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1917년 10월 볼셰비키는 2월 혁명 이후 임시 정부 치하에 있던 러시아에서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잡았다. 그리고 볼셰비키 정부는 차르 체제를 공화정으로 이행하기 위해 제헌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그런데 선거 결과 볼셰비키는 25%밖에 득표하지 못한 반면 볼셰비키의 정적이었던 사회혁명당은 57%를 득표해 다수당이 되었다. 그리하여 볼셰비키는 갈림길에 섰다. 권력을 다수당에게 물려주고 내려오거나 아니면 민주적인 선거 결과를 부정하는 일이었다.
1918년 1월 5일 처음으로 소집된 제헌의회를 강제로 해산함으로써 볼셰비키는 후자의 길을 선택했고 그리하여 독재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볼셰비키는 자신들의 독재가 마르크스의 교의에 따라 사회주의로 향하는 정당한 길이라고 선언했다. 그러자 카우츠키는 볼셰비키가 선택한 길이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고 그것을 거스르는 길이며 역사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카우츠키는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상태”를 나타내는 것이며 볼셰비키들이 강변하고 있듯이 “통치(정부) 형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사회주의로의 이행은 위에서 말했듯이 생산력이 충분히 발전해 프롤레타리아가 다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고 바로 이런 상태, 즉 프롤레타리아가 다수를 점한 상태가 곧 마르크스가 말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의미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재는 민주주의 사용 방식을 말하는 것이고 민주주의를 폐기한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볼셰비키가 실천적 모델로 내세웠던 파리코뮌과 소비에트 체제 사이의 차이점도 역시 민주주의 문제라고 카우츠키는 주장한다. 파리코뮌에서는 사회주의의 모든 정파가 망라되었지만 소비에트에서는 반대로 모든 사회주의 정파가 배제되었고, 파리코뮌에서는 철저한 민주적 보통선거에 의해서 선출된 사람들에게만 권력이 부여되었던 데 반해 소비에트에서는 차별선거를 통해 권력이 민주주의와 무관한 방식으로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볼셰비키는 마르크스주의를 실현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기했으며 따라서 마르크스주의의 과학적 원리에 따른다면 역사적 심판을 피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었다. 1991년 소비에트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폐기되었고 카우츠키의 예언은 그대로 실현되었다.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존립할 수 없었던 것이다.
200자평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2008년 세계 경제 위기. 하나는 마르크스가 틀리다는 것을, 또 하나는 그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마르크스의 두 얼굴은 모순이 아닌가? 마르크스주의 진영 최고의 이론가인 카를 카우츠키는 모순이 아니라 서로 일치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마르크스의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다.
지은이
카를 카우츠키는 1854년 10월 6일 프라하에서 출생했다. 1874년 입학한 빈대학에서 다윈에 매료되고 유물론을 섭렵하면서 점차 사회주의로 경도되었고 그 결과 1875년 사민당에 입당했다. 1881년 회흐베르크(Karl Höchberg)의 주선으로 런던에 가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를 만났고 이를 통해 평생 “교화될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자”가 되었다.
1883년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대중에게 전파할 목적으로 동료들과 힘을 합쳐 ≪노이에 차이트(Neue Zeit)≫를 창간했고 이후 35년간 이 잡지의 편집장을 맡아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마르크스가 세상을 떠난 후 잡지의 편집부는 런던으로 자리를 옮겼고 카우츠키는 당시 마르크스주의의 실질적인 대부였던 엥겔스에게 개인교습을 받다시피 하면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엥겔스의 신임을 얻어 그가 특별히 넘겨준 마르크스의 유고를 정리해 마르크스의 ≪자본≫ 제4권으로 일컬어지는 ≪잉여가치론≫을 처음으로 편집해 출판하기도 했다.
1896년 베른슈타인이 ≪노이에 차이트≫에 기고한 글 때문에 수정주의 논쟁이 발발하자 마르크스주의를 지켜 내기 위한 이론가로서 역할을 다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둘러싸고 벌어진 당내의 의견 분열이 분당으로까지 치닫는 상황에서 그는 당을 떠나게 되었고 1917년 결국 ≪노이에 차이트≫의 편집장직을 사임했다. 이후 볼셰비키 혁명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마지막 소임을 수행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셰비키 혁명의 성공에 들떠 있던 마르크스주의 진영 내에서 예외적인 입장을 견지한 그는 점차 고립되었고 결국 당을 떠나 빈으로 이주해 마르크스주의와 관련된 저작의 집필에만 몰두했다. 나치의 오스트리아 침공을 피해 1938년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한 다음 6개월을 채 넘기지 못하고 사망했다.
옮긴이
강신준은 1954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독문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에서 노동운동과 관련된 주제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교수가 될 생각을 한 적이 없었으나 우연히 출판사를 운영하던 친구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처음 마르크스의 ≪자본≫을 번역하는 데 관여하게 되었고 그것을 인연으로 동아대학교에서 마르크스를 강의하는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이후 영남지역의 노동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노동운동의 실천과 관련된 일에 종사했고 최근에는 주로 ≪자본≫을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수정주의 연구 I≫(1991), ≪자본의 이해≫(1994), ≪노동의 임금교섭≫(1998), ≪자본론의 세계≫(2001), ≪한국노동운동사 4≫(공저, 2004), ≪그들의 경제, 우리들의 경제학≫(2010),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2012) 등이 있고 번역한 책으로는 마르크스의 ≪자본 1~3≫(1989∼1991, 2008∼2010)을 비롯해 ≪임금론≫(1983), ≪마르크스냐 베버냐≫(1984), ≪자주관리제도≫(1984),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민당의 과제≫(1999), ≪프롤레타리아 독재≫(2006),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2011) 등이 있다.
차례
1. 문제 제기
2. 민주주의와 정치권력의 획득
3.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의 성숙
4. 민주주의의 영향
5. 독재
6. 제헌의회와 소비에트
7. 소비에트 공화국
8. 실물교수
9. 독재의 유산
10. 새로운 이론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표현은 어떤 개인의 독재가 아니라 한 계급의 독재를 표현한 것으로 이것은 마르크스가 여기서 말하는 독재가 표현 그대로의 독재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그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통치 형태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가 정치권력을 잡았을 때 어디서나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56쪽
만일 우리가 부르주아 혁명의 예를 따라서 혁명이란 것이 내전이나 독재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자 한다면 마찬가지 맥락에서 혁명이란 것이 필연적으로 크롬웰이나 나폴레옹의 지배로 끝난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가 나라 안에서 다수를 이루고 민주적으로 조직되어 있을 경우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결코 이런 결과를 맞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곳에서만 사회주의적 생산의 조건은 주어질 것이다.
우리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다름 아닌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 선 프롤레타리아의 지배라고 이해할 수 있다.
-7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