 봄은 또 왔는가>라는 시를, 이후 홍콩에서 발간되던 ≪대한민보≫에 시와 평론을 다수 발표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동광≫에 시 <밤 전차 안에서>, 번역시 <조선의 가을>, 단편 소설 <호텔 콘>, 평론 <미국 니그로 시인 연구> 등 다수를 발표했다. 1932년에는 필라델피아 템플대학 신문학과로 전학했다.
1934년에 모친이 위독해 귀국했는데, 이때 모친이 별세한다. 종합지 ≪대평양(大平壤)≫(1934)과 문예지 ≪백광(白光)≫을 창간 주재했으며, 동인지에 영시를 쓰고 필라델피아의 신문에 동양 시사평론을 기고했다. <어떤 젊은 예술가(藝術家)>(1935)·<사형제(四兄弟)>(1936) 등 소설을 여럿 창작하고 시작과 번역·평론을 병행했다. 1937년에는 이화여전 출신의 방정분과 결혼했으며, 이듬해 장남 동웅이 출생했다.
1939년 흥사단 사건에 연루되어 1년 동안 투옥되었다. 이를 계기로 글을 거의 발표하지 않았으며, 시의 경우 1940년 6월 ≪시건설≫에 <동면>을 마지막으로 발표하게 된다. 1940년에는 차남인 동명이 출생했다. 광복 후 1945년 월남해 수필 창작에 주력하면서 1948년에 서울에서 포항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이 무렵부터 <최근의 미국 문단>(1947), <이마지스트의 시 운동>·<흑인 문학의 지위>(1948), <윌터 휫트맨론(論)>(1950) 등 미국 문학과 그에 대한 작가론으로서 평론을 발표했다. 흑인의 시를 번역하고 소개했다는 점에서 그의 평론 활동 역시 주목할 만하다.
수필로는 <하늘>·<바다>·<사랑>(1949), <눈>·<보리>(1955), <노년(老年)>(1965), <갈매기>(1969), <겨울 바다>·<석류(石榴)>(1971), <들 밖에 벼 향기 드높을 때>(1973), <흙>(1974) 등 100여 편이 있다.
저서로는 선문사에서 출간한 ≪현대 미국 시선(現代美國詩選)≫(1949) 편역본이 있으며, 수필집 ≪동해 산문(東海散文)≫(1971)과 ≪인생 산문(人生散文)≫(1974)을 각각 일지사(一志社)에서 출간했다. 1958년부터 포항 수산초급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다가 1974년 같은 대학에서 정년 퇴임했다. 이후로도 꾸준히 수필을 발표했으며, 70세가 되던 해인 1979년 11월 7일에 타계했다.
엮은이
이재원(李在苑)은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 과정에 재학 중이다. 2012년에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이름을 찾는 주체들의 문장-신해욱, 이근화, 심보선의 시를 중심으로>가 당선되어 현재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차례
그러한 봄은 또 왔는가
밤 電車 안에서
젊은 날의 詩
나이아가라 瀑布여!(草稿)
내 맘의 촛불
잠 깰 때(小謠)
故×
낯서른 거리
異邦에 와서
思鄕
헏손 江畔
甲板 우에서
흙의 세계
逐出 命令
맘대로!
꽃 파는 處女
死地로부터
삶의 철학
子正의 平壤
자연·인생
文明
작은 감정
한 줄의 기억
遺言
밤의 沙漠
自然의 노래
에덴(EDEN)
님은 나의 산 詩
破約
꽃과 沙漠
쉬카고(CHICAGO)
가신 어머님
孤立
靑春 瞑想
가을 언덕
裸體의 처녀
異鄕의 가을
色調
하늘
조선의 가을(KOREAN AUTUMN)
航海
冬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밤 電車 안에서
子正이 넘어서
홀스테드 電車를 탓네.
車 안에는
일터로부터 돌아오는 勞働者들,
껌둥이, 波蘭 녀자, 愛蘭 색시.
奴隸에서 解放된 껌둥이
오늘은 다시 돈의 鐵鎖에….
러시아서 解放된 파란 녀자
오늘은 다시 돈의 束縛에….
綠色 치마의 愛蘭 색시
오늘도 그 치마 綠色….
모도 다 하품하며
끄덕끄덕 졸고 앉엇네.
한두 번 電車가 멎드니
그들도 모다 나리엿네.
그中에 나 혼자 남어
커를 도는 車바퀴 소래를 듣네.
쓸쓸히 房문을 닫고
도라와 자리에 눗네.
그들이 내 눈에 쓰림을 주는데
내 몸은 누가 돌보나!
××××× ×××
무엇 무엇해도…
그들은 名節이 잇고,
그들은 설 곳이 잇고….
××× ××××
나는 송곳 하나 꼬즐 땅도-
아! 나는 송곳 하나 꼬즐 땅도….
●文明
1
내가 옷을 벗고 거리로 나가노라.
사람들은 미쳤다고 하리라,
야만이라고 손가락질하리라.
내가 옷을 입는다.
세 겹, 네 겹 옷을 입는다,
머리에는 모자, 목에는 비단 타이,
손에는 장갑, 발에는 가죽 구두…
나는 예의 있는 사람이요,
문명한 사람이 된다.
2
옷은 더러워지고 꿰진다.
나는 빨고 꿰매 입는다.
사람들은 나를 貧者라고 부른다.
옷은 더러워지고 꿰진다.
나는 그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사 입는다.
사람들은 나를 富者라고 부른다.
3
오, 빨딱한 세상이여,
깝대기 사람이여!
●밤의 沙漠
나는 홀로이
밤의 沙漠을 헤매이고 있나니
발자국 하나도 없는 모래 우로
나의 발은 주척주척 걸어가노라.
폭풍우 지낸
밤 沙漠의 하늘 우에는
南北을 가르키는 별 하나가
다못 희미한 바탕 속에 빛나고 있노라.
두려움 배고픔 목말음…
그러나 失望은 내 입술을 다 태우지 못하였나니
오- 나의 뼈속이 다 마를 때까지
반짝이는 저 별과 같이 걸어가리라
●孤立
세상에 수많은 영혼들은
바다에 조개[貝]같이 살아가도다.
모래 속에 깊숙이 잠겨 들어서
바다의 민물을 모으고 살아가도다.
세상에 몇몇 영혼들은
밤하늘 위에 별같이 살아가도다.
외로이 제자리에 홀로이 서서
자기의 세상을 비추고 있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