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박영희(朴英熙, 1901∼?)가 문학 활동을 시작한 1920년대는 근대의 충격에 가장 격렬하게 맞부딪친, 조선 문학의 세련화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박영희가 “조선의 문단에 온 詩의 黃金時代”이며 ‘詩의 世紀’라고 규정하고 있는 1920년대를 정점으로, 박영희는 대단히 빼어난 시와 소설, 평론 등을 다수 발표했다. 문학사적으로 박영희는 우리나라 낭만주의 제1세대라 할 수 있는 동인지 중심 시 운동의 연장 선상에 있다. 박영희는 우리나라 최초의 시 동인지 ≪장미촌≫(1921)의 핵심 동인으로서 문학 활동을 시작한다. ≪장미촌≫은 비록 2호로 단명, 폐간되기는 했으나, 낭만주의라는 특정한 목표를 명백히 주장하고 나선 최초의 시 전문지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1922년에 낭만주의를 표방하고 간행된 동인지 ≪백조≫는 그 동인의 대부분이 ≪장미촌≫의 동인들이었는데 그들은 우리 현대시사의 낭만주의를 더욱 의식적으로 치밀하게 추구하며, 1920년대 조선 문단에서 전위시 그룹으로서 정체성을 확보하려 하였다. ≪백조≫ 동인들 중에서도 박영희, 홍사용, 박종화, 이상화는 ≪백조≫ 3호까지 작품 발표를 거르지 않았던 핵심 동인이었는데, 특히 박영희는 여느 동인과 달리 이론에 가장 강한 동인이었다는 점에서 주의를 끈다. ≪백조≫ 동인들은 창작에만 주력한 것이 아니라, 사상지로 ≪흑조≫를 병행 발간하여 문예이론이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작업들을 병행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듯 대단히 조직적인 문학 운동을 펼쳤다. 이 책 박영희의 1920년대 평론에 초점을 맞추면서, 거기서 엿보이는 낭만주의적 색채와 프로문학으로의 사상적 전환의 의미를 논의했다.
200자평
박영희의 문학에 일관되고 있는 것은 문학의 본질과 치열한 현실 인식이라는 두 개의 뚜렷한 지향이다. 그의 대표 평론을 허혜정이 엮고 해설했다.
지은이
회월(懷月)·송은(松隱) 박영희(朴英熙)는 1901년 12월 20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병욱(秉旭)이며, 어머니는 김승일(金昇日)로 아명은 거복(巨福)이다. 1916년 공옥소학교(攻玉小學校)를 졸업하고 같은 해 배재고등보통학교에 입학, 1920년에 4년을 수료했다. 13세 때 ≪붉은 저고리≫(신문관)에 나온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의 글을 탐독하며 문학에 눈뜬 박영희는 배재중학 재학 시 셰익스피어, 스콧, 바이런, 셸리 등의 작품에 감명을 받아 문학에 입문할 것을 결심한다. 이 시기 나도향, 김기진, 김복진 등과 친교를 맺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0년대 문예지와 언론에 다수의 평론을 발표하며 활발하게 활동했는데, 광복 이후인 1949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국문학사의 강의를 맡기도 했으나 한국전 때 납북되어 그 이후의 행적은 추적되지 않는다. 그의 저서로는 소설과 평론을 함께 묶은 ≪소설·평론집≫(1930), 시집 ≪회월시초≫(1937), 평론집 ≪문학의 이론과 실제≫(1947), 납북 이후 발표되었으나 광복 후 집필된 것으로 추정되는 ≪현대 한국문학사≫(1958)가 ≪사상계(思想界)≫(1958. 4∼1959. 4)에 연재되었고 ≪초창기의 문단 측면사≫(1959) 등이 발표되었다.
엮은이
허혜정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로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한국문학≫ 신인작품상으로 시단에 등단했으며 1995년 ≪현대시≫ 평론에 당선해 평론가로 등단했다. 199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평론상을 수상했고 2010년 젊은평론가상을 수상했다. 현재 숭실사이버대학교 방송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있으며, 계간 ≪천년의 시작≫ ≪시와 사상≫ ≪시인수첩≫ ≪국학자료원≫ 등의 편집위원이다. ≪비 속에도 나비가 오나≫, ≪적들을 위한 서정시≫, ≪에로틱 아우라≫, ≪현대시론≫(전 2권), ≪처용가와 현대의 문화산업≫, ≪혁신과 근원의 자리≫, ≪멀티미디어 시대의 시 창작≫, ≪시를 써야 시가 되느니라≫ ≪초판본 서정주 시선≫ 외 저술이 다수 있다.
차례
朝鮮을 지내가는 너스
文藝運動의 目的意識論
雜誌 編輯者가 본 朝鮮 文壇 側面史
文學과 苦惱의 饗宴
朝鮮語와 朝鮮文學
標準語와 文學
文學上 功利的 價値 如何
文壇 時評: 文壇을 너머선 文藝
≪朝鮮文壇≫ ‘合評會’에 對한 所感
作家와 批評家의 辯: 評家側
學生과 文學
文學 硏究의 素材에 關한 再吟味(一)
創作 方法과 作家의 視野
쳬호 戱曲에 나타난 露西亞 幻滅期의 苦痛
<惡의 花>를 심은=뽀드레르論
文學上으로 본 李光洙
苦憫文學의 必然性
新傾向派의 文學과 그 文壇的 地位
最近 文藝理論의 新展開와 그 傾向
해설
박영희는
엮은이 허혜정은
책속으로
≪開闢≫을 標準 하고 말한다면 十五年이나 發展해 온 今日에 雜誌界가 아주 말 아닌 것을 보게 될 때 亦是 그때가 雜誌 ≪開闢≫의 黃金時代이였든 것이다. 定價 每 冊 五拾錢이고 特別號가 七拾錢이었는대 八千餘 部가 發行 旬日에 賣盡하는 形便이였으니 이것은 어느 便으로 본다면 敎會 關係가 크다고 볼 수 있으나 그것뿐만도 아니라 地方에를 巡廻해 보면 新聞 支局이나 書店치고 ≪開闢≫誌 없는 데가 없고 또는 내 目睹한 바이지마는 靑年들치고 外出할 때면 의레히 短杖 들듯이 이 ≪開闢≫을 옆에 끼고 다니였다. 그만큼 이 雜誌는 時代的 寵兒 노릇을 하였든 것이다. 그때의 版局으로 말하면 거리거리 동네동네의 各樣의 團體의 看板이 붙어 있었고 누가 言行이 不美한 點이 조금만 있어도 會 뫃은흔다 代表를 뽑는다 하고 야단법석을 하던 판이었는데 그 틈에서도 ≪開闢≫은 할 수 있는 대로 公正한 立場을 직히여 왔으며 오히려 그 옳다고 생각하는 便에 率先 加擔해서 輿論을 이리키였다.
또한 그때의 新聞은 그들을 當할 出版物이 없으매 때때로 專橫하는 일이 많었는데 이것을 民衆을 代表해서 敢히 反駁을 試한 것도 ≪開闢≫誌이었든 까닭에 젊은 사람들의 唯一한 伴侶가 되였든 것도 까닭 없는 일이 아니었다.
또한 文藝 方面에서도 長久한 歷史를 가진 雜誌인 만큼 그 功積이 컸으며 지금 一家를 成한 大家들의 搖籃이였든 것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成長하였다, 구 해도 過言은 아니겠다. 雜誌 ≪靑春≫을 이여서 朝鮮 文學 運動에 功獻을 等閑이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雜誌 編輯者가 본 朝鮮 文壇 側面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