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각장애인을 위해 낭독 봉사를 하던 명인은 현수를 위한 낭독자로 고용된다. 현수는 명인이 수녀가 된 누이 현진의 친구라는 사실을 알고 그녀를 고용하지만 그 사실을 숨긴 채 자신이 원하는 책이나 문구를 낭독하게 한다. 현수가 낭독하게 하는 책들은 현수의 고통과 연관되며, 결국 현수는 명인에게 사춘기 시절 누이와 사소한 근친상간적 충동이 어머니에게 파행적으로 해석되고 족쇄로 작용했다는 진실을 알려 준다.
한편 명인은 애정 없는 부부 생활을 묵묵히 견디던 중, 현수의 낭독자로 고용되면서 혼란을 느낀다. 그녀는 현수네의 진실을 알아 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적 고통 역시 직시하게 되며, 배 속의 아이를 낙태하게 된다. 그날 남편은 명인을 구타하고 봉쇄 수도원에 갇혀 지내던 친구 현진은 수도원을 나와 명인을 찾는다.
<구멍의 둘레>는 인간의 의무와 고통, 파계와 구원이라는 주제를 깊이 있게 천착했다. 또 이 작품은 레몽 장의 ≪책 읽어 주는 여자≫, 엔도 슈사쿠의 ≪침묵≫ 등 다양한 외부 텍스트들을 인용하고 낭독하면서 이질적인 텍스트들의 상호작용을 추구했다. 1994년 삼성문예상 희곡상에 입선했고 같은 해 극단 산울림 제작, 채승훈 연출로 산울림소극장에서 초연했다.
200자평
시각장애인에게 낭독 봉사를 하는 명인을 중심으로 성, 가족, 종교의 의미를 탐색한 작품이다.
지은이
정우숙은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희곡 <소망의 자리>로 등단한 뒤 극작가로 활동했다. 1991년 국립극장 장막희곡상에 <푸른 무덤의 숨결>이 입선했다. 대표작에 <내가 죽은 이유>, <구멍의 둘레> 등이 있으며 희곡집 ≪푸른 무덤의 숨결≫(1999, 월인), ≪보라색 체육복≫(2006, 연극과인간)을 출간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프롤로그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에필로그
<구멍의 둘레>는
정우숙은
책속으로
예린: 난요, 나만 방에 남겨 두고 어른들끼리 하는 얘길, 어떤 땐 다 들어요. 듣고도 모르는 말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들어요. 듣고 나면… 속이 상해요. 아기 기차 칙칙이처럼 겁도 나구요. 시커먼 굴속에 들어가 우렁우렁 귀가 울리도록 한참을 달려도, 굴 바깥으로 나오지 못하면 어쩌나…. 내가 요즘 귀신 나오는 옛날얘길 자주 들어서, 맘이 허해졌나 봐요. (비밀을 말하듯 소리 낮춰) 맘이 허해졌단 말은 할머니한테 새로 배운 말이에요.
상기: (다시 잠잠해져 가는 네 살짜리 예린이의 잠든 이마를 어루만지며) 예린아. 넌 니 마음대로 자라라. 본받을 위인이 따로 없으니까, 니가 자면서 꾸는 꿈대로 그냥 쑤욱쑤욱 자라거라- (혼잣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