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배경은 서울 삼양동 오래된 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 ‘국화 옆에서’다. 이곳에 머무는 햄릿은 공장에서 해고된 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앓고 있다. 애인 오필녀(오필리어)와 함께 연출가(호레이쇼) 지휘 아래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기관 하수인이 햄릿을 감시하기 위해 카페를 불시에 방문하면서 그의 불안 증세가 심해지기 시작한다. 급기야 꿈에 아버지의 유령과 망령들이 나타나 수시로 그를 괴롭힌다. 이들은 동학 혁명 한가운데서 죽어 간 병장, 성폭행으로 죽은 여자, 용산 참사 희생자, 광주민주화항쟁의 화마 속에 죽어 간 넋들로, 청산하지 못한 역사 속 망령들이다. 망령은 자신들에 대한 햄릿의 무관심을 질책하지만 햄릿이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정작 그도 정치적 현실 때문에 고통받는 존재다. 햄릿은 유령처럼 혼돈의 역사를 고통스럽게 떠돌 수밖에 없다.
기국서는 ‘햄릿 연작 시리즈’로 원전을 해체하고, 새롭게 재구성하는 실험적인 작업을 해 왔다. 이번 작품에서는 특히 청산하지 못한 역사적 문제들과 여전히 고통스러운 오늘날 정치 현실을 원전에 대입함으로써 과감한 실험 정신과 치열한 정치의식을 보여 주었다.
200자평
‘햄릿 연작 시리즈’ 여섯 번째 작품으로 작가가 1990년 <햄릿 5>를 발표한 이후 22년 만에 발표한 작품이다.
지은이
기국서는 195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77년 ‘극단76’에 입단, 연출을 시작했다. 1980년대와 1990년대를 대표하는 연출가 중 한 사람이다. <관객 모독>, <미친 리어>, <햄릿> 시리즈, <지피족>, <개>, <훼밀리 바게트> 등을 쓰고 연출하며 한국 아방가르드 연극의 최전선을 형성해 왔다. 특히 1981년부터 선보인 셰익스피어 <햄릿>을 한국 정치 현실과 연관해 재해석한 ‘햄릿 연작 시리즈’로 연극적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서울평론가그룹 특별상, 서울평론가그룹 연출상, 영희연극상, 한국예술가협회 오늘의예술가상 등을 수상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무대
1장 우울증과 사랑
2장 카페 국화 옆에서
3장 악몽을 꾸다
4장 의문사에 대한 추상
5장 연극이냐 현실이냐
6장 두 개의 무덤
에필로그
<햄릿 6: 삼양동 국화 옆에서>는
기국서는
책속으로
햄릿: (서성거린다.) 잠들 것인가, 깨어 있을 것인가? 이것이 문제다. 고통의 세계를 못 본 체하고 무릎의 관절을 무르게 하여 이 뜨뜻미지근한 세계 속에 몸을 잠글 것인가. 아니면 두 눈 부릅뜨고 보이지 않는 적을 향해, 썩어 가는 세계를 향해 저항을 해야 하는가? 잠이 든다. 무릎을 웅크리고 가슴을 떨면서, 망상과 번뇌를 꿈에까지 끌고 들어가서, 끊임없는 악몽, 거짓 웃음. 자기기만,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만연되는 저 불유쾌한 허위의식을 견뎌야만 하는 것일까? 산처럼 일어서는 저 탐욕과 이기의 구름들이 우리 머리 위를 뒤덮고 우리들의 폐와 심장을 썩게 하는데도 형체를 알 수 없는 미혹의 세균들이 우리들 가슴의 불에 재를 덮으며 그 미혹들 때문에 우리들은 바보가 되어 가며 창백한 우울증이 덮쳐 오고, 역사는 점점 캄캄해지는 것이다. 급격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