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박재형이 ≪해동속소학≫을 펴낸 동기와 그 의의는 이 책의 서문과 발문에 잘 드러나 있다. 박재형의 스승인 허전은 서문에서 우리나라의 현인, 군자들의 훌륭한 윤리적 업적이 ≪소학≫에 실리지 않은 것과 이 책이 발간되는 이유를 주자 절대 존숭 아래서의 단순한 시간적, 지리적 결정론으로서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에는 또 하나 이유승이 쓴 제2의 서문이 있는데 그 취지는 앞의 것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즉, “주자 ≪소학≫이 나타내는 것은 때를 달리하고 곳을 달리하고 있어 그 실천에 이르기가 무척 어렵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이것을 능히 실행하는 자가 적다. 그러나 이 ≪해동속소학≫이 담고 있는 내용은 우리 선배들의 언행이므로 사람들이 잘 읽기만 하면 쉽게 감동해 곧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많은 뛰어난 사례 속에서 일부만을 가려 뽑았기에 오랜 세월을 통해 풍속화된 규범들이다”라고 말한다. 즉, 이 책 편찬의 의의를, 주체의 중심을 우리 민족에 두고 가까운 생활에서 대상을 찾아 학습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것이라고 적극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이제 권말에 실린 자발(自跋)을 통해 박재형의 말을 들어 보자.
“송나라의 주자는 옛 중국 사람들의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실을 모아 ≪소학≫을 편찬하니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으뜸으로 여기고 있다. 생각하면 우리나라는 기자(箕子)가 나라를 다스린 이후부터 예악과 문물이 중국에 비교될 만큼 발전하고 어진 사람들이 많이 나와서 중국에 못지않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주자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아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아름다운 말과 착한 행실이 ≪소학≫에 실릴 수 없었다. 나는 이것을 개탄해 우리나라 옛사람들의 말과 행실을 가려 모아 ≪소학≫의 체재에 따라 책을 만들고 ≪해동속소학≫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여기서 박재형은 주자 ≪소학≫의 가치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훌륭한 문화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소학≫이 없음을 개탄해 이 책을 펴내게 됐다고 말한다.
조선조의 유학자들은 ‘선왕의 도(道)’라 해서 그들의 정치 이념은 언제나 요, 순, 우 삼대의 실현에 있었고, 공자, 맹자, 주자의 정통 이론에는 어떠한 비판이나 도전도 용납되지 않았다. 그러나 500년이나 계속된 주자학에 입각한 유교 윤리도 조선조 말에 이르러서는 변용되지 않을 수 없었다. 정약용에 의한 ≪목민심서≫의 실사구시적인 비판 정신, 최제우의 동학 창건, ≪기측체의≫ 이래의 수많은 저작을 통한 최한기의 경험론적 사상 체계의 발전 등은 모두가 근대화를 위한 몸부림의 구체적 표현이었다. 이와 같은 동향 속에서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어 온 봉건적 유교 윤리에 입각한 사회 질서도 밑바닥으로부터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결과로 봉건 유교 윤리의 재편(再編)을 위한 움직임이 잇따라 일어났다. 그 움직임의 한 예가 ≪해동속소학≫의 편찬이라 볼 수 있다.
200자평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이란 주자의 ≪소학≫에 이어지는 ‘조선 소학’이란 의미다. 19세기 말에 박재형이 청소년들의 몸과 마음을 닦고 학문 연구의 기틀을 잡아 주기 위해 우리나라의 훌륭한 선비들과 도덕적으로 모범이 되는 사람들의 미담과 교훈적인 말들을 가려 모아 펴낸 ‘우리 소학’이다. 사회 윤리와 도덕이 길을 잃은 오늘날, 다시 한번 되새겨볼 만한 내용이다. 총 410장 중 223장을 발췌 번역했다.
지은이
박재형(朴在馨)의 자는 백옹(伯翁), 호는 퇴계의 사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에서 스스로 진계(進溪)라 지었으며 본관은 밀양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1479∼1560)의 후손으로 헌종 4년(1838)에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薪旨)리에서 태어났다. 4세 때까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해 가족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성장하고 나서는 학문을 좋아해 13경 공부에 몰두했으며 특히 성리학을 깊이 구명했다.
박재형은 부친 박시묵의 사우(師友) 관계를 배경으로 유치명과 허전의 문인이 되어 수학함으로써 영남 유학 안에서도 독특한 학맥을 형성하고 있다. 당대의 석학이었던 이종상, 류주목, 이돈우, 장복추, 이원조, 이진상 등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아 학문을 깊이하고 김흥락, 이만인, 이종기, 김도화 등의 학자들과 교유하며 학덕을 닦았다.
고종 7년(1870)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했으며 그의 훌륭한 인품과 뛰어난 학문으로 유일(遺逸)로서 천거되어 의령원참봉으로 서수(敍授)되었지만 응하지 않고 평생을 처사로서 향리에 살면서 후진 육성과 저술에 전념했다. 그는 자력으로 의창(義倉)을 설치해 구휼에 힘쓰는가 하면 문간계(文簡契)를 만들어 장학에 힘쓰기도 했다.
광무 4년(1900)에 항일 의병장으로 추대받아 거제도 부인당포에 출격했으나 그해 8월 12일 적탄에 맞아 순국했다.
그의 저술에는 ≪해동속소학≫ 외에 ≪해동속고경중마방(海東續古鏡重磨方)≫, ≪교자요언(敎子要言)≫, ≪도산지언(陶山至言)≫ 등 40여 권이 있다. 이 책들은 대개 당시의 유교 윤리의 책들이 중국 위주이던 것을 통탄한 박재형이 우리나라 선현들의 언행을 바탕으로 저술한 것이었다. 특히 ≪도산지언≫은 퇴계의 언행을 ≪논어≫에 비겨 정리함으로써 국학의 성립을 꾀했다.
옮긴이
박문현(朴文鉉)은 경북 자인에서 태어나 경북고를 졸업하고 부산대, 영남대, 동국대에서 철학 및 동양 철학을 공부했다. 동의대학교 철학과에 재직하면서 도쿄대 방문 교수 및 옌볜과기대 객원 교수를 거치고 현재는 동의대 명예 교수로 있다. 새한철학회 회장과 동아시아불교문화학회 회장을 지냈다. <묵자의 경세 사상 연구>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이후 묵자 사상 연구에 몰두해 2016년에 중국묵자학회에서 ‘묵학 연구 돌출 공헌상’을 받았다. ≪묵자 읽기≫, ≪묵자−사랑과 평화의 철학≫ 등의 저서와 ≪묵자≫, ≪법세 이야기≫(공역), ≪기(氣)의 비교 문화≫(공역), ≪주역의 힘≫(공역) 등의 번역서가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1. 교육의 근본을 세움(立敎)
2. 인륜을 밝힘(明倫)
3.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조심함(敬身)
4. 옛일을 살펴봄(稽古)
5. 아름다운 말(嘉言)
6. 착한 행실(善行)
인용한 책 목록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청소와 손님 접대도 공부
우언겸은 자식을 가르침에 윤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므로 평소에 집 안팎을 청소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일은 반드시 자식들로 하여금 하게 했다.
혹시 이것이 자식들이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마땅히 너희들의 몫이다. 이런 기본적인 것을 알지 못하면 공부는 해서 무엇 하겠는가?”
이런 교육을 받은 그의 아들 우성전은 훌륭한 학문과 인품으로 널리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