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고통과 상처를 직시하면서 화해하는 데 의의가 있다. 인간을 단죄하는 데 참뜻이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죄를 성찰하는 심원한 글쓰기의 결과다. 동화 역시 그러하다. 안미란의 동화는 초현실의 환각 상태에서 현실을 외면하기보다 원초적인 의미의 고통, 마음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상처를 바라보고 화해를 돕는다.
<돌계단 위의 꽃잎>의 부산을 방문한 일본인 여행객 다카자네와 그를 안내하는 김상석은 둘 다 역사의 상흔을 가졌다. 5년이라는 시간을 두고 벌어졌던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 두 사람의 어린 시절에 깊은 상처를 남긴 것은 전쟁의 참혹함이었던 셈이다. 이들이 여행객과 안내자로 만나 서로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위로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면서 공감해 나아간다는 점에서 우리는 화해의 진정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사격장의 독구>는 사격 연습장 주인을 둔 개의 이야기다. 여러 면에서 역발상을 꾀한 작품으로 인정해야 마땅하다. 동화의 화자는 사람이 아니라 개다. 이런 점에서 의인화의 기법을 극대화한 것으로 생각게 한다. 게다가 죽은 개를 화자로 설정했다는 점에서, 판타지물처럼 몽롱한 환각의 상태로 이끄는 묘한 힘이 나온다. 인간은 누구 할 것 없이 예기치 않게 폭력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누구 할 것 없이 상처를 받기 쉽다는 것, 또 살아가면서 상처를 피해 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라는 사실을 일깨우고 있다.
<살쾡이에게 알밤을>은 또 다른 우화 작품이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남의 불운이나 불행을 만족하거나 즐거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이 동화에서 공감 능력을 가진 인물은 ‘어미 살쾡이의 눈에 반짝이는 물방울이 달린 것’을 볼 수 있는 냉이뿐이다.
200자평
안미란의 동화는 초현실의 환각 상태에서 현실을 외면하기보다 원초적인 의미의 고통, 마음의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상처를 바라보고 화해를 돕는다. 남이 아프면 나도 아파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를 보여 주어 폭력이 내면화된 사회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준다. 이 책에는 <달에서 온 편지> 외 9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안미란은 1969년 경북 금릉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했다. 1996년 농민신문사 주최 농민문학상에 중편동화 <바다로 간 게>가 당선됨으로써 동화 작가로 등단했다. 1998년 눈높이아동문학상 동시 부문에 <웅덩이>가 당선했다. 2001년 창비 좋은어린이책 창작 부문에 장편동화 ≪씨앗을 지키는 사람들≫이 대상을 받은 일이 동화 작가로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다. 부산대학교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통해 아동 문학을 연구했다. ≪너만의 냄새≫, ≪내가 지켜줄게≫, ≪부산 소학생 영희, 경성행 기차를 타다≫ 외 다수의 책을 펴냈다.
해설자
송희복은 1957년 부산에서 출생했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과 및 같은 대학원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1990년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되었고, 1992년에 <해방기 문학비평사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문학비평집으로 ≪다채성의 시학≫ 외에 다수 간행한 바 있다. 2013년 현재 진주교육대학교 국어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국제언어문학회 회장직을 맡고 있다.
차례
작가의 말
달에서 온 편지
실로암 나무
바다로 간 게
사격장의 독구
추억을 팝니다
살쾡이에게 알밤을
염소와 양
돌계단 위의 꽃잎
시추야 힘내
길 건너 저편까지
해설
안미란은
송희복은
책속으로
1.
형우와의 추억을 남에게 판다니, 그건 온 동네 사람이 나의 일기장을 들춰 보며 웃는 상상보다 더 끔찍한 일이다.
주인은 계속 부추긴다.
“어때요? 수고비는 넉넉히 드립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문을 밀치고 거리로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나의 추억은 파는 게 아니에요.”
-<추억을 팝니다> 중에서
2.
양이 말했습니다.
“염소 부인, 착한 양표가 아이들 몸에 안 좋은 것도 몰라요? 현명한 엄마 양은 그 풀을 안 먹이는데….”
“네?”
“모르셨어요?”
그러면서 양은 자기네 마을 땅이 얼마나 오염되었는지, 그래서 환경보호가 얼마나 중요한지 떠들어 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랬어요.
“그러니까 당신네 염소들도 더 늦기 전에 자연을 보호하고 가꿔야 한다고요. 너른 돌 마당을 없앤 건 정말 어리석은 짓이고말고요.”
이제 염소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너른 돌 마당을 없애고 풀밭을 만들게 한 게 누군데요?
거기서 나온 풀이 누구 입으로 들어가죠?”
양은 아무 말도 못했어요.
-<염소와 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