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미국 현대 연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진 오닐의 작품. 3부작으로 구성된 대작이다. 시간 제약 때문에 활발히 공연되지는 못했지만 오닐이 밝히고자 했던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불가해한 힘”에 대한 집념이 가장 강렬하게 드러난다. 작가가 가장 오랫동안 구상했고 개작에 개작을 거듭하며 공을 들인 작품이다.
아이스킬로스의 3부작 비극 <<오레스테이아>>를 남북전쟁 직후의 미국적 상황을 배경으로 각색했다. 아버지의 죽음에 복수하기 위해 어머니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남매 이야기라는 원작 스토리를 따르면서도 오닐은 이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했다.
매넌은 전쟁에서 돌아온 뒤 크리스틴과 그녀의 정부에게 독살당한다. 이를 눈치챈 큰딸 비니가 남동생 오린을 부추겨 크리스틴의 정부 브랜트를 죽임으로써 복수를 결행한다. 브랜트의 죽음을 비관한 크리스틴과 이어 죄책감에 시달리던 오린까지 자살하자 비니는 과거로부터 도망쳐 새로운 삶을 얻으려던 생에의 갈망을 꺾어 버린다. 그녀는 죽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오래된 저택에서 고통 속에 살며 속죄하고자 한다. 죽음 가운데서 살아내겠다는 비니의 이런 결정이 극에 비극성을 더한다.
오닐은 자신의 야망대로 그리스 비극의 현대판을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뉴잉글랜드 지방의 청교도주의를 주제로 집필했다. 이 작품은 두고두고 사랑받는 현대 비극의 고전이라 할 수 있다.
200자평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불가해한 힘”을 밝혀내려는 유진 오닐의 집념이 가장 강렬하게 발휘된 작품 중 하나다. 아이스킬로스의 ≪오레스테이아≫를 전후 미국을 배경으로 한 가족 서사로 각색했다. 저주가 내린 듯 음산한 분위기의 저택에서 매넌가 사람들은 끊임없는 불행에 시달린다. 근친상간과 친족 살해라는 죄에 내려진 형벌이다.
지은이
“미국 현대 연극의 아버지”라 불리는 유진 오닐은 1888년에 연극 배우이자 아일랜드계 이민자였던 제임스 오닐(James O’Neill)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공연을 따라 계속 이곳저곳 옮겨 다닌 그는 호텔에서 태어나 호텔에서 생을 마감했다.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했지만 도중에 중퇴하고 어린 나이에 캐슬린 젠킨스와 결혼해 아들까지 낳았다. 그는 도피의 일환으로 배를 탔고 서인도제도와 남미를 여행하며 해양 생활을 경험했다. 오랜 바다 생활에 몸이 쇠약해져 폐결핵에 걸린 그는 요양원에 입원하게 되고 거기서 니체와 스트린드베리 등 유럽 작가들을 만난다. 오닐은 유럽에서 그동안 이루어져 왔던 다양한 예술적 실험들을 받아들여 미국 무대에 올리려 했다. 오닐은 두 번째 아내와 이혼한 뒤 칼로타 몬터레이와 재혼했고 몬터레이는 오닐 사후인 1956년에 오닐이 사후 25년간 발표하지 말라고 했던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를 출판 공연하도록 허락함으로써 그에게 네 번째 퓰리처상을 안겨 주었다.
그가 미국 연극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은 한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유럽에서 개발된 사조나 극작 기법을 과감하게 도입해 끊임없이 실험함으로써 후대 극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기법과 실험 가운데서도 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인생을 불행하게 만드는 불가해한 세력을 밝혀내려는” 시도였다. 그는 신에 대한 신앙과 전통적 가치 체계에 대한 신념이 붕괴된 사회에서 무엇이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가에 관심을 가졌으며 이를 희극보다는 비극을 통해 더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닐은 후기로 가면서 자전적인 경험에 바탕을 둔 <얼음장수 오다(The Iceman Cometh)>, <밤으로의 긴 여로> 같은 사실주의 작품으로 회귀했고 원숙한 경지를 보여 주며 노벨상과 4회에 걸쳐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미국 현대 연극의 기초를 놓은 유진 오닐은 후배 극작가들의 영원한 영감과 영향력의 원천이 되면서 미국 연극의 아버지로 남아 있다.
옮긴이
이형식은 경북대학교 문리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건국대학교 문과대학 영문과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문학과영상학회 회장과 현대영미드라마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는 ≪현대미국희곡론≫, ≪영화의 이해≫, ≪문학 텍스트에서 영화 텍스트로≫(공저), ≪미국 연극의 대안적 이해≫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미국 영화 / 미국 문화≫, ≪영화의 이론≫, ≪영화에 대해 생각하기≫, ≪숭배에서 강간까지: 영화에 나타난 여성상≫, ≪하드 바디≫ 등 다수가 있다.
차례
삼부작의 전반적인 무대 배경
귀향
쫓기는 자들
귀신 들린 자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라비니아: (엄숙하게) 겁내지 마. 엄마와 오린이 갔던 길로는 가지 않을 테니까. 그건 처벌을 피하는 거야. 그리고 이제는 나를 처벌할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 내가 마지막 매넌가 사람이니까. 나는 나 자신이 처벌해야지! 여기서 죽은 자들과 사는 것만이 죽음이나 감옥보다 더 힘든 정의를 실현하는 행동이야! 나가지도 않고 아무도 안 만날 거야! 햇빛이 들어오지 않게 셔터도 못질해서 닫을 거야. 혼자 죽은 자들과 함께 살고, 그들의 비밀을 지켜 주고, 나를 쫓아다니도록 만들어 마침내 모든 저주의 대가를 치르고 마지막 매넌이 죽을 수 있도록! (지난 자기 고문의 세월을 생각하고 잔인한 웃음을 웃으며) 저들은 분명히 내가 오래 살도록 만들걸! 태어난 죄로 자신을 처벌하려면 매넌가의 사람이 필요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