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지영 작, <소풍>
정희는 자폐 아들 은우에게 남다른 수학적 재능이 있다고 믿는다. 은우에게 집착하는 정희,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딸, 이 가족의 갈등과 불화는 날이 갈수록 깊어 간다. 그리고 어느 날 정희는 위암 말기 진단을 받는다. 자신이 없는 세상에 남겨질 은우, 가족에게도 외면당할지 모를 은우 걱정뿐이던 그녀는 은우를 데리고 소풍길에 나선다. 이지영 작가의 생생한 인물 묘사와 치밀한 구성이 돋보인다. 2015년 서울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신진작가전 ‘희곡아솟아라’ 당선작이다.
하일호 작, <내 아이에게>
세월호 참사 이후 광화문에서, 안산에서, 팽목항에서, 청운동에서, 국회에서, 거리 곳곳에서 희생자 가족들이 토해 낸 뼈아픈 심정을 온전히 담아낸 작품이다. 잊혀 가는 그날의 아픔을 다 같이 기억하기 위해 연극 형식을 빌려 그 참담한 심정을 무대 언어로 옮겼다. 극은 딸이 차가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그날로부터 현재까지 지난 시간들을 복기하며 읊조리는 어머니의 편지고 일기다. 어떤 허구나 상상도 더해지지 않았다.
김민정 작, <일물>
‘일물’은 사도세자가 갇힌 뒤주를 부르는 말이다. 극은 혜경궁의 회갑연에서 정조가 통곡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정조는 어머니에게 “누가, 왜 내 아버지를 죽였는가” 묻는다. 그로부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영조, 세자, 정조 3대에 걸친 가족사가 펼쳐진다. 의문에 싸인 세자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깊은 죄의식을 남겼다. 그리고 그를 직접 ‘일물’에 가둔 영조조차 죄책감에 시달렸다는 사실이 정조의 회상 가운데 드러난다. <해무>와 <하나코>를 쓴 김민정 작가의 신작이다.
김수미 작, <잔치>
노모는 잔치 음식을 준비하며 멀리서 찾아올 자식들을 기다린다. 그녀는 어지러운 현대사 한가운데서 4남매를 키웠다. 그러다 1987년 봄, 사고로 셋째를 잃었다. 이제 자식들은 장성해 각자 삶을 산다. 그사이 그녀는 늙었다. 치매로 기억이 희미해지는 것을 느낀다. 꼬장꼬장하던 남편도 중풍으로 쓰러진 뒤 사지를 쓰지 못하는 채 방에 누웠다. 자식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그녀는 그 마지막 희생을 위한 잔치를 준비 중이다.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탁월한 극 구성으로 2011년 차범석희곡상을 수상한 김수미 작가의 작품이다.
김진만 작, <다목리 미상번지>
사방이 군 부대로 둘러싸여 항상 긴장감이 감도는 휴전선 인근 마을 다목리에서는 해마다 시상식이 열린다. 마을금고에서 저축이 가장 많은 어린이에게 수여하는 저축상 시상이다. ‘봉만’ 기필코 저축상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용돈 벌이에 매진한다. 그사이 보안대 주임상사였던 전경호가 새로운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이후 마을에는 자꾸만 불가해한 일들이 벌어지고, 올해 유력한 저축상 수상자로 떠올랐던 봉만에게도 위기가 닥친다.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에서 1980년에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실제로 이곳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김진만 작가가 2년에 걸쳐 대본을 완성했다.
200자평
2016년 37회 서울연극제 공식 선정작을 엮은 희곡집이다. 신진작가전 ‘희곡아솟아라’ 당선작인 이지영의 <소풍>, 2011년 ‘차범석희곡상’ 수상작인 김수미의 <잔치>, 세월호 참사를 소재로 한 하일호의 <내 아이에게> 외에도 김민정의 <일물>, 김진만의 <다목리 미상번지> 등 5편을 수록했다. 한국 연극의 최신 동향을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
이지영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포천중문의과대학교에서 간호학을 전공해 졸업 후 간호사의 길을 걷는가 싶었으나, 오래전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온 그녀는 전공을 뒤로하고 카피라이터 및 라디오 작가를 거쳐, 여행 작가의 삶을 살게 된다. 그러다 2008년 직장인 연극 단체인 극단 아해에 입단하게 되며 본격적으로 연극 작업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 이후 직장 생활과 연극을 병행하며 꾸준히 연극에 대한 열정을 키워 오다 지난 2014년 제35회 근로자문학제 희곡 부문에서 <기획2팀>으로 금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희곡 창작 활동에 집중했고, 서울연극협회가 주최한 2015년 ‘희곡아솟아라’에서 당선되었다.
하일호
연극 <쇼팔로비치 유랑극단>으로 연극계에 들어섰다. 그 작품을 보러 온 한 관객이 “정말 감동적이지 않니?”라고 옆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힘으로 아직 배우들과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연습하고 있다.
김민정
1974년, 해넘이가 매우 아름다운 작은 호수가 눈앞에 보이는 외딴집에서 오빠 셋 밑에 막내로 태어났다. 풀밭과 개울가를 뛰어다니던 어린 시절, 삼촌과 오빠들의 서재는 그의 또 다른 놀이터였고, 전등을 끄면 덮쳐 오는 완벽한 어둠은 어느 시대, 어느 공간으로든 갈 수 있는 상상의 놀이터였다. 조금은 심심했고, 조금은 외로워서, 공상하고 끄적이는 걸 좋아했고, 그래서 지금 글을 쓰며 살고 있다. <가족의 왈츠>, <십년 후,>, <해무>, <나, 여기 있어!>, <길삼봉뎐>, <이혈>, <호스피스>, <고사>, <하나코> 등의 작품을 공연했다. 언제나 글쓰는 이로서 돋보기를 들이대고 싶은 구석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과 자신을 포함한 그들의 눈물과 웃음이다.
김수미
199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 <부러진 날개로 날다>로 등단했다. 이후 창작희곡 <양파>, <나는 꽃이 싫다>, <달의 목소리>, <현장검증>, <그녀들의 집> 등을 발표했다. 차범석희곡상. 동랑희곡상 대상. 거창국제연극제 희곡 공모 당선. 한국희곡신인문학상, 옥랑희곡상 등을 잇따라 수상하며 왕성한 창작 활동을 이어 가고 있다.
김진만
극작가, 연출가, 프로듀서. 젊은연극인상, 2인극페스티벌 작품상, 대종상영화제 신인배우공모 대상, 국립극장 셰익스피어어워즈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극단 앙상블 대표와 한국 국제 2인극 페스티벌 집행위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세종대학교 문화예술콘텐츠대학원 석사 졸업했다. 하이서울 페스티벌 창경궁 총감독과 서울연극제 ‘미래야솟아라’ 심사위원장을 역임했다. <코러스라인>, <노인과 바다>, <햄릿>, <서동요>, <스핀 오디세이>, <마법천자문>, <패러디 판타지아> 외 뮤지컬 다수, <다목리 미상번지>, <꽃가마 타고>, <낚시터 전쟁>, <킬리만자로의 눈>, <안아 주세요>, <부비바튼쇼단> 외 연극 다수, <대동가극단>, <은주이야기>, <궁중광대와 놀다> 외 창극 다수, <익스트림 로미오와 줄리엣>, <절정>, <메가버블쇼> 외 퍼포먼스 다수를 극작, 각색, 연출했다. 다수의 콘서트에 연출 및 운영감독으로 참여했다.
차례
소풍
내 아이에게
일물(一物)
잔치
다목리 미상번지
책속으로
정희: 그 시인이 그랬어. 이 세상 소풍 끝내고 하늘로 돌아간다고. 은우도 엄마도 지금 소풍을 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아주 긴 소풍.
은우: 지금처럼.
정희: 그래. 지금처럼. … 은우야. 우리도 돌아갈까?
−<소풍> 중에서
어머니: 내 아이야, 우리의 단원고 아이들아, 너희의 친구들아, 내 어린것들아! 불행한 그러나 위대한 너희들의 자랑스러운 어머니와 아버지의 축복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세상 여행을 떠나거라. 갈 길은 멀다. 그리고 어둡다. 하지만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두려움 없는 사람 앞에 길은 열린다. 이제 그만 푹 자라. 그리고 나에게 ‘잘 자요! 엄마’라고 말해 주렴.
−<내 아이에게> 중에서
세자: (호탕하게 웃으며) 두려웠느냐? 내 어이 너를 쏘리. 너는 나 자신이거늘. 너는 나의 미래이거늘. 내가 없을 때의 나이거늘. 네가 바로 나이거늘.
정조: (울먹이며) 아바마마!
세자: 가자! (뵈지 않는 세손을 데리고 들어가며 회한의 어조로) 내 너를 쏘지 않았으나 … 너는 나를 쏠 것이다. … 아들은 아비를 쏠 것이다.
정조: (오열) 아바마마!
−<일물> 중에서
진숙: 우리더러 어쩌라고?
노모: 내가 네 선생이가?
진숙: 가르쳐 줘야지. 가르쳐 주고 가. 가르쳐 달라고…
노모: 내는 네 에미다. 살점 떼 달라면 떼 주는 네 에미다.
진숙: 엄마…
노모: 네도 그랄 거 아이가.
진숙: 엄마…
−<잔치> 중에서
김봉만: 나는 1학년부터 5학년까지 줄곧 우등상을 탔었지만,
단 한 번도 저축상은 타 본 적이 없다.
내가 저축상을 타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왜냐? 난 돈이 없기 때문이다.
−<다목리 미상번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