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아프리카의 부시맨이나 피그미족,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집단은 규모가 매우 작다. 따라서 연장자의 권위와 같은 비공식적이면서 한시적인 지도 체제를 통해 집단이 유지되며 구성원들의 관계가 아주 평등하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수천 명 혹은 수만 명 이상의 규모를 지닌 아프리카의 거대한 집단들을 상대할 경우에, 이런 사회들이 어떤 원리로 질서를 유지하며 사회관계는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설명할 때 큰 어려움을 겪어왔다. 인구가 20만 명에 달하는 누에르족은 중앙정부나 특별한 정치 지도자가 존재하지 않으며,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평등하면서도 정치적으로 잘 통합되어 있고, 일정한 지역을 점유하는 부족 집단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처럼 거대한 집단이 분쟁을 해결하고 구성원들이 소속감을 지니면서 집단을 유지해 나가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논점이다.
이 책에서 드러나는 에번스프리처드의 관점은 기본적으로는 구조주의적인 정태성에 근거하며 영국의 구조-기능주의적 시각을 잘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화이트나 거프 등은 이러한 관점의 몰역사성과 구조-기능주의를 비판하면서, 시간적인 맥락 속에서 누에르족을 분석하는 작업을 시도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에번스프리처드 스스로가 래드클리프브라운의 구조-기능주의를 비판하면서, 사회사로서의 사회인류학을 주창하고 나섰다. 그리고 인류학자는 다른 사회를 제대로 이해하여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도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충실히 번역하는 것이 중요하며, 자연과학적인 엄밀성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의미와 상징성을 발견하는 것이 한층 중요하다고 보았다. ≪누에르족≫은 역사와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자의 저술이면서도 상대적으로 역사적인 관점이 결여돼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사회인류학에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200자평
누에르족 3부작 중 첫 번째로 1940년에 출판된 이래 사회인류학에서 가장 중요한 고전이다. 고전구조주의적 정태성에 근거하며 영국의 구조-기능주의적 시각을 잘 반영했다. 치밀한 구성과 번뜩이는 통찰력이 돋보인다.
지은이
에드워드 에번스프리처드는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인류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특히 영국에서는 말리노프스키와 래드클리프-브라운을 제치고 가장 존경받는 인류학자로 꼽히기도 한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여 1924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런던 정경대학으로 학교를 옮겨, 셀리그먼의 지도로 인류학 전공을 시작하여 말리노프스키에게서 배웠으며, 아잔데족 조사를 통해 1927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런던대학에서 사회인류학을 강의하면서 계속하여 조사를 수행했다. 1932년 카이로 푸아드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가 되었으나 곧 그만두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의를 했다. 이보다 앞선 1930년에 셀리그먼의 주선으로 수단 지역의 원주민 집단에 관한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2차 대전 중에는 영국군의 정보장교로 복무하면서, 수단과 에티오피아의 국경에서 이탈리아군에 맞서 게릴라 부대를 지휘했다.
초기 저작은 ≪아잔데족의 마술과 신탁(Witchcraft, Oracles and Magic among the Azande)≫(1937), ≪누에르족(The Nuer)≫(1940), ≪누에르족의 친족과 결혼(Kinship and Marriage among the Nuer)≫(1951), 그리고 마이어 포티스와 함께 편집한 ≪아프리카의 정치체계(African Political Systems)≫(1940) 등이 있으며, 영국 인류학의 조류인 구조주의와 기능주의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후기의 중요한 저작으로는 ≪원시종교론(Theories of Primitive Religion)≫(1965), ≪아잔데족(The Azande: History and Political Institutions)≫(1971) 등을 들 수 있으며, 인류학의 과학적인 측면보다는 해석학으로서의 인문학적인 측면을 추구한다.
옮긴이
박동성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도쿄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근대 일본의 ‘지역사회’의 형성과 변용: 시즈오카현 시모다시의 사례를 중심으로>(2006, 일본어)다. 주요 논문은 <일본의 공중목욕탕: 한 지방도시의 사회사와 센토의 변천>, <일본의 한 지역의 사회사와 향토사 운동: 이즈시라하마(伊豆白浜)의 사례> 등이 있고, 역서로는 ≪정보인류학의 세계: 원숭이가 컴퓨터를 만든 이유≫[오쿠노 다쿠지(奧野卓司) 저, 정보문화센터, 1994], ≪쌀의 인류학: 일본인의 자기인식≫[오누키 에미코(大貫惠美子) 저, 소화, 2001]이 있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서문
제1장 소에 대한 관심
제2장 생태 환경
제3장 시간과 공간
제4장 정치 체계
제5장 출계 체계
제6장 연배 체계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누에르족에게는 우리가 말하는 ‘시간’에 상응하는 표현이 없다. 그들은 시간 낭비, 시간 절약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며, 시간에 맞서 싸우면서 추상적인 시간 경과에 자신을 맞춘다거나 하는 감정이 없다. 그들이 참조점으로 삼는 것은 주로 활동 자체이며 활동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작업은 순서에 맞게 이루어지지만 정확한 행위에 맞추어야 하는 참조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추상적인 체계에 의해 지배되지는 않는다.
-76쪽
누에르족은 엄격한 평등주의적 원칙에 따라 양육되며, 매우 민주적이고, 쉽게 폭력을 행사한다. 그들의 야성적인 정신은 어떤 속박도 거부하며 우월자의 존재도 인정하지 않는다. 재산도 차별을 낳지는 않는다. 소를 많이 소유한 남자는 부러움을 사기는 하지만, 소가 적은 남자와 다른 대우를 받지는 않는다. 출신에 따른 차별도 없다. 어떤 남자가 부족의 우월 씨족이 아니라든가, 심지어 딩카족 출신일지도 모르지만, 타인이 이것을 언급하려고 하면 곤봉으로 머리를 얻어맞을 위험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12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