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문서로 기록된 유품에 대한 해석의 기술’로서의 해석학의 본질과 슐라이어마허와 같은 초창기 학문적 해석학의 흔적을 자세히 추적함으로써 정신과학의 방법으로서 해석학의 정립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다. 해석학에 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린 후 딜타이는 해석학이 하나의 독립된 학문으로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굵은 선으로 그려 내고 있다. 호머 작품의 이해와 해석을 둘러싼 고대 그리스의 문헌학, 소위 알렉산드리아 학파로 정점을 이루었던 문헌 해석과 성서 해석학, 해석학에 규칙을 부여하려는 움직임이 등장하는 르네상스와 계몽주의 시기의 근대 해석학, 그리고 이 모든 노력들을 종합하여 해석의 기술로서 학문적 해석학을 정립했던 슐라이어마허 해석학을 여기서 다루고 있다. 보론에서 딜타이는 이해의 문제를 인식론적 과제로 보고, 해석학과 인접 학문들, 특히 문헌학과 역사학과의 관계를 규명해 나가며, 하나의 기술학(Kunstlehre)으로서 해석학 정립에 관한 나름의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이 책이 고전에서 가지는 위치는 무엇보다도 이해의 학문으로서의 해석학을 체계화한 딜타이의 공에서 찾을 수 있다. 오늘날 정신과학과 해석학은 학문의 보편 언어로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자연과학의 파고가 드높던 시기에 인간, 역사, 사회의 총체적 학문으로서 정신과학을 독립적인 학문으로 정초하려 했던 딜타이의 노력은 과학주의와 실용주의의 기치가 그 어느 시대 못지않게 드높은 작금의 현실에서도 되새겨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정신과학이 인간 삶에 대한 이해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이상 그것이 방법론으로 삼고 있는 해석학에 대한 이해는 필수적이다. 최근 들어 하나의 인문사회 현상에 대한 연구 방법으로서 해석학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활발해진 편이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그것의 방법적 활용과 실제적 적용은 다양한 학문과 연구 영역에서 적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해석학의 본질이 무엇이고, 특히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탄생하게 되었는지에 관해서는 폭넓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이 책은 근대 이후 해석학 탄생의 역사와 체계를 소상히 보여 준다.
200자평
딜타이 ≪전집(Gesammelte Schriften)≫ 중에서 해석학의 탄생과 관련된 부분을 발췌·번역한 것이다. 각기 다른 세 개의 번역문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적 사유는 어떤 과정을 거쳐 근대에 ‘보편적 해석학’이 정립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단연 중심인물로 거론되는 사람이 슐라이어마허이다. 딜타이는 그를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로 그리고 고전어의 대가로 존경과 흠모를 아끼지 않았다.
지은이
1833년 11월 19일 목사의 아들로 비스바덴 주의 소도시 비브리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신학을 택했으나 칸트, 레싱, 게르비누스의 철학과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신학 분야 국가 시험을 수석으로 졸업했으나 지속적 학문과 생활의 안정을 위하여 김나지움 교사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다. 1859년 슐라이어마허 재단의 현상 논문에 선정되면서 교사직을 사임하고 본격적으로 해석학과 철학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 후 해석학, 철학, 윤리학에 관한 지속적 연구 결과 1864년 <슐라이어마허의 윤리학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1865년 <도덕의식의 분석 시도>라는 연구로 교수 자격을 얻었다.
대학 교수로서 첫발을 내디딘 것은 1866년 스위스 바젤 대학교에서였다. 이후 킬 대학교과 브레슬라우 대학교를 거쳐 1882년 헤르만 로체(Lotze)의 후임으로 베를린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수행했다. 1883년 ≪정신과학 입문≫을 출간하면서 정신적으로 가장 생산적인 순간을 맞게 된 딜타이는 브레슬라우 시절부터 교제해 오던 요르크 백작(Grafen Yorck)과의 우정을 더욱 돈독히 하게 되었다. 새로운 학문으로서 정신과학을 기획함으로써, 딜타이는 역사이성 비판의 학문으로서 철학을 혁신하고자 했다. 나아가 역사적 세계에 대한 학문들의 이론, 사회적 체계와 그것의 연구에 대한 이론을 총체적으로 정립하고자 했다. 칸트, 헤겔, 슐라이어마허를 넘어 딜타이는 진정한 계몽이 역사적 이성으로 완성된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베를린 대학교에 정착한 후 딜타이의 삶에서 학자로서의 학문적 강의와 저술 이외에 그다지 특이한 점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1887년 베를린 학술원 회원으로 임명된 후 칸트 전집의 출간에 공헌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이후 딜타이의 대표적인 저술로는 ≪체험과 문학≫(1906), ≪철학의 본질≫(1907), ≪정신과학에서 정신세계의 구축≫(1910) 등을 꼽을 수 있다. 딜타이는 1911년 10월 1일 루르 강 인근 남 티롤 지방의 소도시 자이스에서 사망했다.
옮긴이
1963년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1990년 전남대학교 사범대학교 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 대학교에서 주 전공으로 교육학을, 부전공으로 철학과 사회학을 공부했다. 교육학의 학문적 근원을 탐구하던 중 정신과학적 교육학의 커다란 흐름과 접하면서 슐라이어마허와 딜타이의 사상에 심취하게 되었다. 특히 정신과학의 정초와 관련된 딜타이의 문제의식은 교육의 실증주의화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계기를 주었다. 인간 삶의 문제를 다루는 학문, 즉 정신과학이 단순히 계량적 방법에 의해 ‘설명’되어서는 안 되며 ‘이해’되어야 한다는 딜타이의 명제는 적지 않은 공명을 남겼다.
정신과학의 방법론으로서의 해석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된 계기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후 해석학의 흐름을 슐라이어마허, 딜타이, 하이데거, 가다머, 하버마스를 축으로 삼아 이해 지평을 꾸준히 넓혀왔다. 필자의 주 전공이 교육철학인 탓에 철학적 해석학과 교육의 관련성에 초점을 두고 이제까지 연구를 진행해 왔다.
독일에서 단행본으로 출간된 박사 학위논문 <빌헬름 딜타이-교육학적 전기 연구(Wilhelm Dilthey-Pädagogische Biogra phieforschung)>(1997)에서는 해석학의 방법의 하나로 전기와 자서전에 초점을 두고 딜타이를 새롭게 조명하고 있다. 논문 <딜타이의 슐라이어마허의 삶에 관한 연구>(1997)에서는 해석학적 전기 연구의 사례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저 ≪교육 해석학≫(2004)에서는 해석학과 교육에 대한 관계를 체계적으로 서술하기 위해 딜타이와 가다머의 해석학을 집중 조명하는 것은 물론 해석학의 발전된 형태인 전기 연구와 자서전 연구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해석학의 실제 적용이라는 관점에서 교육적 인간상으로서의 ‘신지식인’ 문제, 미래의 교육 내용으로서 ‘시대적 핵심 문제’ 등에 관한 해석학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가다머 최후의 교육 관련 강연집을 번역해 ≪교육은 자기 교육이다(Erziehung ist sich erziehen)≫(2004)를 내기도 했다. 논문 <딜타이의 해석학과 정신과학적 교육학의 전개 과정>(2007)은 독일 교육철학의 뿌리를 딜타이에서 찾아 소위 ‘딜타이 학파’를 중심으로 그 계보를 추적하고 있다.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해석학의 탄생≫(2011),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교육≫(2012), ≪딜타이 교육학 선집≫(2012)을 번역·출간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제1부
해석학의 탄생 및 보론(補論)
1. 해석학의 탄생
1) 해석학이란 무엇인가?
2) 고대 그리스와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문헌학
3) 성서 해석을 둘러싼 논쟁들
4) 근대 르네상스 및 계몽주의 해석학
5)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
6) 결론
2. 수기로부터의 보론
1) 이해의 인식론적 과제
2) 해석학과 인접 학문
3) 해석학적 기술학
제2부
해석학 탄생 이후의 슐라이어마허 해석학
1. 피히테와 해석학의 전환을 가져온 사고 유형의 탄생
1) 발생적 방법의 철학적 준비
2) 발생적 방법과 이전 시기의 실용주의적 설명
3) 피히테와 슐라이어마허의 관념론
4) 개별성 개념으로 인도(引導)
5) 미적 세계관과 개별성의 원리
6) 일반 운동과의 연관
7) 이 원리를 삶과 연구에 적용함
8) 해석학의 탄생에서 문헌학적 재생산으로의 전환
2. 슐레겔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비판과 문헌학에 적용
1) 낭만적 선구자로서 슐레겔
2) 슐레겔과 슐라이어마허의 관계
3) 하나의 전체(全體)로서 문학
4) 학파
5) 개별 작품
6) 내적 형식의 관점
7)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과 관련된 산출 이론의 계획
8) 슐라이어마허의 플라톤에서 활용될 사전 준비로서 슐레겔의 해석학적 방법
3. 플라톤 번역
1) 슐레겔과의 작업 시작
2) 이러한 노력들과 윤리학 비판과의 접점
3) 플라톤을 다루는 과정에서 슐레겔과 슐라이어마허의 대립
4) 슐라이어마허의 플라톤
4.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 체계에 관한 첫 번째 기획
1) 1804∼1805년 편지에 나타난 그의 해석학적 견해
2) 에르네스티(Ernesti)의 문헌 고찰에서 나온 첫 번째 기획
제3부
이전 해석학 체계와의 관련 속에서 슐라이어마허 해석학의 비교 서술
1. 학문들의 체계 속에서 해석학의 위치
1) 실제적인 것의 설명으로서 미적 직관과 논리적 분류
2) 판단력 형성의 우위
3) 생기(生起)의 정연한 형식으로의 전환
4) 윤리학 체계 안에서의 해석학의 위치
(1) 동일한 것과 고유한 것
(2) 지식과 감정
이러한 대립의 이중성
(3) 분석적이며 종합적인 전진, 학문과 예술
종합: 해석학의 과제는 이러한 대립의 균형 유지에 있다
5) 그의 윤리학에서 해석학 위치의 전위(轉位), 변증법과 해석학
6) 이전의 체계들
7) 라이프니츠와 비코의 예지(叡智)
8) 해석학을 철학의 하위 영역으로 규정함(논리학, 심리학)
9) 해석학을 역사학의 하위 영역으로 규정함
10) 아스트와 슐라이어마허
11) 슐라이어마허와 빌헬름 폰 훔볼트
2. 성서 해석 방법과 해석학의 물리적 원리
1) 성서 해석 방법의 전제 조건
2) 이 전제 조건들은 물리적 원리 없이도 의식된 것이다
3) 정신의 기계적-목적론적 직관 시기인 초창기
4) 수사학적 해석
5) 논리적 해석
6) 문법적 해석과 역사적 해석으로 나누는 방법
7) 미적 해석 안에서 종합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
8) 슐라이어마허 해석학의 물리적 원리. 추후 구성. 해석학은 기술학이다
9) 저자가 자기 스스로를 이해한 것보다 더 잘 이해한다는 공식
10) 방법 개념상의 순환. 아스트
11) 관찰 해석학과의 관계에서 본 물리적 원리의 의미
3. 학문적 방법
1) 요약
2) 성서 해석 과정의 추체험으로서 규칙들의 군집화
3) 이러한 형식의 불완전성이 구성적이며 재구성적 과정 자체를 서술하게 하다
4) 구 해석학의 분류
5) 작품이 생성되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있어 슐라이어마허의 방법이 갖는 가치
6) 슐라이어마허의 규칙 요소와 그것과의 관계에서의 서술 요소. 기술적이고 비판적인 학문
4. 일반 해석학의 분류
1) 슐라이어마허 해석학의 고유한 의미와 관련된 이제까지의 결과에 대한 개관
2) 이전 시대의 해석학의 배열
3) 슐라이어마허의 분류 근거: 구성과 추후 구성의 연관에서 본 고유한 것과 동일한 것의 이중적 대립
4) 해석 과정과 관련된 대립
5) 대립들의 교차
6) 이러한 구성의 연기
7) 고유한 것과 이러한 구성들의 새로운 것의 최후 근거
8) 이러한 대립 속에 놓인 기본 관점이 해석학에 주는 의미
9) 고유성의 이념과 역사적 발전의 이념
5. 일반 해석학의 한계와 특별 해석학과의 관계
1) 이전의 해석학 체계들
2) 해석 역사의 제외
3) 성서 해석 기술 방법의 배제
4) 상징적 행위의 모든 윤리적 영역으로 해석 기술을 관련지음으로써 확장
5) 일반 해석과 특수 해석의 관계
6) 슐라이어마허 해석학에서 두 요소들의 관계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외부에서 감각적으로 주어진 기호로부터 내적인 것을 인식하는 과정을 우리는 이해라고 부른다. 이것은 언어적 표현이며, 우리가 전적으로 필요로 하는 하나의 굳건한 심리학 용어로서 이해는 이미 확실하게 표현된, 명확히 활용이 가능하도록 한계가 설정된 모든 표현을 모든 저술가들이 동일하게 파악할 때만이 성립 가능하다. 자연의 이해는 하나의 회화적(繪畵的) 표현이다.
-35쪽
해석학은 낭만주의적 자의성과 회의론적 주관성이 역사적 영역으로 끊임없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에 맞서 해석의 보편타당성을 이론적으로 정립해야 한다. 그 위에 모든 역사의 안전성이 기반을 두고 있다. 정신과학의 인식론, 논리학, 방법론을 한데 모아 이러한 해석의 학문은 철학과 역사학 사이의 중요한 매개 고리가 되며, 정신과학 정초의 핵심 부분이 될 수 있다.
-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