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소년 이보 안드리치와 보스니아
안드리치의 작품 대부분의 배경은 그가 태어난 보스니아다. 안드리치는 집안 사정으로 고향 트라브니크를 떠나 비셰그라드의 고모 밑에서 자랐다. 덕분에 또래보다 일찍 성숙했지만 고독과 불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드리나 강의 다리 위에서 이야기를 들려주던 동네 할아버지는 훗날 안드리치 작품들에 반영된 이야기의 원천이 된다. 사라예보로 가서 명문학교에 진학한 그는 청년 보스니아 운동에 가담했다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3년간 투옥되기도 한다. 이렇게‘트라브니크·비셰그라드·사라예보’는 그의 작품 세계의 키워드가 되었다. 안드리치가 발표한 100여 편의 소설들은 얽히고설킨 실타래와 같다. 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다른 이야기의 내레이터가 되고,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관조자 역할을 하는 등 각각의 이야기가 서로 맞물려 있다.
초기 작품 8편을 선별
이 책은 안드리치의 보스니아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데 그의 초기 작품들을 먼저 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점에 주목했다. 문학적 사유와 정신적 교감의 틀을 만들었던 유년기 작가의 기억이 고스란히 담긴 소설 8편을 선별해 한 권에 담았다. 학업과 외교관 생활로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등을 다니며 지내기도 했지만 안드리치의 마음속에는 늘 보스니아가 있었다. 외교관으로 일하던 1924년에는 <터키 지배의 영향하에서 보스니아 정신생활의 발전>이라는 논문으로 오스트리아의 그라츠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렇듯 그에게 보스니아는 작품의 주제이자 정신적 연구 대상이었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적 갈등, 문화적 차이가 공존했던 보스니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그는 보스니아인들의 역사, 가치관, 문화를 이야기로 표현했다. 그는 조국의 역사와 관련된 인간의 운명 문제를 파헤치는 서사적인 힘을 인정받아 1961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200자평
1961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집이다. 당시 한림원은 ‘조국의 역사와 관련된 인간 운명의 문제를 철저히 파헤치는 서사적 필력’을 높이 평가했다. 책에는 그의 문학적 사유와 정신적 교감의 틀을 만들었던 유년기 기억을 더듬어 볼 수 있는 초기 작품 여덟 편을 선별했다. 소년들의 호기심 어린 이야기를 통해 앞이 보이지 않아 불안한, 터널과도 같은 우리의 어린 시절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이 책은 말한다. 100편이 넘는 소설 대부분의 무대가 보스니아일 정도로 보스니아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작가인 만큼 그의 작품에는 보스니아인들의 역사와 가치관, 문화가 담겨 있다.
지은이
이보 안드리치(Ivo Andrić)는 1892년 10월 10일 보스니아의 작은 마을 트라브니크에서 크로아티아인 아버지 안툰과 어머니 카타리나 사이에 태어났다. 고모 밑에서 자란 안드리치는 엄격한 교육과 자상한 보살핌을 받았으나 왠지 모를 불안과 고독으로 어려서부터 힘겨워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당시 보스니아 최고의 명문 고등학교인 벨리카 김나지야에 진학하면서 사라예보에서 지내게 된다. 이때 이웃에 살고 있던 예브게니야를 만나게 되고 그녀가 죽기 전까지 서신을 주고받으며 정서적 안정을 찾았다. 벨리카 김나지야 재학 시절 보스니아 해방을 위해 조직된 ‘청년 보스니아 운동’에 가담했다가 1차 세계대전 당시 3년 동안 투옥되기도 했다. 19세가 되던 1911년 이보 안드리치는 사라예보의 월간 문학지 ≪보스니아의 요정≫에 그의 처녀시를 발표했고, 26세가 되던 1918년에는 산문시집 ≪흑해로부터≫를 발표하며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2년 뒤인 1920년 ≪불안≫이라는 두 번째 시집을 내기는 했지만 더 이상 시는 쓰지 않았다. 같은 해 단편 <알리야 제르젤레즈의 여행>을 발표했다. 안드리치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으며 노벨 문학상을 받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소설 <드리나 강의 다리>는 보스니아와 세르비아의 접경에 위치한 작은 도시 비셰그라드와 이 도시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는 드리나 강 위에 놓인 다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400여 년의 인간사를 다루고 있다. 4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주인공들은 지나가고 없지만 비셰그라드와 드리나 강 위의 다리만은 한 제국의 흥망성쇠를 목도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같은 해 <트라브니크 연대기>와 <아가씨>를 발표한다. 그 외에도 중편 <저주받은 안뜰>, <몸통>, <올루야크 마을>, <물레방아>, <삼사라 여인숙에서의 웃음>, <현지처 마라>, <제파 강의 다리> 외 100편이 넘는 작품들을 집필했다. 구(舊) 유고연방의 대통령을 지낸 요시프 브로즈 티토로부터 국민 훈장을 받기도 했다. 1975년 3월 13일 베오그라드의 육군 병원에서 심장 발작으로 세상을 떠났다.
옮긴이
김지향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세르비아ᐨ크로아티아어과를 졸업했으며 베오그라드국립대학교에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외국문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재직했으며 같은 대학교 세르비아ᐨ크로아티아어과에서 후학을 가르쳤다. 전문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국내에 소개한 책으로는 ≪세계의 소설가≫, ≪세계의 시문학≫, ≪세계 연극의 이해≫, ≪히치하이킹 게임≫, ≪드리나 강의 다리≫, ≪내 왼쪽 무릎에 박힌 별≫, ≪쇼팔로비치 유랑 극단≫ 등이 있으며 ≪이청준 단편선≫, ≪오정희 소설선≫, ≪천상병 시선집≫, ≪황순원 단편선≫ 등을 세르비아에서 출판하는 등 우리 문학을 유럽 지역에 알리는 일도 꾸준히 하고 있다.
차례
나는 어떻게 책과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는가?
파노라마
서커스
아이들
창(窓)
탑
책
아스카와 늑대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우리가 ‘어린이’라고 부르는 작은 사람들은 시간이 흘러 현명하고 성숙한 사람들이 되고 난 뒤에는 잊게 되는 자기들만의 커다란 아픔과 기나긴 고통을 가지고 있다. 사실 그것들은 눈에서 멀어졌을 뿐인데 말이다. 우리가 아주 오래전에 떠나왔던 초등학교 걸상에서처럼 우리가 그 어린 시절로 다시 되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다시 볼 수 있을 텐데. 저기 밑, 그 모퉁이 밑에 그 아픔들과 그 애환들이 모두 제각기 살아 있는 것처럼 살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할 것이다.
-104~10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