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본서에서 ‘개별화’/‘개별성’이라는 단어는 독일어 ‘Individuation’/‘Individualität’를 번역한 말이다. 그것의 의미는, 논문에서 전반적으로 어떤 것이 다른 무엇과 구분되어 자기만의 특성을 가진다는 의미로, 그것은 대략 일회성, 유일성, 독특성, 개성 등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딜타이는 <기술심리학과 분석심리학에 대한 이념들>이라는 논문에서 인간의 심적 구조의 발달이 어떻게 해서 인간 삶의 개별화를 낳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거기서 ‘개별성’은 후천적으로 인간들이 역사적 관계에서 획득하게 되고 또한 특히 타자와의 상대적 관계에서 차이를 통해 자기만의 독특성을 갖는 그 어떤 심적 구조의 배열 관계를 의미한다.
그런데 개별성은 분해될 수 없는 것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어떤 집합체를 상대로 해서도 사용되는 개념이다. 그것은 특히 대상들의 전체 속성을 의미하는 전형/유형(type)과 관련해서 사용되는 개념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일군의 사람들이 일정의 동일 공통 속성을 보인다면, 이때의 속성 또한 개별성과 관련한다. 그 속성이 다른 것들이 갖는 속성과 구분되어 자신만의 고유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별성은, 개체와는 달리, 보편개념과 모순되지 않고 서로 상통한다. (그래서 ‘Individualität’는 본서에서 ‘개체성’으로 번역되지 않았으며 또한 주로 개체와의 관계에서 그 의미를 행사하는 ‘개성’으로 번역되지 않았다.) 개별성의 파악은 이렇게 하나의 개별자를 그 자체로서만이 아니라 또한 그것이 속하고 있는 전체 속성과의 관계에서 이해하는 일이다. 이해의 대상이 역사적 상황과 맥락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동안, 개별성은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딜타이는 ‘개별성’의 연구 문제를 정신과학의 한 중요한 특징으로 파악한다. 1장에서 이 문제는 자연과학 대 정신과학과 대조적 특성 형식을 매개로 논의되고 있다. 그리고 2장에서는 개별성의 문제가 이제는 거기서와는 또 다른 수준에서, 즉 유형이나 전형과 관련이 있는 동형성과의 관계에서 논의된다. 1장 및 2장의 논의는 다소 해석학 이론적인 논의에 속한다. 이런 이론적 논의는 실제의 해석적 실천을 통해 보완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작업이 바로 3장에서 전개된다. 딜타이는 3장에서 문학의 경우를 실증 사례로 끌어들여 개별화 작용의 모습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달리 말해, 거기서 딜타이는 (동형성을 바탕으로 한) 개별화의 문제가 문학에서, 특히 희곡에서 어떻게 실현되어 왔는지를 추적한다. 그 작업은 고대 그리스의 희곡들에서 시작해 셰익스피어 등을 거쳐 괴테와 실러의 작품들에 걸쳐 이루어진다. 이것들을 통해 딜타이는 개별화가 문학에서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정신과학의 특성을 그런 개별화의 모습에서 스케치해 준다. 그리고 개별화가 삶 연관에서 구성되는 것인 만큼 그것은 또한 동시에 그의 삶 철학적 시각을 정신과학을 빌려 전개시키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그의 역사철학적 시각뿐 아니라, 사실은 위에서 거론한 요소들 모두가 전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독자 스스로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200자평
칸트가 자연과학의 철학적 정초에 관심을 가졌다면, 딜타이는 정신과학의 철학적 정초에 관심을 가졌다. 딜타이에 따르면 대상들을 설명하고자 하는 자연과학과는 달리 인간, 사회, 국가에 관한 학문인 정신과학은 근본적으로 대상의 ‘이해’를 추구한다. 이 책에서 딜타이는 다양한 예시를 통해 정신과학의 특성을 개별화의 모습에서 스케치해 보여 주고 있다.
지은이
빌헬름 딜타이는 1833년 11월 19일에 독일 비스바덴(Wiesbaden) 시(市)의 비브리히(Biebrich)라는 마을에서 개신교 캘빈파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874년에 푸트만(Katherine Puttmann)과 결혼해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그리고 1911년 10월 1일에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 걸쳐 있는 남(南)티롤 지방 슐레른 강변의 자이스(Seis)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저서로는 1870년에 ≪슐라이어마허의 삶(Das Leben Schleiermachers)≫ 1권이 나왔다. 1883년에 ≪정신과학 입문(Einleitung in die Geisteswissenschaften)≫ 1권이 나왔고, 1894년에는 ≪기술심리학과 분석심리학에 대한 이념들(Ideen über eine beschreibende und zergliedernde Psychologie)≫을 출간했다. 1900년에 후설의 ≪논리 논고(Logische Untersuchungen)≫가 나온 후 후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1906년에는 ≪체험과 문학(Das Erlebnis und die Dichtung)≫을 출간하면서 대중적으로도 알려지게 되었다. 1911년에 그의 전집 ≪세계관, 철학, 그리고 종교(Weltanschauung, Philosophie und Religion)≫가 출간되면서 딜타이 학파가 생겨났다.
옮긴이
한국외국어대학교 독일어과를 졸업하고 독일 마르부르크 대학교(Philipps-Uni. Marburg)에서 철학 학·석사(Magister) 및 박사학위(Dr. Phil.)를 취득했다. 박사학위논문은 인지과학의 (과학)철학적 정초 문제를 문화주의적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청주대학교, 서원대학교, 한남대학교, 한남대학교 교육대학원 등에서 외래교수로 강의를 했으며, 현재는 원광대학교 마음인문학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대표 논문으로 <‘마음’ 연구 방법의 변천 논리 고찰>(대동철학회, 2003), <방법적 문화주의 철학-철학적 자연주의와의 대조>(대동철학회, 2004), <통속심리학적 타자 이해 원리에 대한 3가지 해석-이론 이론, 시뮬레이션 이론, 구현 이론의 재구성->(한국철학회, 2004), <인지역학 시론-인지과학의 한 개념 틀에 부쳐>(대동철학회, 2005), <J. 하버마스의 자유의지론>(대동철학회, 2007), <게티어의 전통인식론 비판은 유효한가?>(충남대 인문과학연구소, 2007), <현대에서의 구현주의적 전회>(철학연구회, 2007) 등이 있고, 역서로는 독일식 과학철학을 우리나라에 소개하고 있는 ≪구성주의 과학철학≫(철학과현실사, 2004)이 있다. 현재는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좀 더 일반화시켜 하나의 일반 철학적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는 연구를 진행 중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구현’ 개념을 가지고 구체성의 철학을 방법론적 문제들과 연계시켜, 이를 학제간 연구로 연계시키는 작업인데, 이는 기존의 추상적, 관념적, 이론적 철학에 대해 구체적, 실천적, 방법적 철학의 이념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연구다.
차례
해설
지은이에 대해
1. 인간 본성의 동일성과 개별성
1) 자연과학과 정신과학: 그 차이
2) 두 학문의 공통점: 조작 논리
3) 학문 경계를 넘나드는 연구 방법들
4) 자연과학과 정신과학 두 학문의 차이
5) 중간 정리
6) 자연과학과 감각 작용
7) 정신과학과 심적 작용
8) 정신 작용: 부분과 전체
9) 자연과학 대 정신과학: 정리
10) 삶의 공통 특성, 개별성, 그리고 역사성
11) 정신과학과 개별성
12) 사실과 규범. 이론과 실천: 융합
13) 개별성과 동형성
14) 개별성과 비교 방법
2. 인간의 개별화와 관련한 일반적 시각들
1) 현실의 동종성
2) 동일성, 전형, 개별성
3) 생명치와 개별화
4) 인간, 환경, 그리고 개별화
5) 동형성을 바탕으로 한 개별화
6) 세 가지 이론들: 일반 이론, 비교 이론, 복합 이론
7) 심적 원천의 환원 불가능성
8) 심리학의 과제
3. 인간-역사적 세계에 대한 최초의 개별성 표현으로서의 예술
1) 삶 경험, 예술, 과학: 그 관계
2) 표현 예술의 기능
3) 내적 체험과 이해
4) 이해의 근거
5) 학술적 해석
6) 모방예술
7) 전형적인 봄
8) 예술 작품에서의 전형의 표현
9) 전형의 근원
10) 정리와 앞으로의 논의 방향
11) 작중인물 성격의 개별화: 그리스 희곡의 경우
12) 작중인물 성격의 개별화: 근대 15∼17세기 희곡의 경우
13) 작중인물 성격의 개별화: 근대 18세기 이후 희곡의 경우
14) 전망과 과제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예술의 토대가 삶의 경험에 있는 것이 당연하듯, 과학 역시 당연히 삶의 경험에 그 토대를 둔다. 이렇게 해서 결국 삶 경험도 그렇지만 과학도 예술적 능력 및 예술 수단들과 일정 선에서 서로 연결된다. 그러한 능력들과 수단들이 있기에 역사가·사회 이론가·정치사상가 등이 인간 및 인간의 상태들을 현전화할 수 있는 것이고, 최고 수준에 도달한 역사 기술들이 항상 최고 수준의 시적 능력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84~85쪽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성격은, 이는 그가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인데, 대부분 남성적 성격과는 극단적인 대조를 이루고 있다. ≪헨리 4세≫에서 표현되고 있는 나쁜 여인들의 사회집단에서와 같이, 여기서도 역시 동물적 본성이 발견되고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의 크레시다와 유모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그려주고 있는 이상적인 여인들, 예를 들어 줄리아·데스데모나·오필리아·이머젠·미란다·코딜리아 등의 인물 성격들에서는 수용성, 헌신, 남성에 대한 수동적 태도 등이 지배적이다.
-1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