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에우리피데스의 《헤라클레스》는 헤라클레스가 지하 세계에서 돌아온 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리코스는 크레온으로부터 왕권을 빼앗고 테베 왕에 등극한다. 리코스는 후환을 두려워해 크레온의 딸이자 헤라클레스의 아내인 메가라와 그 자녀들을 죽이려 한다. 마침 헤라클레스가 열두 노역을 마치고 명계에서 돌아와 리코스를 죽인다. 그러나 헤라 여신의 질투로 광기에 사로잡혀 아내와 아이들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만다. 광기에서 깨어난 헤라클레스는 죄책감으로 자살을 시도하고, 친구 테세우스의 도움을 받아 아테네로 향한다.
에우리피데스가 묘사하는 헤라클레스는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이성적이지도, 용맹하지도 않다. 광증에 사로잡혀 잘못을 저지르고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이다. 질투에 눈이 먼 헤라 여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잘못을 범하지만, 헤라클레스는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반성한다. 미쳐서 아내와 자식을 죽인 헤라클레스의 고통을 통해 에우리피데스는 질투로 가득 찬 헤라 여신을 비판한다.
신에 대한 원망, 인간에 대한 연민이 마지막 코로스의 합창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장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을 도둑맞은 우리,
슬픔으로 쓰라린 눈물을 흘리며
우리의 길을 가노라!
-종막, ‘코로스의 합창’
200자평
리코스가 왕위 찬탈 후 메가라와 자녀들을 위협하자, 헤라클레스는 리코스를 처단하지만 헤라의 질투로 광기에 빠져 가족을 죽인다. 죄책감에 자살을 시도하나 테세우스가 구해 아테네로 향한다. 신의 의지에 휘둘리는 인간 운명의 비극성을 그렸다.
지은이
에우리피데스(Euripides, B.C.484?~B.C.406?)
아이스킬로스(Aeschylos), 소포클레스(Sophocles)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의 3대 비극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기원전 534년에 그리스에서 최초로 비극이 상연된 후, 기원전 5세기에 이르러 아이스킬로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를 통해 그리스 연극은 전성기를 맞는다. 기원전 3세기까지의 그리스 고대극의 전통은 로마를 거쳐 유럽 전체에 퍼지며 서구 연극의 원류가 되었다. 에우리피데스는 이 과정에서 서구 연극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극작가다. 생애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고, 다만 부유한 지주 계급 출신이라는 점과 좋은 가문에서 상당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는 점 정도만 전해진다. 기원전 455년에 데뷔한 이후 92편에 이르는 작품을 집필했지만,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은 18편뿐이다. 기원전 408년경 아테네를 떠나 마케도니아에 머물렀고 2년 뒤에 사망했는데,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와 <바카이>는 이때 집필된 작품이다.
옮긴이
김종환
1986년부터 2023년까지 계명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영미어문학회 회장, 한국영어영문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1995년에 재남우수논문상(한국영어영문학회)을 받았고, 1998년에는 제1회 셰익스피어학회 우수논문상을, 2006년에는 원암학술상을 받았다. 저서로는 《셰익스피어와 타자》, 《셰익스피어와 현대 비평》, 《셰익스피어 연극 사전》(공저)이 있으며, 모두 대한민국학술원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그 외 저서로 《셰익스피어 작품 각색과 다시쓰기의 정치성》, 《인종 담론과 성 담론》,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비극》, 《명대사로 읽는 셰익스피어 희극》, 《셰익스피어 비극의 비평적 해석》, 《음악과 영화가 만난 길에서》, 《상징과 모티프로 읽는 영화》가 있다. 셰익스피어 주요 작품 21편을 번역했다. 소포클레스와 아이스킬로스의 현존 작품 전체와 에우리피데스의 작품 영역 17편을 번역했다. 《길가메시 서사시》를 중역해 출판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서막
제1삽화
제2삽화
제3삽화
제4삽화
종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헤라클레스 :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는 없어.
인간도 신도 고통을 면할 수 없어.
나로서는 신들이 제멋대로
근친결혼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아.
권력 때문에 아버지 손을
사슬로 묶었다는 말도 믿을 수 없어.
그런 말은 앞으로도 설득력이 없어.
한 신이 다른 신을
지배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도
설득력이 없어. 정말 신이라면
필요한 게 없을 테니까.
시인들이 지어낸
보잘것없는 이야기일 뿐이야.
너무나 비참한 역경을 겪었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
내가 삶을 포기한 겁쟁이라고
낙인이 찍힐지 아닐지를 생각해 보았네.
운명의 타격을 견딜 수 없는
약한 천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적이 휘두르는 무기에도
잘 버티지 못할 테니까.
죽음에 맞서 굳게 마음먹고
나에게 베푼 모든 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네의 도시 아테네로 가겠네.
143-14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