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살람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한 고대 문명, 카르타고에 관한 소설이다. 작품은 카르타고와 로마의 1차 포에니 전쟁 직후 카르타고를 위해 싸웠던 용병들이 일으킨 반란과 그 진압 과정을 배경으로 한다. 그리스, 로마 같은 고대 국가와 달리 국가의 방어를 용병 제도에 의존했던 카르타고는 전쟁에 패함으로써 로마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불하게 되어 국고가 바닥이 났고, 그로 인해 급료 지불이 어려워지자 용병들이 반발했던 것이다. 제목인 ‘살람보’는 카르타고 최고 집정관 하밀카르 버르카스의 딸 이름이다.
소설은 살람보가 탐닉했던 기이하고 신비스러운 종교, 그녀와 용병대장 마토의 사랑, 마토의 순정,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고대의 잔혹한 희생제의 등이 거칠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와 전장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작가는 찬란하게 피었다가 소멸해 간 한 문명, 지나간 한 시대를 때로는 비장하게, 때로는 낭만적 열정으로 복원함으로써 서사에 서정적 색채를 더했다.
플로베르는 1857년 ≪살람보≫ 집필을 시작해 1862년에 발표했다. 그는 스물일곱 살이던 1849년 동방으로 여행을 떠나 1년 6개월간 이집트와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지와 그리스, 이탈리아를 여행했는데, ≪살람보≫는 작가가 동방 여행 후 처음으로 쓴 동양에 관한 소설로 독서의 기억과 여행의 추억이 함께 서려 있는 작품이다. 플로베르는 이 소설을 위해 고대 역사를 공부하고 방대한 자료를 참고했으며 옛 카르타고의 흔적을 찾아 튀니지를 여행했다. 과거 역사에 대한 정밀한 자료와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되 사료의 행간을 상상력으로 메워 나갔다.
200자평
≪마담 보바리≫의 작가 플로베르가 1862년 발표한 역사소설이다. 1차 포에니 전쟁 직후 카르타고를 위해 싸웠던 용병들이 일으킨 반란과 그 진압 과정을 그린다. 카르타고 최고 권력자의 딸 살람보와 용병대장 마토의 사랑, 마토의 순정,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고대의 잔혹한 희생제의 등이 거칠고 피비린내 나는 전투와 전장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작가가 방대한 자료를 참고하고 카르타고의 흔적을 찾아 튀니지를 여행한 만큼 사실을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서사와 거장의 상상력이 펼치는 세세한 묘사가 압권이다.
지은이
귀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1821년 노르망디의 루앙에서 태어났다. 37세에 처음으로 출판한 ≪마담 보바리≫로 하루아침에 유명해졌지만 그 전에 오랜 습작기를 거쳤다. 주요 작품으로 ≪마담 보바리≫(1857) 외에 고대 카르타고를 배경으로 한 ≪살람보≫(1862), 1848년 2월 혁명 전후로 한 세대의 희망과 환멸을 그린 ≪감정 교육≫(1869), 3세기 알렉산드리아 사막에 은거했던 기독교 성자의 삶을 그린 ≪성 앙투안의 유혹≫(1874)은 30년 가까이 그를 매혹시켰던 것으로 세 판본이 있고, ≪세 단편≫(1877), 그리고 ‘인간의 어리석음에 관한 백과사전’을 의도했으나 끝내지 못한 마지막 소설 ≪부바르와 페퀴셰≫가 있다. 말년에 상당한 경제적 어려움을 겪다가 5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김계선은 숙명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프랑스 파리4대학에서 플로베르를 연구해 <플로베르와 공간>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살람보의 현대성>을 비롯해 플로베르의 작품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저서로 ≪프랑스 문화≫(공저)가 있고, 역서로 ≪부바르와 페퀴셰≫, ≪살람보≫, ≪성 앙투안의 유혹≫이 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차례
1장 연회
2장 시카에서
3장 살람보
4장 카르타고의 성벽 아래에서
5장 타니트
6장 한노
7장 하밀카르 버르카스
8장 마카르 전투
9장 전장에서
10장 뱀
11장 텐트 안에서
12장 수도교
13장 몰록
14장 도끼 협곡
15장 마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혐오스럽고 자존심 상했지만 최고 집정관은 아이를 그 속에 넣고 노예 상인처럼 때 수건과 붉은 흙으로 문질러 가며 씻기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벽장에서 자줏빛 스카프 두 장을 꺼내 하나는 아이의 가슴에, 하나는 등에 두른 다음, 쇄골에서 두 개의 다이아몬드 버클로 이었다. 아이 머리에 향수를 들이붓고 목에 호박금 목걸이를 걸고 뒤축에 진주가 달린 샌들, 딸의 샌들을 신겼다! 그러면서도 그는 치욕스럽고 화가 나 발을 굴렀다. 열심히 돕고 있는 살람보도 핏기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는 이렇게 휘황찬란한 데 눈이 부신지 웃음을 지었고, 대담해지기까지 해 손뼉을 치고 펄쩍 뛰어오르기도 했는데 그때 하밀카르가 데리고 나갔다.
놓칠까 봐 걱정인지 그가 아이의 팔을 꽉 잡은 탓에 아이는 고통스러워 그의 곁에서 뛰어가면서도 조금 울먹거렸다.
지하 감옥 위, 종려나무 아래에서 처량하고도 애원하는 어떤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주인님! 아! 주인님!”
하밀카르가 뒤 돌아보니 옆에 추레한 남자, 그의 집에서 닥치는 대로 일하며 먹고사는 한 가난뱅이가 보였다.
“왜 그러나?” 최고 집정관이 말했다.
노예가 무섭도록 몸을 떨며 더듬거렸다.
“제가 아이 아빕니다!”
하밀카르는 여전히 걸어가고, 남자는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히고 머리를 앞으로 내민 채 그를 따라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으로 인해 얼굴이 일그러져 있는 남자는 울음을 참느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그는 주인에게 물어보고 싶고 소리치고 싶었다. “제발!”
결국 남자가 감히 손가락 하나를 그의 팔꿈치에 살짝 갖다 댔다.
“주인님 아이를…?” 말을 마칠 기운도 없는 남자의 이런 고통을 보고 하밀카르는 어안이 벙벙해져 멈추었다.
자신과 이 남자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 수 있다고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을 만큼 그들 두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골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에게 일종의 모욕처럼, 자신의 특권에 대한 침해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그가 더욱 차갑고 사형 집행인의 도끼보다 더욱 부담스러운 눈길로 대답을 하니 노예는 정신을 잃으며 그의 발밑, 먼지 속에 쓰러지고 말았다. 하밀카르가 그 위로 지나갔다.
−391∼393쪽
그들은 이제 흉하도록 여위어 피부에 푸르스름한 버짐이 생겨나 있었다. 9일째 되는 날 저녁, 이베리아인 세 명이 죽었다.
질겁한 동료들이 그 자리를 떠났다. 누군가 죽은 이들의 옷을 벗겨 놓아 이 벌거벗은 허연 시체들이 햇빛 아래, 모래밭에 방치되어 있었다.
그러자 가라만티아인들이 슬금슬금 그 근처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고립된 삶에 익숙한 이들은 어떤 신도 숭배하지 않았다. 마침내 무리 중에서 가장 연장자가 신호를 하자 시체로 몸을 숙이더니 칼을 들고 가죽끈을 잡아챘다. 이내 웅크리고 앉아 먹기 시작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공포의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영혼 깊은 곳에서 그들의 용기를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한밤중에 그들 중 몇몇이 다가가 욕심을 숨기고 단지 맛만 보겠다며 한 입 요구하기도 했다. 좀 더 대담한 사람들이 합세하면서 수가 늘어나 곧 무리를 이루었다. 그래도 거의 전부는 이 차가운 살덩어리가 입가에 닿자마자 손을 도로 내렸지만 반대로 맛있게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걸 본보기로 삼아 그들은 서로 격려하게 되었다. 처음에 거절했던 사람도 가라만티아인들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그들은 칼끝으로 숯불에서 조각을 익혔다. 가루를 뿌리고 가장 좋은 걸 차지하겠다고 서로 다투기도 했다. 세 구의 시체에서 더 이상 남은 게 없게 되자 다른 시체를 찾기 위해 평원 전체로 눈길을 돌렸다.
−421∼4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