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크리스토퍼 말로는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에 활약한 영국 극작가로, 단명했기에 셰익스피어만큼 명성을 얻진 못했지만 당대 영국 연극의 해방과 르네상스 연극 확립에 기여한 공적을 높이 평가받는 작가다.
<<몰타의 유대인>>은 <<탬벌레인 대왕>>과 함께 말로의 작품 가운데 가장 흥행한 작품에 속한다. 돈에 눈이 멀어 딸까지 죽음에 이르게 한 비정한 유대인 바라바스를 주인공으로 해 당시 팽배했던 물신주의에 대한 경계를 강력히 경고한다. 한편 이 작품은 서사적으로 이전과 차별화된 비극의 특징을 보여 준다. 신화 속 영웅이나 왕과 같은 고귀한 인물의 추락이 아닌 욕망을 극한으로 추구하는 비루한 인물의 비참한 몰락을 다룬 것이다. 주인공의 끝을 모르는 악행 때문에 비평가들은 주인공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을 쉽게 비극으로 분류하지 못했다. 엘리엇은 이 작품을 두고 “끔찍하게 무겁고 심지어 잔혹하기까지 한 희극적 유머를 지닌 소극”이라 평했다. 하지만 말로가 시도한 이런 파격은 이후 극작가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으며,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또한 이 작품에 영향을 받아 쓰인 것이다.
이 작품은 무한한 탐욕을 지닌 한 인간의 파멸을 다룬 새로운 종류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200자평
<<탬벌레인 대왕>>과 함께 말로의 작품 가운데 가장 흥행한 작품. 돈에 눈이 멀어 딸까지도 죽음에 이르게 한 비정한 인물 바라바스를 통해 배금주의를 경계한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에 영향을 받아 <<베니스의 상인>>을 창작했다.
지은이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 1564∼1593)는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1564∼1616)보다 두 달 먼저인 1564년 2월 캔터베리(Canterbury) 제화공의 아들로 태어났다. 천재적이었던 그는 캔터베리 왕립학교를 졸업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의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서 장학생으로 수학했다. 작은 마을의 문법학교만 다닌 것으로 추정되는 셰익스피어와 달리, 말로는 대학 출신의 ‘대학재사들’(The University Wits) 중 한 사람으로 라틴어와 고전 문학에 능통했던 지성적인 문인이자 극작가였다. 런던 연극계에 몸을 던진 그는 1586년부터 죽기 전인 1593년까지 ≪디도, 카르타고의 여왕≫(1586) 포함 6편의 극을 무대에 올리며 런던의 극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말로에 대해서는 그의 희곡들이 무대에서 굉장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 외에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593년 말로는 의문의 사고로 29세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그해 5월 30일 뎁퍼드(Deptford)의 선술집에서 잉그램 프리저(Ingram Frizer)와 벌인 사소한 칼싸움 끝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는 토머스 키드의 증언에 따라 이단 혐의로 추밀원이 말로의 체포 영장을 발부한 지 열흘이 조금 더 지난 뒤였다. 말로는 약 9년 동안 시작과 극작 활동을 했지만 영국 문학계와 무대에 끼친 영향은 적지 않다. 비평가들에 따르면, 그는 ≪베니스의 상인≫을 비롯한 셰익스피어의 여러 작품들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파우스터스, 바라바스, 탬벌레인 대왕과 같은 욕망에 충실한 인물들을 창조함으로써 영국 무대에 최초로 근대적 인간을 소개하고 전복과 위반의 르네상스 정신을 극화했다. 그 천재성에도 불구하고 셰익스피어의 명성과 이른 죽음으로 빛나는 이름을 남기지 못했던 말로에 대해 오늘날 평자들은 ‘더 오래 살았더라면 셰익스피어에게 뒤지지 않는 극작가로 성장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표현한다.
옮긴이
이희원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셰익스피어 및 영미 드라마를 가르치고 있다. 셰익스피어 및 영국 르네상스 드라마를 비롯한 드라마 분야를 폭넓게 연구하고, 드라마 속에 재현된 여성, 역사와 경제, 연극의 정치성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베니스의 상인≫에 나타난 등가 교환의 윤리>(2013), <≪에드먼튼의 마녀≫에 나타난 17세기 영국 마을 하층 여성들의 연극적 경계 넘기>(2017)가 있으며, 대표 역서로는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2012)와 ≪베니스의 상인≫(2015)이 있다. 또한 ≪페미니즘 차이와 사이−젠더 지형의 변화와 페미니즘 문화 연구≫(2011)를 비롯한 여러 책을 공동 집필했으며, 한국고전르네상스학회장과 한국영미문학페미니즘학회장을 지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서막
1막
2막
3막
4막
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바라바스: 나쁜 놈들, 알고 있겠지만 이젠 너희가 날 도울 수도 없다.
그럼 바라바스, 너의 마지막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라.
고통의 분노가 치밀어 오르겠지만
단호하게 네 목숨을 끝낼 수 있도록 애써라.
총독, 내가 바로 네 아들을 죽였던 살인자다.
그들을 서로 싸우게 했던 도전장을 꾸민 것도 나였다.
칼리마스, 내가 너의 파멸을 노렸다.
내가 이 술책만 피할 수 있었더라면,
내가 저주받은 기독교 개자식들과 터키의 이교도 놈들은 물론 너희 모두를
아수라장 속에 빠뜨렸을 것이다.
하지만 극심하게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기 시작하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나를 꼬집어 대는구나.
죽어라 생명아, 떠나라 영혼아, 혓바닥으로 실컷 저주하고 죽어라!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