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관광 지대>는
1960년대, 긴장되어 있던 남북 관계를 희극적으로 풀어 낸 단막 소극이다. 허례허식으로 가득한 남북협상 과정과 서로 손해 보지 않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을 교묘하게 비틀어 허탈한 웃음을 유발했다. 판문점 일대 땅 주인 한남북이 해설자로 등장한다. 그가 남북협상을 관객에게 설명하는 형식이다. 한남북은 직접 자신을 소개하면서 관객들을 관광 지대, 즉 판문점에서 벌어지는 협상을 구경하는 관광객으로 전환시킨다. 철조망으로 정확히 양분한 무대 가운데 UN 측과 북측의 협상 테이블을 두는데, 이곳이 구경거리가 가득한 관광지가 될 수 있다는 냉소적 시선을 서사적 기법으로 가시화한 것이다. 1963년에 쓴 작가 데뷔작으로, 작가는 이 작품을 발표한 뒤 경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는 삼엄함 검열로 전문 극단에서 공연할 수는 없었지만, 1980년대 대학가 연극반 인기 레퍼토리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는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A와 B가 언제 올지 모르는 대장을 기다리는 모습을 극화한 단막극이다. 1967년 극장 드라마센터에서 이효영 연출로 극단 탈이 초연했다. 무대 중간을 가르는 철조망을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인물들의 모습이나, 등장인물 A, B, C가 서로 친척일지도 모른다는 대사 등을 통해 이 작품이 남북문제라는 작가의 관심사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드러낸다. 작가가 작품 말미에 언급했듯이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는 사무엘 베케트의 부조리극 <고도를 기다리며>에 큰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부조리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등장한 연극 형식으로, 무의미한 대사와 행동, 인과관계를 무시한 플롯이 특징이다. 주로 인간 존재의 허무함을 드러낸 작품들을 가리킨다.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는 기다림에서 시작해 기다림으로 끝나는 반복 구조, 끈과 사탕을 다른 주머니로 끊임없이 옮기는 무의미한 행위, 이어지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대화 등을 통해 부조리극의 특징을 적절히 구현했다.
200자평
박조열의 희곡 두 편을 엮었다.
지은이
박조열은 1930년 함경남도 함주군에서 출생해 함흥중학교를 졸업한 뒤 원산공업학교에서 문학 교사를 지냈다. 한국전쟁 중 월남해 12년간 육군으로 복무한 뒤 드라마센터 연극 아카데미 연구 과정에 입학하면서 희곡과 방송극 작가의 길로 들어선다. 이데올로기의 허상과 민족의 고통, 분단 현실에 대한 작품을 다수 창작했는데 다소 무거운 소재들을 희극적으로 풀어냈다. 남북문제를 다룬 작품 중 다수는 검열 때문에 공연 불가 판정을 받기도 했다. 1976년, 북에 있는 가족의 고통을 알게 된 뒤로 희곡 창작을 중단했다. 1964년 <토끼와 포수>가 당시 유일했던 연극상인 동아연극상 대상·연기상·희곡상을 수상하면서 평단에 이름을 알렸고, 1988년 <오장군의 발톱>으로 백상예술대상을 수상했다. 2000년 카이로 국제실험극연극제에서 공로상을 수상했고, 문화훈장 옥관장을 받았다. 대표작으로는 <토끼와 포수>(1964),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1966), <흰둥이의 방문>(1970), <오장군의 발톱>(1974) 등이 있다.
차례
관광 지대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
<관광 지대>는
<목이 긴 두 사람의 대화>는
박조열은
책속으로
한남북: (다 퇴장하자 관객에게 다가서며) 여러분, 제1234차 정전회담은 이것으로 끝났습니다. 네? 폐회 선언이 없지 않았느냐고요? 참 그렇군요. 아마 그 황소 소동 바람에 잊었던 모양이죠? 하지만 그까짓 것은 염려 안 해도 좋습니다. 요다음 회의 때 폐회 선언을 먼저 하고 시작하면 되니까요. 제가 알기에는 휴전 후 이 회담에서 쌍방이 완전 합의를 본 것은 오늘이 처음입니다. 저 문이 잠시나마 트여서 남북 교류가 이루어진 것도 물론 처음입니다. 월북한 간첩 동무는 아마 내일 새벽부터 이북의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전기가 없는 캄캄한 서울 거리와 미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남조선 노동자, 농민들의 투쟁에 대하여 놀라울 만한 창작적 능력을 발휘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