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서명 Osudy dobrého vojáka Švejka za světové války 지은이야로슬라프 하셰크
(Jaroslav Hašek)
옮긴이홍성헌
책소개
체코 문학을 대표하는 반전(反戰) 블랙코미디
“세계 대전 중 훌륭한 병사 슈베이크의 운명(Osudy dobrého vojáka Švejka za světové války)”이라는 긴 원제를 가진 이 소설은 작가 야로슬로프 하셰크의 실제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풍자 소설로, 제1차 세계대전 직후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총 네 권에 걸쳐 발표되었다. 첫 출간 이후 전 세계 54개국에서 번역되었으며, 연극, 드라마,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세계연극사에 한 획을 그은 독일 연출가 겸 극작가인 베르톨트 브레히트 역시 슈베이크를 모티프로 작품을 창작한 이들 중 한 명이다.
체코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인물 슈베이크, 왜 하필 그인가
슈베이크는 체코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인물로 손꼽힌다. 체코 문학이라고 하면 카프카나 쿤데라를 떠올릴 이들이 많을 텐데, 이들 작품 속 철학적이고 비극적이며 도덕적으로 고통받는 인물과 슈베이크는 사뭇 다르다. 국가 공인 ‘바보’이기 때문이다. 허튼소리와 엉뚱한 행동이 주특기인 트러블메이커 슈베이크는 전쟁 소설의 주인공으로 흔히 등장하는 애국지사도 아니요, 그렇다고 다른 선한 주인공들처럼 정직하거나 성실하지도, 순수하지도 않다. 그는 일부러 그러는 건지 모르고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교묘하게 상사들을 골탕 먹이고 사사건건 문제를 일으킨다. 더욱 우스운 것은 슈베이크에게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사고를 쳐 놓고 아이 같이 해맑게 미소 짓는 그를 보면 저의를 따질 수 없게 무장 해제돼 버린다. 어째서 이런 바보스럽고 의뭉스러운 슈베이크를 체코인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인물이라 칭하는 것일까.
국가 공인 “바보” 슈베이크가 전쟁의 위선을 폭로하다
소설 속 슈베이크의 멍청함은 일종의 저항이다. 소설의 배경인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속국이었다. 오스트리아인도 헝가리인도 아닌 슈베이크가 지배국이 일으킨 전쟁에 빨려 들어간 것이다. 20세기 전반에 걸쳐 체코 민족은 오스트리아·헝가리, 나치 독일, 소련, 1968년 바르샤바 조약 회원국에 이르기까지 외국의 다양한 통치와 침략을 겪었다. 희망 없는 전쟁 속 현실의 고난을 직면하는 대신, 소속 부대의 행보를 방해하고 조롱과 빈정거림을 일삼으며 모든 종류의 권위를 은근하게 비꼬는 슈베이크의 행동은 체코인들에게 자신들을 대변하는 행위로 비쳤다. 게다가 슈베이크가 곤경에 빠뜨리는 ‘높으신 분들’은 실상 몹시 위선적인 데다 무능하기까지 한 인물들이다. 이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전쟁이란 얼마나 무가치하며 어리석은 일인지 슈베이크는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낱낱이 폭로한다. 유머와 재치를 통한 강인한 회복력을 자랑하는 체코 민족들에게 슈베이크는 영웅이나 다름없었다.
요세프 라다가 직접 증보하고 채색한 삽화 170여 점 수록
이 소설의 또 다른 백미는 요세프 라다의 삽화다. 삽화가 요세프 라다는 슈베이크의 형상을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내 그들의 뇌리에 길이길이 새겨 넣었다. 실제로 체코의 수도 프라하의 구시가지를 여행하다 보면 기념품 가게나 관광 명소 곳곳에서 라다가 그린 슈베이크를 만날 수 있다.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이번 책은 완간 후 라다가 직접 증보하고 채색한 170여 점을 수록해 몰입감을 높였다.
이 외에 독서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 1권에는 1부 집필을 마친 후 작가가 남긴 후기를 실었으며, 2권에는 자기를 따돌리고 먼저 가 버린 상사를 찾아 전장으로 (곧장 가는 길을 놔두고 뱅글뱅글 돌아서) 향한 슈베이크의 여정을 담은 지도를, 3권에는 완간 이후 삽화가 라다가 집필한 후기를 수록했다. 각별한 사이였던 하셰크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라다의 절절한 마음을 그의 글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체코문화부 번역 지원 사업 선정작이다.
200자평
체코 소설가 야로슬라프 하셰크의 대표작으로, 작가의 1차 세계대전 참전 경험을 바탕으로 한 반전(反戰) 블랙코미디 소설이다. 체코인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문학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소설은 첫 출간 이후 현재까지 전 세계 54개국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영화,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소설의 백미인 요세프 라다의 삽화 170여 점을 올 컬러로 수록했으며, 작가 후기와 삽화가 후기, 슈베이크의 원정 행로를 담은 지도를 삽입해 독서의 깊이를 더했다. 원작은 총 4부로, 작가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미완성으로 남은 4부를 3부와 한데 묶어 전3권으로 나누어 선보인다. 2권에는 2부 〈전방에서〉를 실었다.
지은이
야로슬라프 하셰크(Jaroslav Hašek, 1883∼1923)
체코의 작가이자 언론인, 출판인이다. 일생 동안 약 1,500편에 달하는 작품을 집필했으며, 특히 대표작《훌륭한 병사 슈베이크》는 전 세계 60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하셰크는 1883년 4월 30일,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현 체코공화국 프라하의 슈콜스카가에서 요세프 하셰크와 카테르지나 햐슈코바 사이에 태어났다. 요세프와 카테르지나 사이에는 야로슬라프보다 먼저 태어난 아들이 있었으나 두 사람의 장남이었던 요세프는 생후 1년이 지나 사망했고 그 후 야로슬라프가 둘째 아이로 태어났다. 아버지 요세프 하셰크는 중등학교 수학 교사로, 나중에 슬라비아은행의 보험 회계를 담당하기도 하였는데 끊임없는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차츰 술에 의존하게 되었고 급기야 야로슬라프가 열세 살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그 후 하셰크의 가족은 극심한 빈곤에 시달렸다. 어린 시절 내내 빈번히 이사를 다녀 안정적이지 못한 환경이 점철됐다.
겨우 학업을 마친 하셰크는 슬라비아은행의 은행원의 자리를 얻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이 일을 그만두었고 자유로운 보헤미안의 삶에 젖어 들었다. 이후 무정부주의자로서 유럽 전역을 여행했는데 당시 헝가리 제국의 일부였던 슬로바키아, 헝가리와 폴란드, 그리고 발칸반도까지 갔다. 발칸반도에서는 마케도니아 봉기에 합류하기도 했다. 러시아 국경을 넘으려는 시도를 하다가 체포되어 크라쿠프에서는 수감 생활도 했다. 그 후에도 슬로베니아, 빈, 바바리아, 베른, 베네치아까지 여행을 했고 알프스를 넘어 걸어서 고향까지 돌아오는 긴 여정을 이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다가 만난 여행자들, 부랑자들과 친구가 되기도 했다. 1907년에는 후에 《훌륭한 병사 슈베이크》의 삽화를 그려 필생의 연을 맺는 요세프 라다와 만난다.
하셰크는 신문사 기자 겸 편집자로도 일했다. 1908년부터는 《여성의 지평선》이라는 잡지, 1910년에는 시사 풍자 잡지 《동물의 세계》의 편집자로 일을 하면서 《체코의 소리》, 《체코슬로반》, 《횃불》, 《유머》지 등의 잡지에 글을 기고했다. 이 시기 야르밀라 마예로바라는 여성을 알게 되어 결혼하는 한편 그를 죽음으로 몰아 간 알코올 중독이 시작된다.
하셰크는 삶에서 경험한 다양한 시대상을 작품에서 그려 냈는데 당시 잭 런던이나 막심 고리키의 시대 비평 문학들과 견줄 수 있을 만한 것들이었다. 작품에 객관적 고고학, 광물학, 지질학, 동물학 등의 백과사전적 사실과 그로부터 영감을 받은 이야기를 풍부하게 녹여 내 당시의 저명 문학 비평가였던 프란티셰크 크레이치(František V. Krejčí, 1867∼1941)는 하셰크의 작품을 두고 “우리 문학사 최초의 ‘과학적’ 문학 작품”이라고 칭할 정도였다.
1911년에는 온건 진보 성향의 정당을 조직해 선거를 통한 개혁을 실천했고 스스로 선거에 입후보하기도 했다. 1차 대전이 발발한 직후인 1915년에 하셰크는 체스키 부데요비체의 91연대에 자원입대해 갈리치아 전선으로 향한다. 본인의 자원입대에 대해서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동안 그는 행방불명이 된 것으로 추정됐다. 당시 오스트리아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다수의 체코인 병사들이 그랬듯이 그 역시 마찬가지로 1915년 가을에 스스로 전쟁 포로가 되어 압송됐고 그와 함께 포로가 된 체코인 병사들과 함께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 들어가 활동을 했다.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러시아까지 이동했으며 얼마 후인 1918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 군단에서 나와 모스크바에서 체코 사회민주당에 합류하여 코민테른의 지원하에서 러시아 적군에 들어가 복무했다. 러시아 우파(Ufa)에서 군 출판국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대 외국인 협력 부서의 담당자로도 활동했다.
1920년 12월 다시 프라하로 돌아와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그러나 악화된 건강으로 인해 붉은군대가 운영하는 포로수용소 안에 있던 거처를 떠나 리프니체 나트 사자보우로 이주해 작품을 마무리 지으려 했다. 스스로 집필을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창가에 놓인 철제 매트리스 위에 누워 조수인 클리멘트 슈테파네크에게 자신의 말을 받아 적게 하여 《훌륭한 병사 슈베이크》의 마지막 장을 완성하려고 애썼다. 그의 삶의 마지막 한 주간은 우울하고 비참했다. 몸은 많이 부어올라 있었으며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고 걸을 수도 없었다. 슈베이크의 이야기를 말해 주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 그렇게 그는 만 40세를 채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하셰크는 죽음 이후에도 평안하지 못했다. 주변에 장례 비용을 부담해 줄 사람이 없어 결국 그의 장례 비용은 빚으로 남았다. 교회로부터도 배척을 당하는 사람이어서 교회의 예법에 의존해야 했던 당시의 장례 절차에서도 문제를 겪었다. 불신자로 취급되어 묘지 내에 묻히는 것도 거부되었으며 결국 자살한 사람들이 묻히는 시체안치소 뒤쪽 그늘진 곳에 묻혀야 한다는 판결을 받았다가 교구 신부의 허락을 간신히 얻어 묘지 담장 안쪽에 묻혔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상속자들의 기부로 설립된 에두아르트 바세 재단의 후원으로 화강암으로 만든 소박한 비석을 갖춘 묘로 단장됐다.
옮긴이
홍성헌
개신교 목사의 가정에서 태어나 감리교 신학대학 기독교 교육학을 전공했고 체코 프라하의 공연예술대학에서 연극 석사과정을 마쳤다. 프라하의 알프레트 베 드보르제(Alfred ve Dvoře), 인스피라체(Inspirace), 아르하(Archa) 극장 등에서 배우로 활동했고 한국에 돌아와 극단에서 연출가로 활동했다.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 활동가로 일했으며 늘푸른 청소년 대안학교에서 연극교사로도 활동했다.
연극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시민들과 함께 고전 희곡을 읽으며 토론하는 ‘희곡 살롱’ 모임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으며 다양한 주체들과 간간이 공연을 제작하여 상연하는 활동을 해 나가고 있다. 고전 희곡들이 현대인의 언어로 전달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희곡 대본을 구어체 문장으로 바꾸는 작업을 해 오고 있으며 이렇게 바뀐 대본으로 연기를 가르치고 있다.
세계의 유명 소설들을 희곡 대본으로 만들어 보다 많은 독자들이 낭독 공연을 하듯이 작품을 함께 읽고 공연하게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차례
1부 후방에서
1. 훌륭한 병사 슈베이크가 세계대전에 말려들다
2. 경찰청에서의 훌륭한 병사 슈베이크
3. 법정 의무관 앞에서의 슈베이크
4. 슈베이크를 정신병원에서 쫓아내다
5. 살모바 거리에 있는 경찰서에서의 슈베이크
6. 마법에 걸린 궤도를 헤치고 집으로 돌아온 슈베이크
7. 슈베이크가 입대를 하다
8. 꾀병쟁이 슈베이크
9. 영창에 갇힌 슈베이크
10. 군종 신부의 시종병이 된 슈베이크
11. 슈베이크가 군종 신부와 야전 미사를 집전하러 가다
12. 신앙 토론
13. 슈베이크가 집례하러 가다
14. 루카시 중위의 군 시종병 슈베이크
15. 재앙
지은이 후기
2부 전방에서
1. 슈베이크가 기차에서 저지른 사고
2. 슈베이크의 부데요비체 진군
3. 키랄리히다에서 벌어진 슈베이크 사건
4. 새로운 고난
5. 모스트 나트 리타보우에서 소칼로
4부 영광스러운 응징을 계속하다
1. 러시아 포로 수송대에서의 슈베이크
2. 영혼의 위로
3. 자신의 행군중대로 다시 돌아온 슈베이크
그린이 후기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저희 집에 자주 왔던 친구가 있어요.” 슈베이크가 대화를 시작했다. “호프만인가 하는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그 사람은 항상 이 경고 신호들이 이 손잡이를 잡아당겼을 때, 한 번도 제 기능을 안 한다고,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잘 작동을 안 한다고 주장했어요. 나는, 제대로 말하자면, 이런 것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여기서 이 경고 장치들을 보니까 나도 혹시 이걸 언젠가 필요로 할 때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알고 싶어지네요.” 슈베이크는 일어나서 철도보조원과 함께 비상 제동 장치 쪽으로 다가갔다. “비상시 사용.”
철도보조원은 자신의 의무를 인식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전체 경고장치의 메커니즘이 작동하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이 손잡이를 잡아당겨야 한다는 것은 그분이 정확히 설명을 했네요. 하지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에요. 기차는 언제나 정지하지요. 왜냐하면 기관차에 딸려 있는 모든 객차들에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비상 제동 장치는 반드시 작동해야 하죠.”
두 사람은 동시에 지렛대 손잡이를 손으로 잡고 있었고 그들이 그것을 잡아당겨 기차가 멈추는 일이 발생한 것은 분명 불가사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