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를 동독의 상황에 맞게 각색했다. 막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세 자매는 죽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과거 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모스크바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직업도 나이도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제각각이지만 하나같이 자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무기력에 빠져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집마저 불타 버린다. 체호프가 ‘그럼에도 살아가야 한다’라는 대사를 통해 희망적인 미래에 방점을 둔 반면 브라운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어떠한 변화도 없다’는 메시지를 강조했다.
동독을 대표하는 극작가인 폴커 브라운에 따르는 평가는 크게 둘로 나뉜다. 동독의 체제를 인정한, 하지만 순응하지는 않은 작가. 브라운은 동료 작가들처럼 더 나은 동독에서의 더 나은 사회주의를 갈망했고 이를 위해 저술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동독의 체제를 인정한 사회주의 작가다. 통일 전 창작 활동 중에 당으로부터 끊임없이 방해를 받았던 그는 다른 작가들처럼 서독으로 떠날 수도 있었지만 동독에 머물렀다. 조국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동독 사회의 모순과 당의 불합리성에 눈을 감지도 않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타협하지도 않았다. 극작에서 그는 브레히트, 뮐러와 맥을 같이하는데, 이 작품은 특히 고전의 패러디를 통해 현대의 주제를 강화했던 브레히트의 작업을 연상시킨다.
200자평
체호프의 <세 자매>에서 차용한 인물들은 원작에서와 마찬가지로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 채 모스크바에서의 행복했던 삶을 그리워한다. 폴커 브라운은 이 인물들에게서 불황 가운데 무기력에 빠진 동독 시민들의 모습을 보았다. 폴커 브라운의 초기작을 초역으로 만나 본다.
지은이
폴커 브라운(Volker Braun)은 1939년 5월에 작센주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1957년 대학 입학 자격 시험을 치른 뒤에 당으로부터 대학 입학 허가를 얻지 못해 1960년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기까지 인쇄업과 복합기업체의 지하 공사장에서 일하기도 하고 광산 기술자로도 일했다. 브라운은 문학 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사회에 관심을 가졌다. 주로 역사 진행 과정에서 ‘개인과 사회’, ‘주인공의 일상에 나타난 사회적 모순’을 주제로 작품을 썼으며, 주인공의 좌절을 통해 주제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그가 쓴 시대극은 모두 사회에 현존하는, 사회 구성원인 개인의 성장을 저해하는 실질적인 사회적 문제들을 보여 주며, 다양한 등장인물 구성을 통해 여러 가지 모순상을 나타낸다. 이때 작가는 드러난 모순들의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복잡한 토론의 토대를 가진 본보기들을 ‘열린 결말’ 형식으로 제시해 준다. 관객이 스스로 무대에서 본 모순점들의 발생 원인에 관해 생각해 보고 그 극복과 개선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브레히트와 마찬가지로 브라운 또한 서독에서도 많은 관심과 인정을 받았다. 통일도 되기 전에 서독에서 브레멘문학상(1986)을 수상했다. 통일 이후 1992년에는 서독 바덴뷔르템베르크(Baden-Würtemberg) 주에서 ‘실러−기념상’과 독일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게오르크 뷔히너(Georg Büchner) 상’(2000)을 수상했다. 더구나 영국 웨일즈대학에 초빙되어 1년간 연구 활동을 했고(1994), 서독 하이델베르크대학(1996)과 카셀대학(1999∼2000)에서 강의하기도 했다.
옮긴이
김충완은 독일 라이프치히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연방도서관 전속 번역가, 라이프치히대 언어 연구소 강사, 자우르 출판사 편집위원, Azzo 외국어서비스센터 번역가 등을 지냈다. 저서로는 ≪Auf der Suche nach dem offenen Ausgang-Untersuchungen zur Dramaturgie und Dramatik Volker Brauns≫, ≪편지로 읽는 독일, 독일인≫, ≪기초 독일어 문법≫, ≪영화 인문학 산책≫(공저)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동독 작가 폴커 브라운의 드라마 기법에 관하여−그의 작품 ‘Die Kipper’를 중심으로>, <폴커 브라운과 그의 극작품에 대한 비평적 담론 분석>, <동독의 초기와 중기 역사 발전 단계에 나타난 교회 정책>, <‘막노동꾼들(Die Kipper)’과 ‘위대한 평화(Großer Frieden)’를 중심으로 살펴본 폴커 브라운의 인물 형상화 원칙과 기능>, <Die Dramaturgie Volker Brauns-der offene Schluss> 등이 있다. 경성대학교와 단국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현재 경상대학교, 창원대학교와 해군사관학교에 출강 중이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변화 앞의 사회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빌헬름 : 다시 한번 시작하고 싶어. 내 인생을 시작하고파. 경계를 넘어서 말야. 그녀와 함께 사는 거. 그건 꿈일 뿐이야. 그렇지 않아? 보다 나은 세상은 인간이 투쟁하는 곳에 있지. 하지만 난 이 꿈을 그녀에게 말해 주었어.
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