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로저 킹(Roger King)은 17세기 프랑스 사람들이 치통이 심할 때 취했던 행동 양식으로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 통증이 언젠가 수그러들 것을 간절히 바라면서 참고 견딘다. 둘째, 길거리 약장수의 현란한 말재주에 넘어가 만병통치 물약을 산다. 셋째, 발치사(tooth drawer)를 찾아가 이를 뽑는다. 넷째, 치아를 다루는 외과 의사를 찾아가 치료받는다. 주로 발치였지만 그 외에도 치아를 닦고 상한 부위를 제거하고 흔들리는 치아를 고정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시술에 필요한 기구와 기술을 갖추고 있었다.
18세기 들어 프랑스에서 외과학은 빠르게 발전했고 사회적 지위가 높아진 외과 의사들은 하위 직종을 통제해 위계를 세우려 했다. 파리에서 1699년 칙령으로 치아 전문가(experts for the teeth), 접골사, 탈장 수술사 등은 외과 의사가 주관하는 시험을 통과해야 시술이 허용되었다.
바로 그 시기에 외과학을 기반으로 치아와 구강 영역만 다루는 전혀 새로운 유형의 시술자, ‘Chirurgien dentiste’가 등장했다. 그 대표 주자는 파리의 저명인사 포샤르였다. ‘Chirurgien dentiste’는 그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지금까지도 프랑스에서 치과 의사를 일컫는 공식 명칭이다.
그의 저작 ≪치과 의사 – 치아에 대한 개론≫ 원고를 읽고 승인의 글을 보낸 내과 의사 6명, 외과 의사 12명, 치과 의사 1명은 대부분 왕립과학아카데미, 파리대학 의학부, 생콤(St. Come)의 외과의학교 등에 적을 둔 당시 의학계의 주요 인물들이었다.
이 책은 초판이 발간된 지 5년 뒤 베를린에서 독일어 번역판이 나왔고 프랑스에서는 동일한 제호의 저술이 10여 종 발간되었으며, 영국과 독일에서도 치아와 구강의 질병을 다룬 저서들이 뒤를 이었다.
하지만 포샤르 사후 1786년 3판이 출간된 직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면서 포샤르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망실되고 그의 명성도 잊혀 갔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일각에서 포샤르의 저작을 폄하하는 몇 가지 논란이 이어졌다. 첫 번째 논란은 포샤르가 과연 실제 저자인가 하는 문제 제기였다. 한 사람의 머리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방대한 내용을 볼 때 파리의 치과 의사들이 공동 집필했으며 국왕의 출판 허가를 받고자 명목상 포샤르를 저자로 내세운 것이라는 추정도 있었다.
대부분의 논란은 파리의 외과 의사 드보(De Vaux)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그와 포샤르가 공동 저자라거나, 드보가 대부분을 썼고 포샤르는 기술적 부분 또는 몇 가지 사례만 거들었다는 주장도 있었다. 드보는 포샤르를 가장 아끼고 후원하던 당시 의학계의 저명인사로, 승인서도 제일 먼저 써 준 인물이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 1892년 비오(Viau)가 파리대학 의학부 도서관에서 필사본을 발견하고 공개한 후에야 이런 주장의 진위가 판명되었다. 필사본에는 서로 다른 세 가지 필체가 섞여 있었다. 오자(誤字)나 문법적 오류가 있는 필체는 포샤르의 것, 교정과 편집 작업에 집중된 꼼꼼한 학자풍의 필체와 덧글 메모는 드보의 것, 공식적인 격식을 갖춘 필체는 필경사의 것이었다.
종합적인 분석 결과 드보의 역할은 형식상의 교정과 제안 정도로 한정된 것이고 본문은 모든 면에서 포샤르가 쓴 것으로 판명되었다. 초판에 비해 분량도 크게 늘고 용어나 표현도 정교하고 서술도 명확해 한 사람의 창작물로 인정되는 개정판은 1746년에 나왔는데, 드보는 이미 1729년에 사망했기에 논란이 제기될 여지도 없었다.
두 번째 논란은 포샤르의 직업적 자격이었다. 포샤르는 해군에서의 견습 3년 이외에 외과 의사 자격에 필요한 교육을 받았다거나 시험에 응시했다거나 하는 자격에 대한 기록이 없다. 저명한 의사들로부터 의뢰를 받던 1718년 무렵 스스로 칭했던 ‘Chirurgien dentiste’는 1699년 파리 칙령이 규정하는 ‘expert’와는 무관한 것으로, 공인된 자격은 아니었다.
18세기 초반에 등장한 새로운 유형의 시술자 포샤르는 문자 그대로 ‘치과 의사’였다. 잊혔던 그의 존재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20세기 초 새로운 유형의 시술자로 구강외과 의사(oral surgeon)나 구강의사(stomatologist)가 등장한 무렵이었다. 치성병소감염(dental focal infection), 구강과(stomatology) 운동, 치의학 교육 개혁 등으로 분주하던 1920~1930년대는 전문직으로서 치과 의사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되는 분수령이었다.
이미 18세기에 사회 엘리트층의 승인을 받았고 공공(public)에 유용한 존재가 되고자 했던 ‘치과 의사’ 포샤르를 근대 치의학의 아버지로 추대함으로써, 치과 의사 전문직의 시원(始原)은 200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추앙의 정도에 비해 정작 그의 책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아서 1733년 독일어판 이후의 번역판은 2건에 그쳤다. 영국의 치의학사가(史家)이며 영국치과의사협회장을 역임했던 린지(Lindsay) 여사가 1946년에 출간한 영역본과, 일본의 소아과 의사 다카야마 나오히데(高山直秀)가 1982년부터 ≪日本齒科醫史學會會誌≫에 게재했던 내용을 1984년에 펴낸 일역본이 그것이다. 일본치과의학전문학교의 나카하라 센(中原泉)은 3대에 걸쳐 포샤르와 그의 저작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실천하기도 했다.
대한치과의사학회(大韓齒科醫史學會)의 전신인 대한칫과의학사연구회는 포샤르 200주기(週忌)인 1961년에 포샤르 장학상 제도를 창설하면서 “하루속히 ≪외과 치과의≫가 번역되고 포샤르에 대한 관심이 여러 동지들에게 번져서 한국의 포샤르가 여기저기서 배출되어 침체된 이 나라 치과계에 일대 광명을 가져올 날”을 기다린다고 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나 2011년 6월에 한국어 번역이 시작되었고, 이 책, 한국어판 ≪치과 의사≫가 완성되기까지 꼬박 2년이 걸렸다. 번역 작업에서는 8명의 역자가 린지의 영역본을 기본으로 초역한 후 원저 개정판과 대조하면서 완역하는 과정을 거쳤다.
200자평
18세기 프랑스의 치과 의사 피에르 포샤르가 자신의 치료법, 사례들과 함께 발치나 틀니 같은 당시의 치과 기술에 대해 정리한 책이다. 18세기에 접어들며 외과 의사들은 이발사 출신의 외과 치료자들과 자신을 구별하며 보다 우월한 전문직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외과 의사의 지위가 점차 높아졌고, 별도의 학술원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피에르 포샤르는 바로 이러한 시기에 외과학을 기반으로 하면서 치과를 전문 영역으로 삼았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진료 경험과 지식을 체계적으로 서술한 이 책은 한동안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20세기 초에 새롭게 조명을 받으며 치과 의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원전은 2권으로 나뉘어 있으나 한국어판에서는 한 권으로 합쳤다.
지은이
서양 치의학의 역사에서 피에르 포샤르가 가장 유명하고 중요한 인물이며, 그가 쓴 ≪치과 의사≫역시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1678년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에서 태어난 그는 열다섯 살에 해군 외과 의사 알렉상드르 포틀르레(Alexandre Poteleret)의 견습생이 되었다. 포틀르레는 괴혈병 같은 치아와 구강 관련 질병에 정통한 외과 의사였다. 그로부터 3년 뒤 포샤르는 프랑스 서부 앙제(Anges)에서 구강과 치아 분야를 전문으로 개업하고 낭트, 렌, 투르 등지에서 출장 형식으로 시술했다. 치아를 빼거나 잇몸을 청소하는 일이 발치사(拔齒師)나 떠돌이 약장수의 영역이던 당시에 포샤르는 외과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치과 의사(chirurgien dentiste)’라는 새로운 직업명을 표방했다. 널리 명성을 얻은 그는 마흔 즈음에 파리로 진출했다. 18세기 초 유럽에서는 프랑스 파리를 중심으로 외과학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학문이 신체 영역별로 세분되고 있었다. 파리의 의사들은 구강과 치아 영역의 질병이 심각하거나 잘 낫지 않으면 대개 포샤르에게 의뢰했고, 그 결과는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그는 당대의 해부학 및 외과학 지식과 풍부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치아와 구강의 구조, 질병, 치료법, 특이 사례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자신이 직접 개발한 기구의 도판까지 첨부해서 784쪽에 달하는 원고를 완성했다. 그리고 그 후 5년 동안 파리의 저명한 내과 의사와 외과 의사의 추천과 승인을 받아 1728년 마침내 ≪치과 의사≫ 초판을 발간했다. 이 책의 출간 자체가 자신만의 비법(秘法)을 공개하지 않는 당시의 관행을 무너뜨린 획기적인 것이었다. 주변 동업자들의 비윤리적인 행태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일반 대중에게 도움이 되기를 소망하는 그의 진정성은 책 내용 곳곳에 드러나 있다. 초판 발간 5년 만에 베를린에서 독일어판이 나왔고 1746년에 증보 개정판이 나왔다. 그가 1761년, 84세를 일기로 영면한 후에도 그의 영향을 받아 영국과 독일에서 치의학서 발간이 이어졌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의 여파와 일각에서 그를 폄하하는 분위기에 그의 존재는 잊힌 채 백 년 이상이 흘렀다. 유럽과 미국의 치과 의사들이 전문직으로서의 지위를 확립하려고 애쓰던 20세기 초에 와서야 포샤르는 새로이 재발견되었다. 조르주 비오(Georges Viau)가 파리대학 의학부 도서관에서 포샤르의 필사본을 찾아낸 것이 그 계기였다. 1922년 12월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열린 포샤르 저서 탈고 200주년 기념제에서 포샤르는 치과 의사의 위상을 높이고 프랑스 치의학의 선진성을 웅변하는 역사적 인물로 부각되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일본치과의학전문학교의 나카하라 미노루(中原實)는 귀국 후 해마다 3월 포샤르의 기일에 맞추어 기념 강연회를 열었다. 1923년 뉴욕에서 개최된 포샤르 저서 탈고 200주년 기념 축전에 모인 미국 치과계의 지도자들은 그를 ‘근대 치의학의 아버지’로 추대하고 치과 의사 전문직의 원조로 삼았다. 또 그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취지로 1936년에 창립된 피에르 포샤르 아카데미(PFA)는 80여 나라 치과 의사들의 국제 조직으로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20세기 들어 ≪치과 의사≫는 치의학을 체계적으로 집대성한 최초의 독자적 저술로 부각되었다.
옮긴이
강명신은 예방치과학, 보건학, 철학을 공부했고 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로 의료윤리학을 가르치고 있다.
김백일은 예방치과학, 구강보건학을 공부했고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교수로 예방치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김혜영은 치의학, 보건통계학을 공부했고 고려대학교 보건과학대학 교수로 구강보건학, 보건통계학을 가르치고 있다.
김희진은 치의학, 해부학을 공부했고 연세대학교 치과대학에서 해부학, 구강해부학을 가르치고 있다.
박용덕은 법학, 예방치과학을 공부했고 경희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에서 사회치의학, 의료법을 가르치고 있다.
박호원은 소아치과학을 전공했고 강릉원주대학교 치과대학에서 소아청소년치과학, 치의학사를 가르치고 있다.
이주연은 문학, 예방치과학, 치의사학을 공부했고 연세대학교에서 치의학사를 강의하고 있다.
조영수는 치의학, 보건학, 의료인문학을 공부했고 대한치과의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차례
감수의 글
헌사
서문
1권
1장 치아의 구조, 위치, 관계, 기원, 발생
2장 유치가 나올 때 생기는 질병과 그 치료법, 치아에 대한 새로 나온 책 두 권
3장 치아의 중요성, 치아 보존에 대한 무관심
4장 치아를 보존하는 섭생과 관리
5장 치아를 희게, 잇몸을 튼튼하게 하는 방법과 이를 위한 아편제, 분말제, 양치제
6장 중요한 증상이 있고 사고성이며 치조와 잇몸에 연관된 치아 질병의 원인. 종류, 진단, 예후
7장 치아의 과민
8장 우식의 종류와 원인
9장 우식을 갈아 내기 전에 주의할 점
10장 치아의 마모나 우식으로 통증이 있을 때 치아에 구멍을 뚫는 시술
11장 치아에 붙어 나쁜 영향을 주는 치석
12장 다음 장부터 다룰 시술에 대한 개요
13장 치아에 관련된 구강 각 부분의 위치, 시술 중 환자와 치과 의사의 자세
14장 치아를 뽑기 전, 뽑는 중, 뽑은 후 주의할 점
15장 턱의 강직과 사고로 입을 벌리지 못할 때 식사, 검사, 시술을 위해 강제로 벌리는 법
16장 잇몸의 구조, 범위, 결합, 역할
17장 잇몸의 질병, 가장 흔한 이상 생성물 치료법
18장 잇몸 표면 속에 생긴 치은종 혹은 통통한 이상 생성물 치료법
19장 이상 유출, 염증, 울혈, 배출, 침윤에 의해 생긴 잇몸 궤양 또는 농양과 치료법
20장 잇몸 궤양 치료법
21장 치아의 질병으로 잇몸에 생긴 누공과 치료법
22장 괴혈병이 치아, 잇몸, 턱뼈에 미치는 영향과 치료법
23장 우식에 의해 치아에 가장 가까운 부위와 멀리 떨어진 부위에 생긴 심각한 사고
24장 치아에 대한 열 가지 관찰
25장 치아 재생에 관한 사례 여섯
26장 치아가 늦게 나거나 전혀 나지 않는 경우
27장 다양한 양상으로 치아가 붙은 사례 다섯
28장 치아 모양이 흉하고 고르지 않은 사례 열둘
29장 치아의 탈구와 그 결과
30장 발치한 치아를 원래 치조에 다시 심거나 다른 사람에게 이식한 사례 다섯
31장 발치하려다 상악 우측 비강과 치조와에 박혀 버린 사례 둘
32장 치아 주변에 돌 같은 종양이 생긴 사례 셋
33장 치아에 의한 심한 두통에 관한 사례 넷
34장 구강 괴혈병으로 발생한 질병 사례 둘
35장 치아에 의한 침착, 종양, 농양의 사례 열둘
36장 부러진 치근과 치아의 마찰로 생긴 혀, 뺨, 잇몸의 각화
37장 마지막 어금니의 압박으로 생긴 뺨과 잇몸의 각화성 궤양
38장 특별한 사례 여섯
2권
1장 철로 만든 기구가 치아에 나쁘다고 믿는 사람들의 오류
2장 치석 제거에 알맞은 기구
3장 법랑질이 상하지 않게 치석을 제거하고 치아를 깨끗이 하는 법
4장 줄 사용법, 주의할 점, 용도에 맞는 선택
5장 우식 제거에 적합한 기구
6장 충전용 기구, 사용 요령, 성공적 충전의 조건
7장 치아를 소작하는 방법
8장 뒤틀리고 비뚤어지고 탈구된 치아를 바로잡아 고정하는 방법과 기구
9장 흔들리는 치아를 고정하는 법
10장 발치 기구 – 잇몸칼, 천공기, 집게, 지렛대
11장 기존 펠리컨의 결점과 새로운 펠리컨
12장 다른 기구로 쉽게 뽑을 수 없는 치아를 펠리컨으로 뽑는 법
13장 치아가 빠진 부위를 채워 넣을 인공 치아
14장 인공 치아나 틀니용 황소 다리뼈 표백하는 법
15장 인공 치아나 틀니를 만들 때 사용하는 기구
16장 인공 치아 구조물에 구멍을 뚫어 자연 치아에 연결할 때 고려할 점, 각 부속의 적절한 크기
17장 두 반원과 고리로 하악 치아를 둘러싸는 금이나 은 구조물과 상악 전체 틀니를 용수철로 연결한 예술적인 기계 장치
18장 상악 틀니를 하악 틀니에 고정한 이중 틀니
19장 치아와 인공 틀니를 보기 좋게 하는 에나멜법
20장 입천장에 고정하는 두 날개가 평행한 폐색기
21장 날개가 달린 방식이 다르고 경첩이 없는 폐색기
22장 줄기가 없고 날개 모양이 남다르며 부속이 서로 분리되고 나사 구조가 특이한 폐색기
23장 인공 틀니 줄기가 없고 여러 조각이며 두 날개가 각각 좌우로 도는 폐색기
24장 하악 치아를 감싸고 상악 인공 틀니를 잡아 주는 새로 만든 기계 장치
25장 같이 조립된 상악 전체 틀니와 하악 부분 틀니
26장 새로운 외과학 저서의 한 장(章)에 대한 견해
승인서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치과 의사는 시술 부위를 놓치지 않으려고 몸을 일으키거나 낮추기도 하고 몸이나 머리를 숙이기도 하며 이쪽저쪽으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그와 동시에 기구를 들고 있는 팔, 손목, 손을 올리거나 내리고 입안에 넣었다가 꺼내고 앞으로 갔다가 뒤로 당기고 또 손가락을 동시에 구부리거나 펴고 기구를 따라 미끄러지는 등 온갖 자세와 동작을 동원해 치아, 잇몸 또는 우식 주변의 이물질을 자르고 깎고 긁어내고 빼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