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프랑수아 1세를 모델로 했다. 왕은 천박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먹고 마시고, 광대이자 곱추인 트리불레의 익살에 시간가는 줄 모른다. 입속의 혀같이 굴며 왕을 방탕과 타락으로 이끄는 트리불레에게는 숨겨 둔 딸이 하나 있다. 그는 딸을 애지중지하며 모든 남자들의 손길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고자 한다. 특히 왕에게서. 하지만 그에게 앙심을 품고 있던 궁정 귀족들이 그녀를 납치해 난봉꾼인 프랑수아 1세에게 상납하고, 트리불레는 자객을 고용해 왕을 암살하려 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왕을 사랑하게 된 트리불레의 딸이 왕 대신 죽음을 맞는다.
프랑수아 1세와 마찬가지로 트리불레 역시 역사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광대의 익살이라는 희극적 요소로 가벼운 분위기에서 시작된 극은 제 손으로 딸을 죽인 아버지의 통곡 가운데 처절한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베르디는 이 작품을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자 아름다운 희곡”이라고 평했다. 엄격한 검열로 출판이 어려웠던 이 작품은 끝내 잊히는 듯했으나 곧 불멸의 걸작으로 재평가되었다.
200자평
오페라 <리골레토>로 잘 알려진 작품. 베르디는 위고의 이 희곡에 곡을 붙여 오페라 <리골레토>를 완성했다. 베르디가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이야기이자 아름다운 희곡”이라고 평한 작품.
지은이
빅토르 위고는 1802년 프랑스 브장송에서 나폴레옹 집권기에 장군을 지낸 아버지 조셉 레오폴드 위고와 중산층 부르주아 가정 출신의 어머니 소피 트레뷔셰 사이에서 태어났다. 거의 독학으로 작시법을 터득한 위고는 열다섯 살에 프랑스 학술원인 아카데미프랑세즈에서 주최하는 시 경연 대회에서 입상하고, 열일곱 살에는 툴루즈의 백일장에서도 상을 거머쥐며 일찍부터 문학에 남다른 두각을 나타냈다. 스무 살에는 형제들과 ≪문학수호자(Conservateur littéraire)≫라는 잡지를 발간하면서 문학에 대한 열정과 재능을 키웠다. 1823년에는 첫 소설인 환상적 색채의 ≪아이슬란드의 한≫을 발표했고, 1828년에는 시집 ≪오드와 발라드≫를, 1827년과 1829년에는 희곡 <크롬웰>과 <에르나니>를 발표하는 등 데뷔 초기부터 시, 소설, 희곡을 넘나드는 왕성한 창작 활동을 보여 주었다. 또한 노디에, 라마르틴, 비니 등 동시대 문인들과 더불어 오랫동안 낭만주의 세나클을 이끌며 동인 활동에도 적극적이었다. 위고는 단순히 폭정에 반대하고 분노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폭정을 몰아내고 공화제를 확립하는 데 앞장선 투사였다. 그는 근본적으로 이상적인 사회를 꿈꾼 개혁주의자이자 자유수호자였다. 사회 불평등을 비판했고, 생산에 재투자하지 않고 이득만을 챙겨 가는 부자들을 비난했으며 민주주의 권력에 반하는 폭력에도 적대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출판의 자유와 의무, 무상·세속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했고, 사형제 폐지와 노동자의 주택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보통선거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했다. 위고는 문학 창작과 사회 참여를 동시에 실천한 행동가였다.
옮긴이
이선화는 이화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박사과정(DEA)을 수료하고, 이화여자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영남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로는 ≪핑퐁≫(연극과 인간, 2006), ≪지옥의 기계≫(지식을만드는지식, 2008), ≪현대 프랑스 연극 1940−1990≫(지식을만드는지식, 2011), ≪막베트≫(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죄지은 어머니≫(지식을만드는지식, 2015)가 있고, 공저로는 ≪프랑스 문학과 여성≫(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3), ≪현대 프랑스 문학과 예술≫(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 2006)이 있다.
논문으로는 <장 콕토의 ‘지옥의 기계’에 나타난 여성적 이미지>, <아르튀르 아다모프, 신경증 환자들의 가족 소설>, <한태숙 ‘서안화차’에 나타난 공간성 연구>, <이오네스코의 셰익스피어 다시 쓰기−‘막베트’를 중심으로>, <장 주네의 ‘하녀들’에 나타난 여성성과 여성적 글쓰기>, <야스미나 레자의 ‘아트’에 나타난 고전적 극작술의 현대적 변용>, <프랑스 현대극에 나타난 다시 쓰기의 미학−메테를링크의 ‘조아젤’과 세제르의 ‘어떤 태풍’을 중심으로>, <보마르셰의 음악의 극작술−‘세비야의 이발사’와 ‘피가로의 결혼’을 중심으로> 등 다수가 있다.
차례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4막
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트리불레: (혼자 자루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자가 저기 있단 말이지! 죽어서! 어쨌건 한 번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자루를 더듬는다.) 별일이야 있겠어, 그자겠지. 이 덮개 아래로 느껴지는데. 포대 아래로 박차가 만져지는군. 그자가 맞아! (다시 몸을 일으켜서 자루에 발을 얹으며) 자, 이보시오들, 나를 좀 보시지요. 그래 내가 광대요. 이자가 왕이고. 어마 무시한 왕이지! 왕 중의 왕! 최고의 왕! 그 왕이 내 발아래 있소이다. 센강이 무덤이고, 이 자루가 수의가 되겠구나. 이렇게 만든 게 누구지? (팔짱을 끼며) 좋아, 그래 나지, 나 혼자. 아니, 승리를 거뒀다고 해서 돌아가지는 않을 테다. 내일 당장은 사람들도 안 믿으려 하겠지. 후손들은 뭐라 말할까? 나라가 이런 파란을 겪게 되면 오랫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운명이여, 그대가 우리를 이리로 몰고 왔으니, 우리로 하여금 이 사태에서 벗어나게 해 줄 이도 그대일 터! 가장 지체 높으신 군주 가운데 한 분인 프랑수아 발루아, 불꽃의 심장을 지니신 왕족, 샤를 퀸트의 정적인 프랑스의 왕, 불멸의 삶을 누리실 신, 전쟁의 승리자, 지축을 뒤흔드는 발걸음을 가지신 분. (간간이 천둥소리가 들린다.) 밤에는 요란한 소리로 부대가 진군하게 하고, 낮에는 피 묻은 손에 토막 난 세 개의 장검만을 가지고 계신, 마리냥 전투의 영웅이신 왕! 영광으로 빛나는 온 우주의 신! 갑작스레 떠나게 될 신! 자신의 명성과 소문과 향내를 풍기는 궁정을 자신의 모든 권능 속에 싣고 가 버린 왕! 잘못 태어난 아이 수습하듯 천둥치는 밤 낯모를 누군가에 의해 처리된 왕! 뭐라고! 이 궁정, 이 시대, 이 통치권에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구나! 왕은 붉게 물든 새벽에 일어나 기력을 잃고 쓰러져 공중으로 사라졌나니! 한 줄기 빛처럼 나타났다 사라졌도다! 모르긴 해도 내일이면, 하릴없이 괴성을 지르며 금 한 무더기를 가리키면서 도시를 가르며 지나가는 이들도 있겠지, 혼비백산한 행인들에게 고함을 질러 대면서 말이야. “실종된 프랑수아 1세 폐하를 어디 가서 찾는단 말인가!” “알 수 없는 일이야!” (한동안 침묵) 내 딸아, 오, 불쌍한 것, 이제 그자는 벌을 받았으니 네 복수는 이루어졌다! 오! 내가 그자의 피를 얼마나 원했던가! 금붙이라면 나한테도 얼마든지 있다!
162-16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