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자평
나는 누구인가. 이 책에서 다루는 다큐멘터리들의 주인공은 바로 감독 자신인 ‘나’다. 나는 우주 속에서 가장 작은 존재이기도 하지만 가장 큰 우주이기도 하다. 각 작품은 나의 가족, 나의 사랑, 나의 상처, 나의 성적 정체성, 나의 죽음, 나의 욕망, 나의 일상, 나의 실패를 이야기한다. 감독들이 이를 풀어 나가는 방식은 도전적이고 실험적이다. 이 작품들을 통해 다큐멘터리 장르의 다양한 예술적 가능성을 탐구하려 한다. 나아가 각자의 방식으로 나에 대해 질문하는 태도와 성찰을 만나는 동안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다큐멘터리들이 던지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바로 우리의 질문이기도 하다.
지은이
최진성
숭의여자대학교 영상컨텐츠 전공 조교수로 영화, 다큐멘터리, 방송 등을 강의한다. 연세대학교, 서강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등에서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강의했다. 서강대학교에서 사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전기 영화’에 대한 논문으로 영상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화 <소녀>(2013)와 다큐멘터리 영화 (2012)을 연출해서 개봉했다. 저서로는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 역사와 진실, 그 어제와 오늘의 기록』(공저, 2003)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전기 영화 의 탈신화적 재현을 위한 영화적 상상력-변신의 귀재 ‘밥 딜런(들)’”(2015), “죄 없는 K는 악몽의 미로를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인가”(2013), “한없이 불투명에 가까운 ‘블루’”(2013), “‘오뎃사의 계단’을 오르내리는 다양한 방법”(2008), “죽음에 이르는 문: <라스트 데이즈(Last Days)>의 사운드 실험 분석”(2008) 등이 있다.
차례
01 다큐멘터리 역사 속의 나
02 시네마베리테와 나
03 실험하는 나, 모건 스펄록 <슈퍼 사이즈 미>
04 ‘나들’로 이루어진 나, 조너선 카우엣 <타네이션>
05 감추는 나, 데릭 저먼 <블루>
06 일기 쓰는 나, 제이 로젠블랫 <나는 영화감독이었다>
07 욕망하는 나, 정중식 <나는 중식이다>
08 실패하는 나, 마이클 무어 <로저와 나>
09 편집하는 나, 오슨 웰스 <거짓의 F>
10 카메라와 나, 지가 베르토프 <카메라를 든 사나이>
책속으로
무어의 데뷔작 <로저와 나>를 다큐멘터리 역사 안에서 ‘새로운 목소리’의 등장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현재까지도 굳건하게 다큐멘터리의 주요 형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내레이션 전통인 ‘신의 목소리’에 대척되는 목소리를 들고 나왔다는 점에 있다. 즉 모든 사실 ‘위에서’ 해설하고 판단하는 신의 위치에 있던 내레이션을 시민의 위치인 ‘아래로’ 가지고 내려온 것이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라는 개인의 목소리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해설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다큐멘터리 역사 속의 나” 중에서
그런데 특기할 만한 것은 감독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나라는 1인칭으로 스스로를 호명하지 않는다. 감독은 자막을 통해서 나를 ‘나’라고 부르지 않고 ‘조너선’ 또는 ‘그’라고 부른다. ‘나’를 1인칭이 아닌 3인칭으로 ‘거리 두기’하는 영화적 전략을 통해서 흥미로운 정서가 유발되는 것이다. 이는 카우엣 감독이 <타네이션>이라는 영화에서 ‘나’를 대하는 중요한 태도가 된다.
“‘나들’로 이루어진 나, 조너선 카우엣 <타네이션>”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웰스가 영화 안에서 내레이션을 하는 장소가 ‘편집실’이라는 점이다. 그는 편집실에서 자신이 편집한 <거짓의 F>의 화면을 바라보며 논평을 해 나간다. 영화의 순조로운 진행 사이에 종종 끼어드는 이 ‘편집실 논평 장면’은 당신이 지금 보고 있는 이 영화가 ‘편집된 것’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즉 웰스가 ‘편집실 내레이션’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편집된 사실’을 통해서만이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적 진실’을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편집하는 나, 오슨 웰스 <거짓의 F>”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