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초판본 한국시문학선집’은 점점 사라져 가는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을 엮은이로 추천했다. 엮은이는 직접 작품을 선정하고 원전을 찾아냈으며 해설과 주석을 덧붙였다.
각 작품들은 초판본을 수정 없이 그대로 타이핑해서 실었다. 초판본을 구하지 못한 작품은 원전에 가장 근접한 것을 사용했다. 저본에 실린 표기를 그대로 살렸고, 오기가 분명한 경우만 바로잡았다. 단, 띄어쓰기는 읽기 편하게 현대의 표기법에 맞춰 고쳤다.
설정식이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하며 펴낸 제1시집 ≪鐘≫에는 근심 어린 시선으로 해방 정국을 바라보는 설정식의 현실 인식이 나타난다. 해방은 되었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이념적 대립과 반목을 일삼는 해방 정국은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설정식은 해방 정국의 혼돈을 ‘太陽이 없는 땅’에 비유한다. 그는 “아 解放이 되었다 하는데/ 하늘은 웨 저다지 흐릴까”(<原鄕>) 탄식하고, 해방된 땅이 “곡식이 익어도 익어도 쓸데없는 땅”, “땀을 흘여도 흘여도 쓸데없는 땅”(<太陽 없는 땅>)과 다를 바 없다고 토로한다. 해방이 되어도 민족의 앞날은 암담하기만 하다. 그 이유는 국권 회복의 희망과 가능성이 미소 강대국의 이권 다툼이 벌어지는 한낱 ‘정치적 노름판’에서 증발해 버릴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무서운 戱弄이로다/ 누가 와서 버려 놓은 노름판이냐”(<短調>). 이처럼 설정식은 해방의 기쁨에 도취되지 않고 이념적 반복과 분열의 정세를 직시했다.
제2시집 ≪葡萄≫에는 ≪鐘≫에서 드러났던 비판적 현실 인식이 보다 구체적인 투쟁의 양상으로 강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를테면 일제의 수탈로 유랑민이 된 전재민(戰災民)의 문제(<淫雨>), 미 군정의 실정에 대한 비판(<帝國의 帝國을 圖謀하는 者>), 여성의 경제적 자립(<順伊의 노래>)과 같은 민감한 현실적 사안들이 구체적으로 등장하는 시편들이 다수 실려 있다. 이러한 현실주의적 경향은 제3시집 ≪諸神의 憤怒≫에서도 이어진다. 이 시집에서 주된 비판의 대상은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과 그 잔재들이다. <弔辭>에서는 일본 제국주의가 대동아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 민족을 희생양으로 삼은 점을 고발하고 있고, <鎭魂曲>에서는 서사시적인 양식으로 동경 대지진 학살 사건을 다루며, <新聞이 커젔다>에서는 일제의 수탈이 할퀴고 간 상흔들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한편 그 잔재로 인한 해방 정국의 혼란상을 그려 내고 있다.
설정식의 시들을 읽어 보면, 한자어를 남발하고 동서고금의 문학을 두루 활용하는 등 현학적인 지식을 과시하는 면모를 보이며 게다가 알아듣기 힘든 방언들과 비문법적 표현들이 남발되는 난해한 대목들이 산재한다는 점에서 대중성에 부합하기 어려운 엘리트 지식인의 성향이 과도하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점들은 이념의 격랑을 헤쳐 나가며 이상과 현실(태양과 해바라기)의 동일성을 꿈꾼 지식인이자 예술가인 설정식의 고민과 갈등이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방증하는 내면의 상흔과 다름없을 것이다.
200자평
설정식은 ‘해방기의 시인’으로 불린다. 이념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해방 정국의 전면에 등장해 좌우의 노선에 번갈아 몸을 담고 전쟁과 분단체제 속에서 희생된 그의 삶은 해방공간의 비극적 운명을 그대로 체현한다. 그의 시를 대면하면 변신을 거듭한 정치적 행보가 일신의 안위나 이념의 동요 때문이 아니라 이념적 반목과 대립의 혼전 속에서 민족을 구원할 길을 찾으려는 고민의 산물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
설정식(薛貞植, 1912~1953)은 1912년 9월 19일 함경남도 단천에서 4남 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문단에 등장한 것은 1932년 ≪중앙일보≫ 현상모집에 희곡 <중국은 어디로>가 1등에 당선하면서부터다. 같은 해 3월 ≪동광≫ 지가 주최한 학생문예공모에서 시 <거리에서 들려주는 노래>가 3등으로, 4월에 <새 그릇에 담은 노래>가 1등으로 입선한다. 이후 ≪동광≫, ≪신동아≫, ≪조선일보≫ 등에 시와 단편소설 들을 발표하며 문단 활동을 시작한다.
미국 문학에 심취한 그는 일제 말기에 미국 문학과 토머스 울프에 관한 에세이를 발표하기도 하고,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을 번역하기도 한다. 더불어 1949년 ≪햄릿≫을 번역한 ≪하므렡≫을 출간하는데 이는 ≪햄릿≫의 최초 번역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방 이후 적극적인 정치 행보와 문단 활동에 나선다. 미 군정청에서 공보처 여론국장에 취임하는 한편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한다. 1947년 여론국장에서 입법의원 부비서장으로 전출되지만 8월에 사임한다. 미 군정청의 관리로 지내면서 미국에 의한 신탁통치가 민족의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낙담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실천적 문학가로서 활발한 작품 활동을 벌인다. 1946년 장편소설 ≪청춘≫과 단편소설 <프란씨쓰 두셋>을 신문에 연재하고, 1948년에 단편소설 <척사 제조자>, <한 화가의 최후>를 발표하고 장편소설 ≪해방≫을 연재하기도 한다. 1947년에 첫 시집 ≪鐘≫을 발표하고, 다음 해에는 ≪葡萄≫와 ≪諸神의 憤怒≫를 연이어 출간한다.
1948년에 ≪서울타임스≫의 주필 겸 편집국장이 되지만 곧 사임한다. 1949년에 ≪諸神의 憤怒≫가 판금 처분되고 체포령이 내려지자 보도연맹에 가입하고 그 기관지인 ≪애국자≫에 반공시를 발표하기도 한다. 1950년 인민군에 의해 서울이 함락되자 인민군에 자원입대해 월북한다. 그러나 그해 12월 심장 발작을 일으켜 북한에 있는 헝가리 지원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이때 병원의 정경을 묘사한 장시를 탈고했다고 하는데, 이 원고는 헝가리의 종군기자인 티보 머레이에게 전해져 ≪우정의 서사시≫라는 제목으로 부다페스트에서 출판된다.
1951년 7월 휴전회담 때 인민군 대표단의 통역관으로 모습을 드러내지만, 이후에는 더 이상 공식 석상에서 그를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는 1953년 3월부터 불기 시작한 남로당계의 숙청 바람에 휘말린다. 그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정권 전복 음모와 반국가적 간첩 테러 및 선정선동 행위”를 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어 결국 사형과 전 재산 몰수가 언도된다. 함께 선고를 언도받은 인물은 임화, 이승엽, 조일명 등이었는데, 설정식은 임화와 함께 1953년에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
엮은이
차선일은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태원 문학의 미적 자율성에 관한 연구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학하며 근대 탐정소설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순수문학과 대중문학, 고급문학과 저급문학의 경계를 가로지르고 싶은 욕심 때문에 능력 밖의 연구에 몰두하며 애를 먹고 있다. 이후로 문학의 범위를 벗어나 철학과 사회학 등 인문학 담론을 공부하면서 문학 연구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재는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에서 민속학과 근대문학의 연결점을 찾는 골치 아픈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차례
太陽 없는 땅
寓話
權力은 아모에게도 아니
피수레
鐘
短調
指導者들이여
해바라기 쓴술을 비저 놓고
雜草
삼내 새로운 밧줄이 느리우다 만 날
斷章
卿아
死
靈魂
原鄕
또 하나 다른 太陽
달
해바라기 (一)
해바라기 (二)
해바라기 (三)
해바라기 少年
바다 (一)
바다 (二)
詩
그런 뜻이오 사랑이란둥
墓地
샘물
가을
獻詞
太陽도 天心에 머믈러
順伊의 노래
失笑도 許諾지 않는 絶對의 城
기르기를 즐긴다는 五月 太陽과
내 이제 무엇을 근심하리오
帝國의 帝國을 圖謀하는 者
淫雨
霖雨
해바라기 花心
Y에게
葡萄
無心
頌歌
‘스캣취’
象罔
又日新
作別
童孩愛難
舞
眞理
諸神의 憤怒
붉은 아가웨 열매를
서울
弔辭
鎭魂曲
新聞이 커젔다
해설
지은이에 대해
엮은이에 대해
책속으로
●
해바라기 꽃이 피면
우리들은 항상
해바라기 아희들이 되었다
해바라기 아희들은
어머니 없어도
해바라기 아희들은 손이 붉어서
슬픈 것을 모른다
붉은 주먹을 빨기도 하면서
다리도 성큼 들면서
아희들은
누런 해바라기와 같이 도라간다
太陽은 해바라기를 처다보고
해바라기는 우리들을 처다보고
우리들은 또 붉은 太陽을 처다보고
해가 저서
다른 아희들이 다 집에 도라가도
너하고 나하고는
해바라기 가까이 잠이 들자
-<해바라기 少年>, 65~66쪽.
●
담 뒤에 똑다거려서 짓던
戰災民의 지붕은 널장이든데
이 비를 무엇으로 막는가
열세 대가리 머리털로 막는가
오늘 저녁 굴뚝에
煙氣 오르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데
비 물에 불이 꺼졌는가
어린 것이 떼쓰는 소리만이라도
咸鏡道 사투리가 아니면
아 원수의 故鄕
견디기 나으렸마는
西間島서 왔는지 北間島서 왔는지
보소 아모리 배고파도
睡魔는 그래도 종내 오고 말 것이오
桑麻四野 꿈이나 꾸면서
좀 더 기다려 봅시다
꿈이 곧 來日
和光同塵이 아닐는지 누가 아오
이 비물에 ‘테로’는 또
칼을 갈는지 모르나
제 아모리 하여도
世上은 도루 잡힐 것이오
-<淫雨>, 104~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