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비평사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사이에 깊숙한 단절 의식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은 전후 비평을 타자화함으로써 4·19 세대 비평의 문학사적 의의를 특별히 강조한 1960년대 비평가들의 세대론적 전략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다. 또한 1960년대 비평 지형은 ‘1965년’이라는 특정한 연대를 중심으로 양분되어 전반부는 1950년대의 특징을, 그리고 후반부는 1970년대 비평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었다고 평가함으로써 사실상 1960년대 비평의 자리는 실종되고 말았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의 비평사 연구의 방향은 무엇보다도 1950년대−1960년대−1970년대로 이어지는 연속성을 확보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점에서 1950년대 후반 분단 극복과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민족문학을 한국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제시한 최일수의 비평이 지닌 중요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일수의 비평은 김동리로 대표되는 보수적 민족문학론을 비판하면서 진보적 민족문학론의 방향을 새롭게 제기하였다. 그는 당시 민족문학의 과제를 전통의 올바른 계승과 외래 문학에 대한 비판적인 섭취로 파악하고, 그 토대 위에서 이념 대립과 분단 현실을 초극하는 통일 지향의 새로운 민족문학론을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의 민족문학론의 방향은 한국의 역사적 특수성 위에 놓여 있었고, 서구적 보편성을 민족문학의 현대화 방향으로 삼기보다는 한국과 유사한 정치사회적 경험을 한 동남아 문학의 전통에서 세계문학의 가능성을 찾고자 했다. 이는 민족문학과 세계문학의 관계를 주체성의 관점에서 새롭게 정리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최일수의 비평 의식은 전통론과 민족문학론으로 전개된 1950∼1960년대 우리 비평 지형의 총체적 성격을 선취하는 중요한 문제의식을 보여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평은 우리 비평사에서 소외된 지점에 머물러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특히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뚜렷한 단절 의식에 바탕을 두고 비평 활동을 전개한 당시 비평가들과는 달리, 그의 비평은 1950년대와 1960년대를 연속성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세대 의식을 지녔기 때문에 사실상 어느 쪽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양쪽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고 말았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어렵다. 즉 ‘화전민 의식’으로 구세대 비평과의 철저한 단절을 외쳤던 이어령은 최일수가 “당시 조연현의 대변인 같은 글을 많이 쓰고 있어서 세대 의식이 없는 ‘새끼 우상’이라고 불렀”다고 회고하고 있으며, 4·19 세대의 현실주의 비평가인 염무웅은 최일수의 비평에 대해 “참 답답하고 재미가 없”어 당시 이어령과 유종호에 더욱 신뢰감을 가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1950∼1960년대 최일수 비평의 소외는 담론만으로는 해명될 수 없는 문단의 역학 관계도에는 문단 정치학도 얼마간 개입되어 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앞으로 최일수 비평 연구의 방향은 당시 특정 비평 에콜로 조직화된 문단 상황에 대한 실증적 문제 제기와 아울러 논의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최근에 와서 민족문학론의 계보를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최일수의 비평은 중요한 연구 대상으로 부각되었다. 하지만 그에 대한 연구 대부분이 민족문학론과 전통론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에서 아직까지 그의 비평의 총체적 성격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비평이 현실주의적 성격을 강하게 드러냈다는 점에서 모더니즘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50∼1960년대 우리 비평의 주요 쟁점으로 모더니즘론, 민족문학론, 실존주의문학론, 세대론, 전통론 등을 언급할 때, 최일수의 비평은 이 모든 비평적 쟁점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방향에서 전개되었다. 이런 점에서 모더니즘과 실존주의에 대한 그의 비평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한다면, 1950∼1960년대 비평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비평사적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0자평
우리의 비평사 연구에서 최일수는 거의 묻혀 있다시피 한 비평가다. 민족문학론 논의와 관련해 간헐적으로 언급되기는 했으나, 그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는 최근에 와서야 활발히 전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최일수에 대한 본격적인 평가는 1950∼1960년대 비평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비평사적 의미를 발견할 의미 있는 작업이다.
지은이
최일수는 1924년 6월 6일 전남 목포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용남(龍男), 일수(一秀)는 필명. 목포 북교초등학교(당시 이름은 북교공립심상소학교)를 졸업한 것으로 추정되고, 목포상업학교에 진학했지만 가정 사정으로 졸업을 하지는 못했다. 1930년대 후반부터 목포 용당동에 살던 여성 작가 박화성 씨 댁에 드나들며 독서에 탐닉했다. 이후 수리조합 등에 임시직으로 일하면서 중등학교 졸업 자격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954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를 시작으로 1973년까지 ≪서울신문≫ 문화부 차장, 기획 위원, 신문윤리위원회 심의 위원 등을 역임했다. 195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평론 <현대문학과 민족의식>이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평론 활동을 시작했고, 1957년 현대문학상 신인문학상(평론 부문 1회)을 수상했다. 1959년 9월 고원, 장호, 홍윤숙, 신동엽, 한재수 등과 ‘시극연구회’를 결성했고, 1962년 11월 ‘KBS예술극장’에 라디오드라마 <기다리는 사람>, 1963년 2월 <동시 합격> 등의 대본을 집필했다. 그해 6월 ‘시극연구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시극동인회’를 결성하여 10월에 무용 시 <분신>을, 1966년 2월에는 신동엽의 작품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의 연출을 맡기도 했다. 1972년 그가 각본을 쓴 <수신제>가 ‘KBS무대’에서 드라마로 방영되었고, 1976년 첫 평론집 ≪현실의 문학≫(형설출판사)을 출간했다. 1977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예술전문대학에 출강했다. 1980년 한국문학평론가협회 제2대 회장으로 취임했고, 1981년 저서 ≪독립운동 총서−학예, 언론 투쟁≫을 집필했다. 1983년 두 번째 평론집 ≪민족문학 신론≫(동천사)을 펴냈고, 1993년 세 번째 평론집 ≪분단 헐기와 고루살기의 문학≫(원방각)을 펴냈으며 자유문학상을 받았다. 1995년 2월 담도암 판정을 받고 투병 생활을 하다 4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엮은이
하상일은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1960년대 현실주의 문학비평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오늘의 문예비평≫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으며, 평론집으로 ≪타락한 중심을 향한 반역≫(2002), ≪주변인의 삶과 시≫(2005), ≪전망과 성찰≫(2005), ≪서정의 미래와 비평의 윤리≫(2008), ≪생산과 소통의 시대를 위하여≫(2009), ≪리얼리즘‘들’의 혼란을 넘어서≫(2011)가 있고, 연구서로 ≪1960년대 현실주의 문학비평과 매체의 비평 전략≫(2008), ≪한국문학과 역사의 그늘≫(2009), ≪재일 디아스포라 시문학의 역사적 이해≫(2011)가 있으며, 공저로는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 ≪한국문학 권력의 계보≫, ≪비평, 90년대 문학을 묻다≫, ≪탈식민주의를 넘어서≫, ≪강경애, 시대와 문학≫, ≪2000년대 한국문학의 징후들≫, ≪문학과 문화, 디지털을 만나다≫, ≪김현 신화 다시 읽기≫ 등이 있고, 편저로 ≪고석규 시선≫, 공동 편저로 ≪고석규 문학의 재조명≫, ≪소설 이천 년대≫, ≪일제 말기 문인들의 만주 체험≫ 등이 있다.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 주간, ≪비평과 전망≫ 편집위원을 지냈고, 중국 상해상학원(上海商學院) 초빙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의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고석규비평문학상(2003), 애지문학상(2007), 설송문학상(2014)을 수상했다.
차례
現代文學과 民族意識
우리 文學의 固有性
終着驛의 旗手−우리 詩의 近代와 現代
反省하는 現代詩
모더니즘 白書
分斷의 文學
해설
최일수는
엮은이 하상일은
책속으로
순수 인간과 영원성의 탐구는 인간의 본질을 구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이면에는 사회악을 혐오함으로써 그것을 도리어 영속화하며 또한 인간을 원시적 형태로 증류하면서 개성도 생활도 없는 그저 범용 그대로 유형화하려는 이러한 전후 감정이 회고주의자들에게 파격적으로 영합되었던 역사의 낙후성에서 설명되어야 할 것이다.
―<現代文學과 民族意識>
돌이켜 보건대 ≪現代의 温度≫를 결론적으로 총괄하면 확실히 그 가운데 아직도 관념의 잔흔이 씻기워지지 못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에 비하여 그 의식의 강도나 자아의 객관적 관찰력이나 또는 역사적 경험과 그 ‘시츄웨이션’에 있어서 보다 커다란 차질을 지니고 비약했을 뿐만 아니라 무원칙한 반항으로부터 벗어나 현실에서 새로이 긍정돼야 할 역사적 필연성을 자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또한 그 세계를 창현하기 위한 과감한 대결의 자세를 으젓하게 지니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反省하는 現代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