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요코미쓰 리이치(横光利一)는 일본의 모더니즘 문학을 대표하는 신감각파 작가다. 신감각파는 독특한 효과를 내는 의인법이나 인간을 물체시하는 묘사, 동작이나 상태의 급진전에서 오는 심한 비약이나 대조 효과를 노린 묘사, 문법을 고려하지 않는 표현 등을 구사하는 특징을 보인다. 독자 입장에서는 작위적인 인상을 받거나 심한 비약 때문에 이물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일본 근대 문학 연구자 이소카이 히데오(磯貝英夫)는 요코미쓰의 신감각파적 표현기법을 비약이나 이질적인 말의 조합으로 생기는 저항감에 의해 새로운 감각을 창출하고자 하는 의도라고 풀이했다. 독자가 느낄 수 있는 ‘이질감’ 내지는 ‘신선한 새로움’이 바로 그러한 요코미쓰의 작가적 의도에서 나온 문체 특성 때문임을 보여 준다. 요코미쓰는 자신의 독자적인 표현 의식을 설명한 <신감각론>에서, “신감각파의 감각적 표징이란 자연의 외상을 박탈하고 물(物) 자체에 뛰어 들어간 주관의 직감적 촉발물”이라고 정의했다.
초기작 <조롱당하는 아이>, <파리>는 자신의 운명을 모르는 인간을 그린 작품이다. 운명을 좌우하는 보이지 않는 존재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하는 본질적인 비극이 드러난다. 특히 <파리>는 기쿠치 간(菊池寛)의 극찬을 받은 작품으로 유명하며 완성도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신감각파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시기의 작품 <머리, 그리고 배>, <거리의 밑바닥>에서는 대담한 직유나 은유, 의인법, 기성의 언어 표현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생경한 어구 등을 볼 수 있다. <머리, 그리고 배>의 서두에 나오는 문장은“ 신감각파 문학을 대표하는 문장으로 매우 유명하다.
아내가 점점 쇠약해지는 상황에서 간병하는 남편의 모습을 그린 <봄은 마차를 타고>, 아내가 죽은 후에 나타난 나방을 아내라고 믿게 되는 남자의 모습을 그린 <나방은 어디에나 있다>, 죽어 가는 아내를 지켜보는 남편의 모습을 그린 <화원의 사상>은 병든 아내를 소재로 한 일련의 작품이다. 1926년 가나가와 현의 요양소에서 향년 23세로 숨을 거둔 요코미쓰의 첫 부인 고지마 기미를 모델로 한다. 사소설적 작품에 속한다고 평가를 받는 단편에는 이외에도 조선의 경성에서 뇌일혈로 죽은 아버지를 소재로 쓴 <파란 돌멩이를 줍고 나서>가 있다.
이후 요코미쓰는 차례로 유물론적 경향과 신심리주의 경향을 드러내는데, <눈에 보인 이>, <새>, <기계>, <시간> 등이 그 대표작이다.
200자평
대담한 비유, 비약이나 이질적인 말의 조합으로 새로운 감각을 창출하고자 하는 일본의 신감각파 작가 요코미쓰 리이치의 단편집이다. 이 책에서는 초기작 <조롱당하는 아이>, 신감각파 문학의 대표작 <머리, 그리고 배>, <파리>, <거리의 밑바닥>, 사소설적 작품 <파란 돌멩이를 줍고 나서>, <봄은 마차를 타고>, <화원의 사상>, 심리와 감각의 얽힘이 두드러지게 신심리주의 경향을 보이기 시작하는 작품 <새>와 <기계> 등 초기부터 후기까지 요코미쓰 리이치의 작품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지은이
요코미쓰 리이치는 1898년, 후쿠시마 현(福島縣)에서 태어났다. 1917년 ≪문장세계≫에 <신마(神馬)>를 투고한 것을 시작으로, <활화산>, <불> 등을 발표했는데, 초기 작품에는 사소설적인 소재가 많았다. 이후 <파리>, <태양>, <마르크스의 심판>, <옥체> 등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신진 작가로서 빛을 발했다. 1928년 이후 <눈에 보인 이>, <신감각파와 코뮤니즘 문학> 등을 통해 유물론적 문학론에 대한 자신의 주장과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한 대항 의식을 표면화했다. 그러나 1930년, 심리와 감각의 얽힘이 두드러진 <새>와 <기계>를 발표함으로써 신심리주의 경향을 보이기 시작한다. 1936년 유럽 여행 경험을 토대로 서양 사상과 일본의 고신도(古神道), 그리고 과학과 일본 사상을 다룬 장편 소설 ≪여수(旅愁)≫의 신문 연재를 시작한다. 1945년 야마가타 현(山形縣) 소개지에서 패전을 맞이했는데, 그 충격으로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전시하의 답답한 심경을 그린 ≪밤의 구두≫와, ≪우아한 노래≫를 출판한다. ≪여수≫를 미완으로 남긴 채, 1947년 단편 <남포등>을 집필하던 중 위궤양과 복막염으로 숨을 거둔다.
옮긴이
인현진은 연세대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동양어문학과에서 <요코미쓰 리이치(横光利一)의 유물론적 인식에 대한 고찰−≪상하이≫를 중심으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도쿄 오테마치(大手町)에 있는 ㈜대한재보험 동경사무소에서 통·번역비서로 근무한 바 있으며, 영진전문대학과 영남이공대학, 한국IT교육원, 평생교육원 등에서 전임 강사로 일했다.
번역서로는 ≪구니키다 돗포 단편집≫이 있고, 저서로는 ≪시나공 JLPT 일본어능력시험 N1 문자어휘≫, ≪비즈니스 일본어회화 & 이메일 핵심패턴 233≫, ≪비즈니스 일본어회화 & 이메일 표현사전≫이 있다.
현재 기업체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며 번역에 힘쓰고 있다.
차례
조롱당한 아이
파리
머리, 그리고 배
파란 돌멩이를 줍고 나서
거리의 밑바닥
나방은 어디에나 있다
화원의 사상
눈에 보인 이
새
기계
시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끝내 아내가 죽고 말았다. 남자는 넋이 나간 듯 멍하니 아내 얼굴에 덮인 하얀 천을 바라보았다. 어젯밤 아내의 피를 빨아 먹은 모기가 아직 살아서 벽에 붙어 있었다.
남자는 방을 열쇠로 걸어 잠근 채 한참 동안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남자는 모기가 아내의 피를 배 속에 담은 채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서 아내의 시체보다 모기 배 속에서 아직 살아 숨 쉬는 아내의 피가 떠올라 마음이 설렜다.
−93쪽, <나방은 어디에나 있다>
다쓰코는 내가 준 자유를 팔아서 자기 마음대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 누가 육체의 기관을 팔지 않고 돈을 벌어들일 수 있으랴. 우리는 모두 죽을 때까지 구매자가 있는 기관부터 팔아야 한다.
−153쪽, <눈에 보인 이>
아무리 착해도 그렇지 그토록 중대한 일을 남한테 함부로 떠벌려도 되는 건지 몹시 걱정스러웠지만 나를 굳게 믿어 주는 주인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름지기 인간이란 신뢰를 받으면 신뢰를 받는 쪽이 패배한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주인은 항시 주변 사람들에게 이겨 온 셈이지만 주인처럼 대책 없이 착하기만 한 사람이 아무나 될 수는 없을뿐더러 바로 그 점이 주인이 위대한 이유일 것이다.
−226~227쪽, <기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