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초판본 한국 근현대소설 100선’ 가운데 하나. 본 시리즈는 점점 사라져 가는 명작 원본을 재출간하겠다는 기획 의도에 따라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작가 100명을 엄선하고 각각의 작가에 대해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들이 엮은이로 나섰다.
잊힌 작가 엄흥섭. 그는 월북 작가라는 이데올로기적 금기 때문에 잊혔으며, 민족문학의 성취가 미약했기 때문에 잊혔으며, 중앙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주변적 위치를 고수한 반주류 작가이기 때문에 잊혔다. 이 책에서는 그를 처음 만나는 독자를 위해 그의 대표작 <흘러간 마을>, <숭어>, <과세(過歲)>, <정열기(情熱記)>, <귀환일기>를 엮었다
<흘러간 마을>은 카프 계열 비평가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엄흥섭이라는 소설가를 알린 실질적인 등단작이다. 진주 지방의 어느 농촌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소설화한 이 작품은 최병식이라는 지주와 고 서방을 중심으로 한 소작인 사이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최병식은 별장 옆에 호수를 만드는데, 어느 날 큰비가 내리자 호수의 제방이 터지면서 호수 아래 마을이 홍수에 휩쓸려 버리는 참사가 발생한다. 그런데 마을이 호수 때문에 홍수 피해를 당했음에도 최병식은 아랑곳하지 않고 추석날 별장 낙성식을 성대하게 벌인다. 이에 격분한 고 서방은 마을 농민들을 이끌고 최병식의 행태에 항의하는 집단행동을 일으킨다.
<숭어>는 주인공 춘보가 시내에서 잡은 숭어를 팔지 못하고 집으로 가져왔다가 부패하기 시작한 숭어를 먹은 딸이 탈이 나면서 별다른 수를 써 보지 못한 채 딸의 죽음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과세>는 설날 명절이라는 일상적이고 평범한 제재를 선택해 일제 식민지에서 살아가는 농민의 궁핍상과 애환을 다룬 작품이다. 자작농에서 소작농으로, 소작농에서 다시 나무장수로 점차 그 신분이 하락한 김 첨지 부부는 설날을 맞아 부잣집의 하녀로 보낸 딸과 해후하지만 딸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비참한 현실을 애달파하며 다시는 딸을 하녀로 보내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정열기>는 처음에는 중편소설로 4회 분재되었지만, 나중에 장편소설로 확대되면서 단행본으로 묶여 나온 작품이다. 주인공 김영세는 과거에 사회주의 운동을 하다 사상이 불온하다는 이유로 권고사직을 당하고 무산자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의 교사로 오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의 교육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월사금을 받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는 박 원장, 마찬가지로 교육보다는 개인의 입신과 안일에만 관심을 두는 강 교원 등이 운영하고 있는 학원은 다른 공립학교들보다 더욱 타락하고 부패한 실정이었고, 이미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이 마비된 상태였다. 영세는 학원의 낙후성과 부패상을 보고 겪으며 괴로워하지만, 영세를 마을 사람들과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낙천적인 인물 문 서방과 그의 주선으로 만나게 되는 채 선생 등 긍정적인 인물들의 도움으로 학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이를 보여주는 주요 사건이 바로 운동회 개최다. 영세는 문 서방과 채 선생의 도움을 받으며 운동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게 되고 채 선생과는 연인 사이로 발전하게 된다.
<귀환일기>는 해방 직후 발표된 엄흥섭의 대표작이다. 여자 정신대에 끌려갔다 술집 작부로 전락한 주인공 순이와 영희는 해방과 함께 탄광 징용자와 귀환 병정 등 귀환 전재민들과 함께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오른다. 귀환민들은 젊은 청년의 지휘 아래 노숙과 도보로 500리를 걸어가는 고된 행군 끝에 항구에 도착하지만 귀환선을 구하지 못한다. 이때 청년을 비롯한 귀환민들은 여자와 노인들을 먼저 배에 태워 보내기로 결정한다. 순이와 영희는 따뜻한 동포애를 느끼며 배에 올라 무사히 부산으로 향하게 된다.
200자평
카프 맹원으로 카프 해체 뒤에도 카프 이념을 앞세우며 문학 행보를 펼친 반주류 작가 엄흥섭. 아직 엄흥섭의 작품 세계를 만나 보지 못한 독자에게 ‘엄흥섭’이라는 잊힌 작가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그의 대표작 <흘러간 마을>, <숭어>, <과세(過歲)>, <정열기(情熱記)>, <귀환일기>를 엮었다.
지은이
엄흥섭은 1906년 9월 9일 충남 논산군 채운면 양촌리에서 태어났다. 출생지는 충남 논산이지만, 엄흥섭에게 실질적인 고향은 경남 진주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진주를 떠나 논산으로 옮겨 온 것은 아버지의 사업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업이 실패하며 가세가 기울고 아버지의 죽음을 시작으로 어머니와 큰형이 차례로 죽은 후 엄흥섭은 작은형과 함께 다시 진주로 내려가 살게 된다. 진주로 돌아가 숙부의 슬하에서 성장하게 된 엄흥섭은 소학교를 다니면서 ≪아라비안나이트≫, ≪로빈슨 크루소≫, ≪이솝 이야기≫ 등을 탐독하며 문학적 소양을 키워나간다. 소학교를 졸업한 뒤 경남도립사범학교(진주사범학교의 전신)에 진학한 엄흥섭은 하이네, 바이런, 괴테 등의 시집을 읽으며 문학에 대한 동경을 키우는 한편 <학우문예>라는 동인지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1923년에는 <동아일보>에 시 한 편을 투고해 게재되기도 한다. 1926년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공립학교인 경남 평거보통학교에 ‘훈도’로 취직한다. 이 시기 농촌에서의 교원 생활은 훗날 농촌의 궁핍한 현실을 다룬 소설과 교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련의 지식인 소설을 창작하는 밑거름이 된다.
1923년 <동아일보>에 시가 게재된 이후 엄흥섭은 <동아일보>에 <꿈속에서>(1925. 9. 12), <성묘>(1925. 9. 24), <바다>(1925. 10. 12) 등을 연이어 발표하는 한편 1925년 <조선문단> 11호에 시 <엄마 제삿날>이 ‘당선소곡’으로, <조선문단> 12호에 <나의 시>가 ‘시 당선작’으로 게재된다. 이후 시 창작에 몰두하면서 지역의 문학청년들과 동인지를 만들며 문학 활동을 벌인다. 인천의 진우촌, 공주의 윤귀영 등과 함께 1927년 인천에서 <습작시대>를, 1928년에 공주에서 <백웅>을, 1929년에 진주에서 <신시단> 등의 동인지를 펴내며 지역 문예지의 활성화를 꾀했다.
지역 문학청년들과 교류하던 엄흥섭은 1930년 1월 단편소설 <흘러간 마을>을 <조선지광>에 발표하면서 일약 문단의 주목을 받는 소설가가 된다. 이후 교사직을 버리고 서울로 옮겨 와 잡지 <여성지우>의 편집 업무를 맡아보는 한편 송영, 박세영 등과 더불어 어린이잡지 <별나라>의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소설가의 길을 예비한다. 카프에는 1929년에 가입했는데, 1930년 4월에는 안막, 권환, 송영, 안석주와 함께 카프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된다. 카프의 맹원이 된 엄흥섭은 1931년 3월에 김병호, 양창준, 이석봉 등과 함께 ≪불별≫이라는 프롤레타리아 동요집을 펴내고 <별나라>, <신소년> 등을 통해 소년소녀들의 계급의식을 고취하는 동화 작품들을 창작하는 등 아동문학계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그러다 엄흥섭은 1931년에 발생한 이른바 ‘<군기> 사건’에 연루되어 카프에서 제명당한다. 카프 제명 이후에도 엄흥섭은 카프 이념에 동조하는 작품들을 창작하며 소위 ‘동반자 작가’로서 꾸준한 창작 활동을 펼친다. <온정주의자>(1932), <숭어>(1935), <안개 속의 춘삼이>(1934), <번견 탈출기>(1935), <과세>(1936), <정열기>(1936), <아버지 소식>(1937) 등이 모두 이 시기에 발표한 작품들이다. 1936년에 개성에서 발행하는 <고려시보>의 편집을 담당하고, 1937년에는 인천에서 발행된 <월미>에 참여하기도 한다. 1938년에 소설 <파경>이 유산계급을 매도하고 좌경 사상을 고취했다고 해 출판 금지되고, 기소되어 서대문 형무소에 구금되는 일을 겪는다.
일제 말기에 엄흥섭은 ≪인생 사막≫, ≪봉화≫, ≪행복≫ 등 통속적인 장편소설들을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이어간다. 1940년 5월 엄흥섭은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의 편집기자로 입사하고, <매일신보>에 <농촌과 문화>, <시련과 비약> 등 몇 편의 친일 성향의 작품과 평문을 발표하기도 한다.
해방 후 엄흥섭은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을 거쳐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및 소설부 부원으로 참여하는 한편 인천의 <인천신문>의 초대 편집국장, 서울의 <제일신문> 편집국장 등으로 재직하며 언론계에서 주요 인사로 활동한다. 그러나 1948년 9월 <제일신문>에 북조선 인민공화국 창건 소식을 보도해 실형을 언도받는 필화 사건을 겪는다.
이후 1951년 월북해 북한작가동맹 평양지부장과 중앙위원을 지낸다. <다시 넘는 고개>(1953), <복숭아나무>(1957) 등 단편소설을 발표하고, 장편소설 ≪동틀 무렵≫으로 주목을 받는다. 1963년 한설야가 숙청될 당시 그의 추종 세력으로 몰려 뚜렷한 활동을 못하게 된다. 이후 북한에서의 행적은 알려진 바가 없다.
엮은이
차선일은 부산외국어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경희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미적 자율성의 관점에서 박태원 문학의 모더니즘적 성격을 해명하는 석사논문을 썼고, 이후 한국 모더니즘문학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해명하기 위한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다. 현재 문학의 범위를 벗어나 철학과 사회학 등 인문학 담론을 공부하면서 문학 연구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차례
해설 ······················11
지은이에 대해 ··················22
흘러간 마을 ···················27
숭어 ······················47
과세(過歲) ····················93
정열기(情熱記) ·················125
귀환일기(歸還日記) ··············225
엮은이에 대해 ··················262
책속으로
춘보는 또다시 어느 틈에 본정신이 살어지며 하늘이 갑자기 문허지고 곁에 선 마을사람들이 우글우글 숭어 새끼로 변하야 뛰기 시작하는 속에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무엇인지 한바탕 짓거리었다. 무엇인지 한바탕 너털대고 껄껄 웃어재치었다.
-<숭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