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역사와 계급의식≫은 제2인터내셔널의 수정주의와 기회주의에 맞서 마르크스주의의 혁명적 전통을 옹호하고자 하는 의도로 쓴 책이다. 그래서 루카치는 마르크스주의의 정통성을 변증법적 방법에서 찾는 동시에 변증법적 방법의 본질을 주체와 객체의 상호작용 내지 총체성의 관점에 두고 이것을 실현하는 주체를 프롤레타리아트로 설정한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지노비예프, 데보린, 루다스, 그리고 ≪프라우다≫, ≪적기≫ 등 당시 공산주의의 지도자들은 루카치의 입장이 수정주의이고 관념론이라고 호되게 공격했다. 이들은 주로 루카치가 자연변증법과 반영론을 부정했다는 점에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다른 한편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루카치의 계급의식론이 레닌식의 전위당 독재를 합리화한다고 비난했다. 반면 블로흐, 레버이, 코르슈(Korsch) 등은 마르크스 변증법의 르네상스라 하며 환영했다.
≪역사와 계급의식≫이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기여한 점으로는, 우선 마르크스주의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헤겔 변증법을 복권시키고 헤겔과 마르크스의 연관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켰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루카치의 의도대로 수정주의 전통에 강력한 타격을 가하게 된다. 나아가서 이 책은 소외와 사물화의 문제를 마르크스 이래 처음으로 자본주의 비판의 핵심 문제로 취급했으며, 이후 좌파 사상가든 우파 사상가든 인간 소외의 문제를 시대의 핵심 문제로 인정하게 만들었다. 이와 같은 업적은 마르크스의 ≪경제학·철학 초고≫와 레닌의 ≪철학 노트≫가 1930년대 초에야 비로소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해 볼 때 놀랄 만한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사물화론을 통해 마르크스와 베버를 종합함으로써 근대 자본주의를 보는 두 패러다임 사이에서 생산적인 대화를 촉발했다. 마지막으로 마르크스주의 전통과 유럽의 사상 및 문화 전통을 독창적으로 결합함으로써, 당시까지만 해도 경제 이론 정도로만 통용되던 마르크스주의에 철학적 차원을 복원하고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유럽의 지성계에서 상당한 지위로 끌어올렸다.
200자평
죄르지 루카치가 1919년부터 1922년까지 헝가리 공산당에서 활동하면서 혁명 운동의 이론적 문제들에 관해 틈틈이 쓴 논문들을 모은 책이다. 이론적으로는 제2인터내셔널의 수정주의를 거부하고 마르크스주의를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의 혁명적 상황과 일치시켜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려는 노력의 소산이었다.
지은이
죄르지 루카치(György Lukács, 1885~1971)는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미학자, 문학 이론가의 한 사람이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태계인 아버지는 아들이 금융업에 종사하길 바랐지만, 그는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자본주의적 삶을 깊이 혐오해 이런 바람에 심하게 반발했다. 부다페스트대학에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법학을 공부했지만, 그의 진정한 관심은 사회학과 철학, 특히 미학에 있었다. 1904년에 노동자 계급에게 현대극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탈리아’라는 극단을 창설하기도 했다.
1906년부터 상당 기간 외국에서 유학했다. 1909년과 1910년에 베를린에서 지멜의 ‘개인적인 제자’가 되어 강의를 들었으며, 1913년에서 1917년까지는 하이델베르크에서 ‘베버 서클’에 속해 있었다. 특히 베버와는 각별한 교분을 나누었다. 철학적으로는 주로 리케르트, 빈델반트, 라스크 등의 신칸트주의에 영향을 받다가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점차 헤겔과 마르크스로 기울었다.
1918년 12월에 헝가리에서 결성된 공산당에 입당했다. 1919년 3월에는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이 선포되었는데, 루카치는 이 정부에서 교육 및 문화 부인민위원이 되어 교육과 문화의 재편성을 위한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짰다.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이 133일 만에 무너지자 빈으로 망명해 1929년까지 머물렀다. 1928년에는 다음 해에 열릴 헝가리 공산당 대회에 제출하기 위한 정치 논문들을 작성했다. 이 논문들은 그의 가명을 따서 ‘블룸 테제(Blum-Thesen)’라고 불린다.
1930년에 빈에서 추방되어 모스크바에 머물다가 1931년에 베를린으로 갔다.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장악한 뒤 1934년에 소련에 가서 1944년까지 머물렀다. 1933년과 1934년에 ≪역사와 계급의식≫에 대해 자아비판을 하고 이후 미학과 문학사 연구에 몰두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1945년에 헝가리로 돌아왔다. 부다페스트대학의 미학과 문화철학 교수가 되었고 헝가리 의회의 의원으로 선출되었지만 공산당 내부의 요직은 차지하지 못했다. 1956년에 헝가리 봉기로 들어선 너지(Nagy) 정부에 문화부장관으로 입각했지만, 너지 정부가 바르샤바 동맹에서 탈퇴한 데 반대해 물러났다. 소련군의 탄압으로 봉기는 실패하고 루카치는 루마니아로 추방되었지만, 1957년 4월에 부다페스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일체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미학과 철학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마지막까지 저술 활동을 하다가 1971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조만영은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독일 비애극의 원천≫(발터 벤야민 저, 새물결, 2008), ≪맑스·엥겔스 문학예술론≫(만프레트 클림 편, 돌베개, 1990), 엮은 책으로 ≪맑스주의 문학예술 논쟁: 지킹엔 논쟁≫(마르크스 외 저, 돌베개, 1989) 등이 있다.
박정호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서울대, 국민대, 서울시립대, 건국대, 한양대 등에서 강의했고,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대학) 객원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인제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다. 사회 정의와 인간 실존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 밖의 여러 가지 문제를 공부하고 있다. 엮은 책으로는 ≪현대 철학의 흐름≫(공편저, 동녘, 1997), ≪지식의 세계≫ 1∼2권(동녘, 1998)이 있고, ≪철학대사전≫(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편, 동녘, 1997) 편찬에도 관여했다. 옮긴 책으로는 ≪사회과학의 역사≫(J. D. 버날 저, 한울, 1984),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하(레닌 저, 돌베개, 1992) 등이 있다.
차례
1967년 서문
1922년 서문
제1장 정통 마르크스주의란 무엇인가
1. 이론과 실천: 변증법적 방법의 의미
2. 사실과 총체성: 자연과학과 변증법
3. 변증법적 방법과 속류 마르크스주의의 방법
4. 현실의 문제: 헤겔과 마르크스
5. 의식과 존재: 사적 유물론과 프롤레타리아트
제2장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로자 룩셈부르크
1. 마르크스주의에서의 총체성
2. 마르크스주의의 속류화
3. ≪자본의 축적≫의 문제사적 서술
4. 룩셈부르크의 당과 혁명
제3장 계급의식
1. 계급의식이란 무엇인가
2. 전자본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계급의식
3. 부르주아지와 소부르주아지의 계급의식
4. 속류 마르크스주의자의 계급의식
5.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제4장 사물화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
제1절 사물화 현상
1. 상품 구조와 사물화
2. 사물화와 합리화
3. 사물화와 과학
제2절 부르주아 사유의 이율배반
1. 인식 원리의 이율배반
2. 실천 원리의 이율배반
3. 예술 원리의 이율배반
4. 모순의 변증법적 극복: 역사적 생성의 입장
제3절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
1. 직접성과 매개의 변증법
2. 질과 양
3. 고정성과 과정성
4. 경험적 사실과 발전적 경향
5. 상대주의와 역사변증법
6. 이론의 실천으로의 전화
제5장 역사적 유물론의 기능 변화
제6장 합법성과 비합법성
1. 혁명 과정에서 이데올로기 문제
2. 법률과 전술
3. 프롤레타리아 독재기의 합법성 문제
제7장 로자 룩셈부르크의 ≪러시아혁명 비판≫에 대한 비판적 고찰
1.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격: 농업 문제와 관련하여
2.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성격: 민족 문제와 관련하여
3. 역사 발전의 유기적 성격과 폭력적 성격
4. 프롤레타리아 혁명에서 국가의 역할
5. 당 조직의 문제: 기회주의와의 투쟁 문제
6. 조직 문제의 전술적·정치적 결과
7. 프롤레타리아 독재기의 자유 문제
제8장 조직 문제의 방법론
1. 조직 문제의 의의
2. 자연발생성과 의식성: 필연성과 자유
3. 당과 당원의 관계: 규율의 의의
4. 당과 계급의 관계
5. 전술과 조직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마르크스의 연구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으며 이런저런 주장에 대한 ‘믿음’이나 어떤 ‘신성한’ 책의 해석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마르크스주의의 문제에서 정통성이란 오로지 방법에만 관련된다. 정통성은 변증법적 마르크스주의 속에서 올바른 연구 방법이 발견되었으며 이 방법은 오직 그 창시자들[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정신(Sinn)에 따라서만 확장되고 확대되고 심화될 수 있다는 과학적 확신이다. 또한 그것은 그 방법을 극복하거나 ‘개선’하려는 모든 시도는 결국 천박화, 진부함, 절충주의로 귀착(歸着)되어 왔고 또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과학적 확신이다.
-4쪽
생산 과정에서의 특정한 유형적 상황(Lage)에 귀속되는[돌려지는, zugerechnet], 합리적으로 적합한 반응이 바로 계급의식이다. 따라서 계급의식은 계급을 형성하는 개인들이 생각한다든가 느낀다든가 하는 바를 총합한 것도 평균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체성으로서 계급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행위는 궁극적으로 이 [계급]의식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지 개인의 사고 등에 의해 규정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것은 오직 이 [계급]의식에 의거해서만 인식될 수 있다.
-107~1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