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837년, 불과 24세의 나이로 요절한 천재 작가 뷔히너는 그 짧은 인생에도 불구하고 독일 문단에서 크나큰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의 이름으로 수여되는 뷔히너문학상은 오늘날 독일 문단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이며, 하인리히 뵐, 엘리아스 카네티, 귄터 그라스 같은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은 뷔히너 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모두가 한결같이 자신이 뷔히너 문학의 영향권에 있음을 자랑스럽게 고백한다. 그가 남긴 작품은 드라마 3편과 소설 1편, 그리고 약간의 산문뿐이지만, 이 작품들이 일으킨 파문은 해일이 되어 독일 문단을 뒤덮는다.
대체로 천재는 개인적 성향이 강한 데 반해 뷔히너는 참다운 삶의 의미를 자신의 삶 안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밖에서, 즉 더불어 사는 삶에서 찾았다. 그는 유복한 시민계급, 즉 유산계급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 교육을 받고 미래가 보장된 신분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독재정권 타도를 위해 반체제 운동에 가담했는가 하면, 굶주리는 농민을 위해 투쟁에 앞장섰다. 그는 자신이 다니던 대학 도시 기센에서 인권협회를 조직하기도 하고, 농민의 혁명 의욕을 고취하기 위해 <헤센 급전>이라는 정치적 전단(傳單)을 작성하여 배포하기도 했다. 이 전단을 통해 뷔히너는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에 놓인 심연이 얼마나 깊고 넓은가를, 그리고 이 심연은 하늘이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것도 극소수의 인간이 그들만의 천국을 향유하기 위해 만들어 놓았다는 사실을 농민에게 일깨워 주고자 했다.
뷔히너의 문학은 이토록 치열한 삶을 산 사람의 ‘심정 고백’이다. <당통의 죽음>, <보이체크>, <레옹스와 레나> 등의 작품은 바로 <헤센 급전>에 담긴 그의 사상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그의 작품이 경향성을 띠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그의 작품에서는 경향성이 작품의 문학성을 훼손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경향성이 문학적 완성도를 높여준다.
뷔히너의 천재성은 문학 창작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그의 학문 세계에서도 드러난다. 그의 독서량은 범인(凡人)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는 그토록 짧은 기간에 고대 문학과 철학, 종교를 비롯한 고대의 정신문화에 관한 서적을 폭넓게 읽었는가 하면, 현대 문학과 철학, 역사를 포함한 인문학 서적을 탐독했으며, 성서를 정독했다. 물론 그는 읽기에만 몰두한 것이 아니라 읽은 것을 옮기고 그에 대한 평론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의학을 전공해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취리히 대학으로부터 초빙을 받아 강단에 서기도 했다. <두개골신경에 관해>는 뷔히너가 이때 불과 23세의 나이로 대학 교수가 되어 강의한 강의록이다. 뷔히너는 이 강론에서 이른바 반목적론을 설파하고 있다. 영혼을 지닌 한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 자체가 목적이지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수단이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뷔히너 전 작품은 <헤센 급전>과 마찬가지로 이 강의록의 형상화라 할 수 있다.
뷔히너가 그의 부모와 구츠코 등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우리는 그의 작품의 소재 내지 모티프를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헤센 급전>과 <두개골 신경에 관해> 그리고 <뷔히너 서한>은 그의 전 작품을 관통하는 혈맥이요, 그의 전 작품의 골간을 이룬다.
200자평
게오르크 뷔히너의 산문을 모았다. 실천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가 처음 드러나는 정치 전단 <헤센 급전>, 취리히 대학 철학부에서 강연한 강의록 <두개골신경에 관해>, 그리고 그의 삶과 사상은 물론 작품의 소재와 모티프가 듬뿍 녹아 있는 서한 26통을 발췌해 소개했다. <당통의 죽음>, <레옹스와 레나>, <보이체크> 등에 드러난 뷔히너의 문학 사상의 뿌리를 바로 이 산문들에서 찾을 수 있다.
지은이
게오르크 뷔히너(Georg Büchner, 1813∼1837)는 하센 주 다름슈르트 부근의 고델라우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인문학교에서 중등 교육을 받았지만 의사인 아버지의 강요로 슈트라스부르그에서 의학을 수학했다. 유복한 시민계급으로 미래가 보장된 신분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기센에서 인권협회를 조직하고 팸플릿 <헤센 급전(Der Hessische Landbote)>을 만들어 반체제 운동과 농민 투쟁에 앞장서게 된다. 1835년 희곡 <당통의 죽음(Dantons Tod)》을 발표하고 이어 단편 <렌츠(Lenz)>와 희극 <레옹스와 레나(Leonce und Lena)>를 썼다. 유작으로 <보이체크(Woyzeck)>가 있다. 한편으로 해부학 연구를 계속하여 1836년 취리히 대학의 초빙을 받았지만 장티푸스에 걸려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만다.
그가 취리히의 크라우트가르텐 공동묘지에 묻히던 날 장례식에는 많은 이들이 참석해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독일 자연주의 문학을 창도한 하웁트만은 1887년에 베를린의 어느 문학협회가 개최한 강연회에서 뷔히너의 “힘 있는 언어”와 “생생한 묘사” 그리고 “자연주의적 인물 서술”을 극찬했다. 뷔히너는 불과 4편밖에 안 되는 작품으로 독일 문학을 개방 문학으로 인도함으로써 현대를 선취한 작가다.
옮긴이
임호일은 고려대학교 독문학과에서 학사, 석사 과정을 마치고 독일 뮌헨과 마인츠 대학에서 수학,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독어독문학회 부회장, 한국뷔히너학회 회장, 동국대학교 도서관장 및 문과대학장을 역임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번역은 원전에 대한 도전이다?>, <추의 미학의 관점에서 본 뷔히너의 리얼리즘>, <가다머의 예술론>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변증법적 문예학≫(플로리안 파센 저), ≪진리와 방법≫(한스ᐨ게오르크 가다머 저, 공역), ≪한스ᐨ게오르크 가다머≫(카이 하머마이스터 저), ≪뷔히너 문학전집≫(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외 다수가 있고, 저서로는 ≪천재를 부정한 천재를 아십니까≫(지식을만드는지식, 2008)가 있다.
차례
헤센 급전(急傳)
두개골 신경에 관해
뷔히너 서한 발췌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두 눈을 뜨십시오! 그리고 소집단에 불과한 여러분의 압제자들의 수를 세어보십시오! 이들은 여러분으로부터 빨아먹은 피로 인해 강해졌을 뿐이며, 여러분이 타의로 빌려준 여러분의 그 팔 덕분에 힘을 얻었을 뿐입니다. 대공국에서 저들의 수는 만 명인 데 반해 여러분의 수는 70만 명입니다.
<헤센 급전>에서
자연은 목적에 따라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연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목적 속에서 버둥거리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자연은 일차 목적이 이차 목적을 위해 존재하는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자연은 어떤 모습을 지니든 간에 그 자체로 충분한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모든 존재물은 그 자체를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이러한 존재의 법칙을 추구하는 것이 저 목적론에 상반되는 견해라고 말씀드릴 수 있으며, 본인은 이를 철학적 견해라 부르고자 합니다. 전자에게는 목적이 되었던 것이 후자에게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두개골 신경에 관해>에서
저는 최소한 이성이나 교육이 빈약하다는 이유로 그 누구를 경멸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보나 범죄자가 되고 안 되는 것이 그 어떤 개인의 힘에 달려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가 똑같은 환경에 몸을 담았다면 우리는 모두 같아졌을 것입니다. 환경이란 우리의 능력 밖에 존재합니다. 지능은 우리의 정신적인 영역의 극히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고, 교육이란 것도 단지 이 영역에서 우연히 얻은 형식에 불과합니다.
<뷔히너 서한 발췌록>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