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운사의 연속방송극을 김기영 각색·감독한 작품으로, 태평양전쟁 때 한국의 학병이 체험하는 일본 군국주의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주인공 아로운(김운하)은 태평양전쟁의 일본 전세가 기울어질 무렵, 학병으로 끌려가 일본 본토에서 병영생활을 하게 된다. 일본군 내무반은 마치 군국주의의 광기와 포악성이 뒤엉킨 듯한 개판이었다. ‘죠센징(조선인)’이라는 민족차별과 권력남용의 횡포성이 빚어나는 사디즘의 집단 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그런 환경에서 아로운은 온갖 학대를 받지만, 천만다행히도 청순한 일본 처녀(공미도리)와 민족을 초월한 사랑으로 맺어져 결혼한다. 그러나 전쟁 말기에 이르러 미군의 맹렬한 폭격에 의해 일본군은 처참히 몰살당하고 시체의 산더미를 이루지만, 아로운은 그 속에서도 살아남는다.
이 작품은 권력에 대한 광신이 빚은 그릇된 군국주의와 그 비인간적인 사디즘, 그들의 무참한 패망을 인간의 집단적인 본능으로 리얼하게 그렸으며, 또한 아로운과 일본 처녀를 통해 광기의 시대에 사는 사랑의 순수한 아리따움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서 시체더미 속에서 죽었으리라고 여겼던 아로운이 벌떡 살아 일어나는 광경은 퍽이나 감동적이었다.
_하유상(시나리오 작가)
200자평
아로운은 태평양전쟁의 전세가 기울 무렵 학병으로 끌려가 일본 본토에서 병영생활을 하게 된다. 일본군 내무반은 군국주의의 광기와 포악성이 뒤엉킨 새디즘의 집단 수용소를 방불케 했다. 온갖 차별과 학대를 받지만 청순한 일본 처녀 히데꼬와 민족을 초월한 사랑으로 맺어진다. 미군의 폭격으로 일본군은 처참히 몰살당하고 시체가 산더미를 이루지만 둘은 살아남는다.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한운사의 라디오 연속극을 김기영이 영화로 만들었다. 한일 국교 정상화 이 년 전에 개봉되어 화제가 되었다.
지은이
김기영
1922년 10월 1일에 서울에서 태어나 1998년 2월 5일에 사망하였다. 영화감독이자 제작자로 활동하였다.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한국전쟁 중 시나리오 작가 오영진의 권유로 미국 공보원 영화제작소에 들어간 것이 계기가 되어 1955년 <주검의 상자>로 데뷔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인간 심리에 대한 냉혹한 분석과 사디즘적 파괴력을 작품 속에 표현해 ‘한국 컬트영화의 창시자’로 불렸다.
또한 괴짜감독으로 영화계는 물론 대중으로부터 외면을 받아온 불우한 감독이었으나 뒤늦게 그의 독특한 작품 세계가 국제적으로 재조명되어 1998년 베를린 국제영화제의 미니회고전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는 <초설>(1957)은 이승만 독재와 미국의 지배에 대한 반항정신으로 만들었으나 사라진 영화다. 초창기 작품이 전후 한국 민중의 초상이었던 1960년대를 연 <현해탄은 알고 있다>(1961)는 반전의식의 소산, <하녀(下女)>(1960), <화녀>(1971)는 중산층 가정을 무대로 했다. 그 밖에 <고려장>(1963), <육식동물>(198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