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童僧>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사미승을 주인공으로 해 인간적인 욕망과 사랑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한 단막극이다. 원제는 ‘도념’이었으며, 함세덕이 1947년에 출간한 희곡집에서 ‘동승’으로 제목을 바꾸었다.
사냥꾼과 비구니 사이에서 태어나 주지스님에게 키워진 도념은 어머니가 살아 있을지도 모르는 속세를 동경한다. 아들을 잃고 불공을 드리러 온 미망인은 도념에게 연민과 애정을 느끼고 그를 수양아들로 삼으려 하고, 도념도 그녀를 따라가고 싶어 한다. 이를 말리던 주지스님이 겨우 허락할 즈음 도념이 토끼를 살생한 일이 발각되어 미망인과 도념은 뜻을 이루지 못한다. 결국 도념은 눈 오는 어느 날 몰래 절을 떠난다.
극연좌가 1939년 3월 동아일보사가 주최하는 제2회 연극경연대회에서 유치진(柳致眞) 연출로 공연했으며 이후 1991년 극단 연우무대가 재공연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어머니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서정적으로 형상화해 작품성과 대중성 측면에서 두루 성공한 것으로 평가한다.
<舞衣島 紀行>은
고기잡이 배를 타지 않으려는 천명과 그를 바다로 내보내려는 공주학의 갈등을 통해 어른들의 욕망에 희생당하는 한 어린아이의 비극을 드러내고 있는 2막 작품으로, 1941년 4월 ≪인문평론≫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보통학교를 첫째로 졸업한 천명을 데릴사위 삼아 의사로 만들겠다는 한의사 구 주부와 그를 뱃사람으로 만들려고 하는 외숙부 공주학의 갈등을 주된 축으로 하고,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가 가난 때문에 결국 천명을 바다에 내보내는 부모와 그 때문에 죽음을 맞는 천명의 비극을 보여 준다.
200자평
함세덕의 대표 희곡 <동승>과 <무의도 기행>을 엮었다.
지은이
함세덕은 1915년 전라남도 목포에서 태어났으며 인천에서 자라 서울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했다. 1936년 ≪조선문학≫에 단막극 <산허구리>를 발표한 이후 1939년 단막극 <동승>으로 동아일보사가 주최하는 제2회 연극경연대회에 참가했고, 1940년에 <해연>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정식 데뷔했다. 일제 말기에는 친일 연극을 다수 창작했다. 해방 직후에는 조선연극동맹에서 활동하면서 <기미년 삼 월 삼 일>, <고목>, <태백산맥> 등을 발표해 이 시기 대표적인 극작가로 확고히 자리 잡는다. 월북했다가 1950년 전쟁 중에 35세로 사망하기까지 10여 년 동안 번안과 각색을 포함해 장·단막 모두 24편을 발표했다. 대표작으로는 <동승>, <무의도 기행> 등이 있다.
차례
童僧
舞衣島 紀行
<童僧>은
<舞衣島 紀行>은
함세덕은
책속으로
朗讀: 나는 이 서글푼 이야기를 고만 쓰기로 하겠다. 그 後 이 배는 동아를 滿載하고 돌아오다, 十月 下旬의 모진 노대를 맞나 破船하였다 한다. 海州 水上 警察署의 呼出狀을 받고, 孔主學과 落京이 달려가 天命의 屍體는 찾어왔다 한다. 그는 부서진 널쪽에다 허리띠로 몸을 묶으고 海州 港內까지 흘러갔든 모양이다. 노틀 하라범 外 여러 동사들은 모두 行方不明이였다고 한다. 내가 昨年 여름 京城이 너무도 憂鬱하야 水泳服 한 벌과 冊 몇 卷을 싸 들고 수물한 살의 내 꿈과 정렬과 감상이 흩어저 있는 이 섬을 찾었을 때, 島民들은 如前히 고기를 잡으러 나갔고 洞里에는 婦女子와 老人들만 있었다. 天命의 집을 찾어가니, 孔氏는 얼빠진 사람같이 부엌에서 멀건-이 바다만 내다보고 있었다. 나를 보드니 달려와 손을 꼭 붙들고 “선생님 그렇게 나가기 싫다는 눔을, 그렇게 나가기 싫다는 눔을…” 할 뿐, 말끝을 잇지 못하고 울기만 하였었다. 天命은 그가 六學年 때 내가 가르키든 兒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