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동화문학선집’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100명의 동화작가와 시공을 초월해 명작으로 살아남을 그들의 대표작 선집이다.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아동문학연구센터 공동 기획으로 7인의 기획위원이 작가를 선정했다. 작가가 직접 자신의 대표작을 고르고 자기소개를 썼다. 평론가의 수준 높은 작품 해설이 수록됐다. 깊은 시선으로 그려진 작가 초상화가 곁들여졌다. 삽화를 없애고 텍스트만 제시, 전 연령층이 즐기는 동심의 문학이라는 동화의 본질을 추구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편저자가 작품을 선정하고 작가 소개와 해설을 집필했으며,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다.
최은섭의 동화는 성장의 이야기다. 아이들은 자신 안에 놓인 이기적인 욕심, 세상의 편견을 깨닫고 응시함으로써 조금씩 성장한다. 아이들만이 지닐 수 있고 보여 줄 수 있는 순진무구함, 반짝이는 사유의 사금파리들은 동화 곳곳에서 빛을 발한다. ‘동심’의 힘이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의 욕심과 편견을 스스로 깨치고 변화시켜 나가는 데에서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다.
이런 맥락에서 <‘될’ 나무 씨앗>은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말하는 씨앗’이라는 판타지적 상상력을 통해 ‘이름’의 문제성을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흥미롭게 풀어낸다. ‘말하는 씨’가 스스로를 ‘굳이’ 명명하자면 ‘될 수 있는’이라고 소개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될 수 있는’ 혹은 ‘될’이라는 것은 존재의 확정이 아닌 존재의 잠재태에 대한 명명이다. 그것은 스스로 이름 짓기의 관습을 배반할 뿐 아니라 그러한 관습화된 행위에 대한 성찰을 품고 있다. 누군가를 알아 간다는 건 결코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지켜 주고 기다려 주는 과정이라는 것임을, 또 ‘나’의 손길과 타자의 삶이 잇대어 있다는 것임을 주인공 웅이는 깨닫게 된다.
최은섭 동화의 밑바탕에서 늘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타자에 대한 윤리’다. 아이들은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성장한다. 사소한 놀이 현장에서 벌어지는 충돌이라 할지라도(<그림자놀이 왕>) 그들은 서로를 배려하고 소통함으로써 관계의 균형점을 찾아간다. 자신에게 손해가 될지라도 타인의 아픔과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함을 베풀기도 한다.(<하느님이 찾는 그릇>) 친구를 떠나보낸 후에야 그의 진심을 깨닫기도 하지만(<무지개다리>) 관계 맺기의 그 지난하고 서투른 과정을 거쳐 종국에 그들이 발견하는 것은, 나와 타자가 결코 명료히 구분될 수 없다는 것(<흰 구름 먹구름>), 그리고 미소하고 비루해 보이는 타자들에게 놀라운 생명력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이다.
또 동화의 가장 내밀한 자리에는 생명에 대한 발견과 경외가 놓여 있다. 그것은 어른들이 쉽게 엿보지 못하는 ‘비밀’ 같은 세계다. 병약한 병아리를 닭으로 키워 낸 ‘한라’는 깨닫는다. “병아리 속에 그런 게 다 들어 있었나 봐요.”(<한라와 병아리>) 자신의 몸을 ‘비’로 뿌려 거친 땅에 푸른 싹을 돋아 내는 ‘흰 구름’도 “가냘프기 짝이 없는 풀이 나를 이렇게 기쁘게” 한다는 사실에 감탄한다(<흰 구름 먹구름>). 존재를 곡진히 들여다볼 때 신체의 결함으로 치부되는 ‘흉터’는 오히려 “다른 사람의 아픔을 감싸 줄 수 있는 힘”이 된다(<나는 흉터입니다>). 연약한 것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그것에서 생명의 기운을 발견하고 자기 안에 품어 내는 존재, 그것이 최은섭 동화의 아이들이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고 자연의 섭리를 자연스레 체득하는 건강한 정신이 바로 동심의 근간에 있다.
200자평
최은섭의 동화는 성장 이야기다. 아이들은 자신 안에 놓인 이기적인 욕심, 세상의 편견을 깨닫고 응시함으로써, 또 타자를 온전히 이해하고 배려하는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한다. 최은섭 동화의 아이들은 연약한 것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그것에서 생명의 기운을 발견하고 자기 안에 품어 내는 존재다. 이 책에는 <무지개 다리> 외 14편이 수록되었다.
지은이
1956년 충청북도 괴산에서 태어났다. 청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국어 교사가 되었다. 1992년 제1회 동쪽나라 아동문학상에 <향기 나는 바람>이라는 작품이 당선되면서 동화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동안 발표한 동화로는 <도대체 누굴까>, <향기 나는 바람개비>, <더맛나보다 더 맛난 것>, <어떻게 뽑혔냐고요>, <청암사 정랑을 아시나요> 등이 있다. <도대체 누굴까>는 초등학교 5학년 국어 교과서에, <하느님이 찾는 그릇>은 <구멍 난 그릇>이라는 제목으로 초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해설자
1974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고, 2010년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5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에 문학 평론 부문으로 등단한 후 문학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차례
작가의 말
따끈따끈한 돌 밤 사세요
무지개다리
다솔산의 참소나무
솔이와의 일주일
하느님이 찾는 그릇
흰 구름 먹구름
재채기하는 자전거
한라와 병아리
숲 속 마을의 목소리 대장
중문으로 납시게 하라
그림자놀이 왕
까까 할아버지
인사하는 생일 초
나는 흉터입니다
‘될’ 나무 씨앗
해설
최은섭은
권채린은
책속으로
1.
“기특하구나, 참소나무야. 부지런히도 새순을 피워 올렸구나!”
큰스님은 따스한 손으로 참이의 솔잎을 쓰다듬어 주었어요.
“새봄을 맞아 부처님께 솔잎차를 공양 올리려고 하는데 네 잎을 좀 나누어 주겠느냐?”
스님은 리기다소나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참이의 솔잎만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산을 내려가기 전에 참이의 가지를 어루만지며 가만히 말씀하셨습니다.
“늘 잊지 마라. 너는 이 땅의 참소나무란다. 너는 반드시 부처님의 집을 짓는 대들보가 될 것이다. 오랜 세월을 두고 단단히 자라기 때문에.”
-<다솔산의 참소나무> 중에서
2.
“하느님인 나도 너희의 따뜻한 가슴이 없다면 이 꽃나무를 만들 수가 없느니라. 그리고 이 꽃을 담아 기를 수 있는 것은 이 구멍 난 그릇뿐이니라. 필요한 만큼만 물을 먹고 나머지는 사양할 줄 아는 그릇….”
하느님께서 숲 속 친구들의 가슴으로 만든 꽃을 구멍 난 그릇에 심었어요. 그 꽃에서 은은한 향기가 피어 나와 모두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어요.
-<하느님이 찾는 그릇>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