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트로이 출정을 앞둔 아가멤농에게 사제 칼카스가 불길한 신탁을 전한다. “헬렌의 피를 이어 받은 소녀, 이피제니를 제물로 바쳐라.” 신은 헬렌의 조카이면서 아가멤농의 딸인 이피제니를 요구하고 있다. 아가멤농은 고민 끝에 군대 몰래 딸을 빼돌리기로 한다. 하지만 그가 손을 써 보기도 전에 이피제니가 그리스군 진영에 도착한다.
라신은 잘 알려진 에우리피데스의 비극을 참고해 작품을 썼다. 하지만 “신이 이피게네이아를 죽음 직전에 사슴과 바꿔치기한다”라는 결말만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에우리피데스 시절에나 믿었을 기적이었다. 그는 다른 결말을 원했다. 파우사니아스의 글이 실마리를 제공했다. 제물로 바쳐진 것은 ‘헬레네와 테세우스 사이에서 난 이피게네이아’라는 기록이었다. 그녀는 라신의 손에서 ‘에리필’이라는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
아실을 사랑하게 된 에리필은 연적 이피제니를 제거하기 위해 신탁이 이행되도록 계략을 꾸민다. 이피제니가 희생되기 직전, 베일에 가려졌던 에리필의 출생이 밝혀진다. 제대에 그녀의 피가 흐르자 고요하던 그리스 연안에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에리필이 바로 “헬렌의 피를 이어 받은 소녀, 이피제니”였던 것이다. 새로운 결말에 당대 관객은 열렬한 호응을 보냈다. 이로써 <이피제니>는 라신의 성공작으로 자리매김했다.
200자평
라신 비극 가운데 가장 열렬한 호응을 받은 작품이다.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 아름다운 문체가 특징이다. 특히 완벽한 형식미는 프랑스 고전주의의 진수라 할 만하다. 아가멤논이 트로이로 출정하기 위해 신탁에 따라 딸을 희생한다는 그리스 신화를 내용으로 한다.
지은이
장 라신(Jean Racine, 1639∼1699)은 프랑스 17세기 고전주의시대의 비극 작가다. 파리 근교 페르테 밀롱에서 태어나 어려서 고아가 되었으나 니콜과 아르노 등 장세니스트 학자들의 고급 교육을 받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스어와 라틴어에 통달했던 그는 루이14세 치하에서 극작 활동을 하다 1677년 왕의 역사 편찬관으로 임명되어 궁정인의 직책을 수행하게 된다. 대표작으로 그리스 신화의 주제를 다룬 비극 <앙드로마크>(1667), <이피제니>(1674), <페드르>(1677)를 들 수 있다. 그의 비극은 사랑의 정념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불가피한 파멸을 그린다. 등장인물의 내면 심리가 하는 불가항력적인 역할은 그리스 비극에서 운명의 기능을 대체한다고 평가되며, 특히 여성 심리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12음절 시구인 ‘알렉상드랭’으로 쓰인 5막 비극들은 완벽한 형식미를 가졌으며 그 유연성은 음악에서의 모차르트에 비유되기도 한다.
옮긴이
송민숙은 연세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3대학교에서 장 라신 연구(<라신과 그 경쟁자들>)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학교에서 불문학과 연극을 강의하고 있으며, 계간 ≪연극평론≫ 편집위원, 연극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저서로 논문집 ≪연극과 수사학 1, 2≫(연극과 인간, 2007, 2014), 연극평론집 ≪언어와 이미지의 수사학 1, 2≫(연극과 인간, 2007, 2013) 등이 있고, 역서로 ≪프랑스 고전비극≫(동문선, 2002), ≪서양 연극의 무대 장식 기술≫(동문선, 2007), ≪페드르≫(지만지, 2008), ≪바자제≫(지만지, 2011) 등이 있다.
차례
지은이 서문
나오는 사람들
1막
2막
3막
4막
5막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율리스: 엘렌의 다른 핏줄, 다른 이피제니가
이 바닷가에서 목숨을 희생해야 한다.
테제가 엘렌과 은밀히 내통하여
유괴 후 결혼했다.
딸이 태어났고, 어미가 숨겼으며,
이피제니란 이름을 붙였다.
난 당시 그들 사랑의 결실을 보았다.
불길한 징조로 그 애 앞날을 위협했다.
다른 이름을 빌린 그녀는 어두운 운명과
자신의 분노 때문에 여기 와 있다.
날 보고, 내 말을 듣고, 그대들 눈앞에 있으니,
신이 원하는 이는 바로 그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