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꼼꼼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역사 소설
푸시킨은 1833년 여름에 2개월에 걸쳐 푸가초프 농민 반란의 주무대였던 볼가강 유역과 남부 우랄 지방을 여행하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당시 극비 문서에 해당하는 푸가초프 반란과 연관된 기록들을 ‘국립 문서 보관소’에서 직접 열람하며 ≪푸가초프 반란사≫를 썼다. 역사가이기도 한 푸시킨은 이 역사서를 통해 푸가초프 농민 반란의 주요한 원인이 사회·정치·경제적 불만과 억압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그는 이 민란의 진정한 주도 세력은 카자흐 농민들을 비롯한 민중이며, 그 주동자인 푸가초프는 그들의 불만을 하나로 모아 황제 정부를 폭력으로 위협한 폭도나 강도들의 두목에 불과한 인물로 보았다. 그가 직접 발로 뛰어 모은 진정한 사료를 바탕으로 쓴 역사 연구서를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작품이 바로 ≪대위의 딸≫이다. 푸시킨이 개척한 러시아 리얼리즘의 길을 확립한 고골은 ≪대위의 딸≫을 “가장 뛰어난 러시아 산문 문학”이자, “사실보다 더 사실적이고, 진실보다 더 진실한” 명작이라고 평가했다.
당대 사회 현실의 예술적 형상화
푸시킨은 서구의 이성 중심적인 계몽주의 사상에 물든 일부 러시아 귀족 사회, 가부장적 사회 제도, 자신의 명령에 거역하는 귀족들과 장교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무지몽매하고 잔인한 참칭 황제 푸가초프와 그 일당의 폭력성과 잔학성, 계몽 전제 군주를 자처하면서 푸가초프의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는 예카테리나 2세를 비롯한 지배 계급의 부정적인 모습들을 객관적인 묘사로 선명히 부각하고 있다. ≪대위의 딸≫은 18세기 말 러시아 농민 반란이라는 대서사시의 한 에피소드에 불과하다. 따라서 독자들은 이 작품을 폐쇄적이고 예술적인 총체로서의 시간을 지닌 작품으로 볼 필요가 있다. 즉, 독자는 물리적 시간을 물리적 시간이 아닌 ‘예술적 시간’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등장인물들이 참여하는 사건들과 계속 긴밀히 연관된 플롯의 시간으로 이해한다면, 작품을 더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200자평
러시아 근대 문학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푸시킨의 역사 소설이다. 푸가초프 반란을 배경으로 귀족 장교부터 노비, 반란군 괴수, 여제(女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등장시켜 18세기 후반의 러시아 사회를 기록하고 있다. 참화 속에서 숱한 인물들의 운명이 엇갈리는 가운데, 주인공이 여인에 대한 사랑과 황제에 대한 충성을 지켜 내는 모습에서 작가가 전하려는 바를 살피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함께 수록한 파벨 소코로프(Павел Петрович Соколов, 1826∼1905)의 삽화는 원작의 인물들을 한층 더 실감나게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지은이
알렉산드르 푸시킨(Александр С. Пушкин, 1799∼1837)은 모스크바 귀족 가문에서 출생했다. 그의 어머니는 18세기 표트르 대제의 총애를 받은 한니발 장군의 손녀였다. 곱슬머리와 검은 피부를 가진 푸시킨은 자신의 몸속에 에티오피아 흑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그는 프랑스인 가정교사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유모 아리나 로지오노브나로부터 러시아어 읽기와 쓰기를 배웠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 민담과 민요를 들었다. 또한 그는 유모를 통해서 러시아 민중의 삶에 대해 깊이 동정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열두 살 때인 1811년 6년제 귀족학교 리체이에 입학했다. 그는 리체이 재학 중 120여 편의 시를 썼다. 리체이를 졸업한 후 외무성 관리로서 잠시 근무하던 중 진보적 문학 서클인 ‘녹색 램프(질료나야 람파)’에 가입해 미래의 데카브리스트들과 교류했다. 그는 이 무렵 진보적인 시 <자유>, <차다예프에게>, <마을>을 발표해 러시아 남부로 유형을 가게 되었다.
그는 남러시아의 캅카스에서 바이런의 작품을 읽고, 그 영향을 받아 바이런풍의 낭만적인 시를 쓰기도 했다. 그리고 키시뇨프에서는 낭만적이고 이국적인 냄새를 풍기는 작품들인 ≪캅카스의 포로≫, ≪바흐치사라이의 분수 ≫, ≪도둑 형제≫ 등을 발표했고, 운문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버지의 영지인 미하일롭스코예 마을(이 마을에 푸시킨의 집이 있고, 이 마을의 어귀의 스뱌트이 언덕 수도원에 그의 무덤이 있음)에서 ≪예브게니 오네긴≫과 ≪집시들≫을 집필하느라 1825년에 발생한 데카브리스트 난에 참여하지 못한다. 여기서 그는 비극 <보리스 고두노프>를 완성했다. 니콜라이 1세는 데카브리스트 난을 평정한 후 푸시킨을 모스크바로 소환해 그의 작품을 직접 검열하고 감독한다. 그는 1830년 가을 볼지노 영지에서 ≪예브게니 오네긴≫, ≪벨킨 이야기≫, 4편의 작은 비극, 즉 <인색한 기사>,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돌의 손님>, <질병 때의 주연> 등 많은 작품을 쓴다. 1828년 겨울 새해 무렵에 모스크바의 무도회에서 만난 16세의 나탈리야 곤차로바의 미모에 반한 푸시킨은 이듬해 봄에 그녀에게 청혼한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에게 거절당하지만, 다시 청혼해서 결국 1831년 2월 모스크바에서 결혼식을 올리게 된다. 그해 가을, 푸시킨은 페테르부르크로 이주해 살던 중 1833년에 ≪예브게니 오네긴≫을 발표하고, 그해 여름에 볼지노 마을(아버지가 80채의 농가, 246명의 남자 농노, 237명의 여자 농노가 사는 이 마을을 물려주어 푸시킨이 젊은 지주가 됨)을 방문해 그곳에서 ≪스페이드의 여왕≫, ≪대위의 딸≫, ≪청동 기사≫ 등을 집필했다. 페테르부르크의 사교계에서 상당한 인기를 끈 그의 아내는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생활만을 좋아할 뿐, 남편의 문학적 재능이나 지적 활동에는 무관심했다. 니콜라이 1세와 자신의 아내와의 염문이 떠도는 중 그는 황제 시종관으로 임명되어 근무하게 되는 굴욕을 겪는다. 그는 1836년 고골의 도움을 받아 문학잡지 <동시대인>을 발행하고, 이 잡지에 ≪대위의 딸≫을 연재한다. 푸시킨은 자신의 아내와 황제의 염문에 이어 네덜란드 대사의 양자인 프랑스 청년 장교 단테스와의 염문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해 단테스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결국,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1837년 1월 7일 사망한다. 황제 정부는 국민들의 조문 시위를 두려워한 나머지 한밤중에 그의 관을 미하일롭스코예 부근의 스뱌토고르스키 수도원으로 옮겨 비밀리에 장례식을 치르도록 한다.
푸시킨은 ‘러시아 문화의 등불’, ‘러시아 국민 문학의 아버지’, ‘위대한 국민 시인’ 등으로 불린다. 그는 1812년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로 고무된 러시아 국민(민중)의 애국주의 사상, 민족적 자각과 민족적 기운이 고조되는 역사적 시기에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러시아 국민의 사상과 감정을 훌륭히 표현한 러시아 국민 문학의 창시자이자 러시아 문학어의 창시자다. 러시아 국민 생활과의 밀접한 유대, 시대의 선구적 사상의 반영, 풍부한 내용 등에 있어서 그를 따를 러시아 작가는 없다. 투르게네프가 푸시킨 이후의 작가들은 그가 개척한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 것처럼 그의 문학적 영향력은 지대하다.
옮긴이
이영범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어과 학사 및 석사 과정을 수료하고, 모스크바국립대학교에서 <푸시킨의 ≪대위의 딸≫의 시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한국노어노문학회 회장을 지내고, 청주대학교 러시아어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 현재는 같은 대학의 교양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생활 러시아와 러시아 문화 관련 강의 등을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실용 러시아어≫(공저), ≪비디오 러시아문학 감상과 이해 1, 2≫, ≪테마 러시아 역사≫(편저), ≪러시아어 말하기와 듣기≫(공저), ≪쉽게 익히는 러시아어≫(공저), ≪한-러 전환기 소설의 근대적 초상≫(공저), ≪러시아 문화와 예술≫(공저), ≪파워 중급 러시아어≫, ≪표로 보는 러시아어 문법≫, ≪러시아 문화와 생활 러시아어≫, ≪인간의 가치≫(공저) 등이 있다.
주요 역서로는 ≪러시아 제국의 한인들≫(공역), ≪인생론≫, ≪참회록≫, ≪크로이처 소나타≫, ≪체호프 유머 단편집≫ 등이 있다.
차례
제1장 근위대 중사
제2장 길 안내자
제3장 요새
제4장 결투
제5장 사랑
제6장 푸가초프의 난
제7장 습격
제8장 불청객
제9장 이별
제10장 도시 봉쇄
제11장 폭도들의 마을
제12장 고아
제13장 체포
제14장 심판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나는 잠을 깬 후 사벨리치를 불렀는데 사벨리치 대신 마리야 이바노브나가 내 앞에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천사 같은 목소리가 나를 기쁘게 맞아주었다. 나는 그 순간에 나를 사로잡은 달콤한 감정을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나는 감격의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그녀의 한 손을 쥐고 그녀에게 달라붙었다. 마샤는 손을 빼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그녀의 입술이 내 뺨에 닿았다. 나는 그녀의 입술이 주는 뜨겁고 상큼한 키스를 느꼈다. 불길이 내 몸에 확 번졌다. 내가 그녀에게 말했다. “사랑스럽고, 착한 마리야 이바노브나, 제 아내가 되어주고, 저를 행복하게 해줘요.” 그녀는 정신을 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