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서양 교육의 역사는 루소를 18세기 자연주의 교육사상가 중 한 명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당대의 인위적인 사회상을 비판하면서 자연에 따른 삶과 교육을 주창했다. 그의 자연주의적 태도를 교육사상에 적용하면, 그가 마음에 품었던 인간교육, 시민교육, 가정교육의 이상이 모두 자연의 질서를 따르려는 시도였다고 말할 수 있다.
루소는 인간이 선하게 타고난 존재라고 믿었다. 인간의 이러한 선한 본성을 교육을 통해 계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교육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자연의 순서를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특히 아이의 이성이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기간에 참된 의미의 교육은 시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의 잘 알려진 ‘소극적 교육’ 개념이다.
루소는 인간의 생득권으로서 자유와 평등을 주장했다. 모든 국가 권력은 일반 대중으로부터 나온다고 주장했다. 루소는 이러한 주권재민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국가의 교육적 역할에 주목했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에서 국가 권력은 시민 각자가 자신의 개별 의지를 잠시 위임한 일반 의지와 다름없다. 문제는 시민 개개인이 인간 본연의 이성적 사고와 행동을 통해 국가의 일반 의지를 자연의 법에 귀속시킬 수 있느냐는 것인데, 이를 위해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을 길러 내는 공교육 시스템 구축은 루소에게 필수불가결한 것이었다.
루소는 주변의 번잡하고 화려한 사교적 삶을 뒤로한 채 인간의 행복을 가정에서의 단순하고 소박한 생활에서 찾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구성원 모두가 맡은 소임을 다하는 질서정연한 가정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러한 조화로운 가정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는 자연의 권위에 의거해 아이를 교육해야 한다. 루소가 부모의 교사 역할을 강조한 것은 가정에서 자녀를 올바르게 교육하는 것이 자연이 인간에게 부여한 의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지난 5세기 동안 서양 교육의 사상 흐름을 되짚어 보면 교육의 목적이 학습에서 발달로 변화했음을 목격할 수 있다. 르네상스라 이름 붙은 고대 언어와 문학의 부활은 교육을 학습의 동의어로 만들어 놓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인문주의 정신이 점차 쇠퇴함에 따라 인간의 발달을 교육의 주된 과업으로 삼는 새로운 교육관이 등장했다. 물꼬를 튼 사람은 교육을 통한 신성의 계발을 주장했던 코메니우스였다. 그러나 논의의 정점에는 루소가 있었다. 루소는 코메니우스로부터 종교적 색채를 지우면서 교육의 목적이 자연의 본성을 계발하는 데 있음을 주장했고, 이러한 새로운 교육관은 이후 페스탈로치, 헤르바르트, 프뢰벨을 거치면서 꽃을 피우게 되었다. 서양 근대의 교육개혁자들 중에서 루소의 위치와 역할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0자평
루소는 주로 ≪에밀≫의 저자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루소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된다. 이 책을 구성하는 일곱 편의 글은 루소의 교육사상에 대한 우리 인식의 지평을 넓히는 데 공헌한다. 루소의 교육사상을 ≪에밀≫이라는 단 하나의 렌즈만을 통해 들여다보려는 우리의 편협한 시각에 경종을 울린다. 루소 교육학의 여러 주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지은이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1778)는 1712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계공이었고, 어머니는 목사의 딸이었다. 어머니가 그를 낳다가 죽었기 때문에 고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유년기를 보냈다.
1720년 아버지가 프랑스 장교와 싸움에 휘말려 제네바를 등졌을 때, 외삼촌 베르나르의 집에 맡겨졌다. 그 뒤 보세의 랑베르시에 목사 집으로 가 라틴어를 비롯해 초보적인 교육을 받았다. 보세에서 2년 동안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나, 결국에는 랑베르시에 남매와 불화를 겪으면서 제네바로 돌아왔다.
1728년 제네바를 떠나 방랑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처음에는 제네바 근교를 배회했고, 이윽고 생활고를 해결할 요령으로 가톨릭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를 계기로 알게 된 바랑 부인의 주선으로 알프스 너머 토리노 수도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에 다시 방랑의 삶을 이어 갔다.
1732년부터 1741년까지 바랑 부인과 함께 지냈다. 처음 4년 동안은 샹베리에서, 나머지 기간은 샤르메트에서 머물렀다. 이 시절 자연을 벗 삼아 자유와 고독의 시간을 보냈고, 다방면으로 책을 읽으면서 미래의 사상가 면모를 갖추어 갔다. 1741년 바랑 부인을 떠나 파리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지만, 점차 도시 생활에 싫증을 느끼고 1756년 파리를 떠났다.
1756년 몽모랑시의 에르미타주에 정착했다. 이 시절은 한편으로는 은둔의 연속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표적인 논고들을 저술하는 생산적인 나날이었다. 1759년부터 1762년까지 ≪신 엘로이즈≫, ≪사회계약론≫, ≪에밀≫을 차례로 세상에 내놓았다.
≪에밀≫이 출간되었을 때 루소는 뜻하지 않게 사회적 논쟁의 중심에 놓였다. 종교 집단과 철학자 집단이 모두 루소를 공격했다. ≪에밀≫은 곧 금서 목록에 올랐고, 루소는 대륙의 여러 망명지를 전전하다가 결국 파리에 있던 흄을 따라 영국행을 선택했다. 1766년 영국에 도착한 루소는 런던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지만, 조용한 시골 생활을 원해서 더비셔의 우턴에 정착했다. 이때부터 ≪고백≫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영국 생활은 녹록하지 않았다. 낯선 언어와 변덕스러운 날씨, 악화된 여론, 거기에 흄과의 불화설까지 겹치며 더 이상 영국에 머물 수 없었다.
1767년 다시 도버 해협을 건넜다. 유럽 각지를 떠돌다가 1770년 오랜 방황에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파리로 돌아왔다. 14년만의 귀환이었다. 이후 8년 동안 소박한 삶을 이어 갔다. 그러다가 1778년 의사의 권유로 파리 근교로 이주했고,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루소는 에름농빌 호수의 푀플리에 섬에 묻혔다. 유골은 프랑스 혁명 이후 1794년 팡테옹으로 옮겨졌다.
엮은이
윌리엄 보이드(William Boyd, 1874~1962)는 1874년에 태어나 1962년에 죽은 영국의 교사이자 교육학자다. 1896년에 글래스고대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신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목사가 되려는 생각을 접고 1900년경에 중등학교 교사 생활을 시작했다. 1911년 글래스고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46년까지 같은 대학교의 교육학 교수로 재직하면서 스코틀랜드 교육협회장과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방문교수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장 자크 루소의 교육이론(The Educational Theory of Jean Jacques Rousseau)≫과 ≪서양교육사(The History of Western Education≫가 있고, 역서로 ≪루소 교육 소저작(The Minor Educational Writings of Jean Jacques Rousseau)≫과 ≪에밀(Emile for Today, The Emile of Jean Jacques Rousseau)≫이 있다.
옮긴이
김성훈은 1973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1992년부터 1999년까지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와 동대학원에서 교육학을 공부했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캐나다 앨버타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전공으로 교육학석사 학위와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7년부터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주로 서양의 교육사상가들을 연구했다. 이 분야의 저서로는 ≪영국의 교육사상가들≫이 대표적이다. 역서로는 에라스무스의 ≪아동교육론≫이 있다. 그 밖에 서양의 교육고전들에서 좋은 문장들을 발췌해 엮은 ≪교육학 명문 100선≫이 있다.
차례
영어 번역자 서문
루소 교육 소저작
루소의 소년기: ≪고백≫ 1, 2권 발췌
생트마리의 교육을 위한 계획
≪백과전서≫에 있는 ‘정치경제’에 관한 논고 발췌
쥘리의 자녀교육: ≪신 엘로이즈≫, 5부, 세 번째 편지
뷔르템베르크 대공의 어린 딸 소피의 교육에 관한 논고
≪에밀≫의 방법으로 소년을 교육한 마블리 신부에게 보낸 세 통의 편지 발췌
폴란드 정부에 관한 고찰
부록
데피네 부인이 그림에게 보낸 편지
루소의 교육 저작들: 연대별 목록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아이들의 교육을 무지하고 편협한 부모들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아이들의 교육은 부모들보다 국가가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다. 왜냐하면 자연의 과정에서 부모는 이러한 교육의 최종 열매를 보지 못한 채 죽을 수 있지만, 국가는 조만간 그 효과를 경험할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은 사라져도 국가는 남는다.
-54~55쪽
똑똑함은 오히려 결점이다. 교사의 뛰어난 재기는 장차 다른 아이들보다 우월한 지위에 오를 당신의 아이를 망칠지도 모른다. 당신의 아이는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수준의 뛰어남을 요구하면서 그보다 열등한 입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불공정한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교양 있는 가정교사를 구하지 마라. 학식은 겉치장에 불과하다. 지식은 여자의 참모습을 가린다. 여자에게 지식이 없을 때 어떤 사람인지를 더 잘 알 수 있다. 여자는 글을 모르는 것이 더 좋다. 아이와 함께 공부를 해 나갈 것이다. 사리분별만 잘할 수 있으면 된다.
-11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