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이 책은 동시대 다양한 이미지를 생산·배분하는 장치들이 주체성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를 다룬다. 장치라는 단어를 특정 이론가의 고안물로 보기보다 현대 담론에서 반복해 등장하는 이론적 징후로 간주한다. 장치 이론에서 이미지가 차지하는 역할을 규명하고 갤러리의 비디오 작품에서부터 드론 영상에 이르는 다양한 이미지 장치 혹은 장치 이미지를 분석한다. 이 책은 이미지를 언어의 대척점에 있는 수동적 존재로 보거나 저항의 구심점으로 보는 이미지 타자화 관점을 극복하고 이미지의 존재론과 의미론을 능동적으로 재구성한다. 미학, 미디어 이론, 장르비평 등 여러 담론들과 대화하며 사진과 영화 시대에 만들어진 개념적 도구를 교체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지은이
조선령
부산대학교 예술문화영상학과 교수다.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 미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은 “라캉의 근본환상 개념과 예술이론”이다. 주요 논문으로 “야나기 무네요시와 한국미학이라는 상상적 대상”(2017), “아카이브와 죽음충동: 데리다와 정신분석학의 관점에서”(2016), “장치 개념과 이미지 이론의 확장: 플루서와 아감벤의 접점을 중심으로”(2015), “파괴와 창조의 시간: 자넷 카디프의 <까마귀의 살해>와 ‘역사적 대상’로서의 사운드”(2014), “동시대 비디오아트의 시네마틱한 특성에 대한 연구”(2013), “광학 장치와 시각적 리비도”(2011) 등이 있다. 한국미학예술학회 기획이사, 현대미술학회 편집위원, 계간지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라캉과 미술』(2011), 역서로 『미술사의 현대적 시각들』(2007), 『재현의 정치학: 40년대 이후의 미술』(공역, 1997)이 있다. 연구자인 동시에 큐레이터이기도 하다. 부산시립미술관, 아트스페이스풀,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일했으며 2010년 이후 독립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다. 사회적 장과 예술적 장의 생산적 만남에 관심을 갖고 있다. 기획 전시로는 <무용수들> (2017), <카타스트로폴로지>(2012), <기념비적인 여행> (2010), <드림하우스>(2009), <일상의 역사>(2007) 등이 있다.
차례
01 장치, 이미지, 주체성
02 이미지 공포증
03 스펙터클과 관람자
04 인터페이스ᐨ이미지
05 데이터ᐨ이미지
06 영화 모델에서 게임 모델로
07 비디오아트 모델
08 CCTV와 비인간적 시간성
09 재난의 생중계
10 추적과 차단: 이미지 전쟁
책속으로
오늘날 이미지 생산과 소비의 기반은 물질적 토대에 제약받지 않는다. 이미지 생산과 소비는 점점 더 탈물질적이고 가변적이며 관계적인 양상을 띤다. 이 책은 이미지라는 현상 자체를 개념적으로 설명하거나 그 기술적 기반을 고찰하는 것을 넘어서, 동시대 이미지 생산과 소비의 복잡한 메커니즘에 관심을 갖는다. 특히 이러한 메커니즘이 어떤 주체성을 생산하고 어떤 경험의 틀을 만들어내는가 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다뤘다.
“이미지 장치 이론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미첼의 책은 19세기의 카메라오브스쿠라에서 끝나지만 우리는 그의 논의를 이어받아 21세기의 이미지 공포증을 논할 수 있다. 21세기의 이미지 공포증 역시 미첼이 말한 것처럼 ‘타자에 대한 공포’를 반영하지만 여기서 타자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오늘날 테크놀로지라는 타자는 불가사의한 힘의 장소 혹은 절대적 타자의 장소를 점유한다. 알파고(AlphaGo)가 불러일으킨 충격을 상기해 보자. 테크놀로지를 숭배하는 것은 더 이상 ‘어리석은 대중’뿐만이 아니다. 이론가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테크놀로지의 힘을 두려워한다. 현실과 이미지를 구별하지 못하게 되어 진리와 거짓, 타자와 나, 이성과 광기의 구별이 무너질까 봐 두려워하는 것은 이론가 자신이다.
“이미지 공포증” 중에서
IS가 탈레반 같은 구식 테러 집단과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는 그들이 이미지 전쟁을 효과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포로들을 참수하는 동영상과 사진을 제작하고 그것을 온라인에 유포한다. 단순히 사람을 죽이는 것뿐 아니라 그 장면을 촬영해 유포한다는 것 그것도 참수라는 잔인한 방법을 사용한 살해 장면을 유포한다는 것이 그들의 악명을 높였다. 인터넷에 유포된 동영상을 보면 보통 인질들은 오렌지색 옷을 입고 얼굴을 드러내고 손이 뒤로 묶인 채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그들 등 뒤에 칼이나 총을 들고 서 있는 테러리스트들은 모두 검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촬영 장소는 대부분 구체적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운 사막이나 황야 같은 곳이다.
“추적과 차단: 이미지 전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