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그들이 없었다면 한국 광고도 있을 수 없다.
광고계 원로 6인이 들려주는 광고회사, 그 이면의 역사
한국 광고계의 산증인을 인터뷰해 광고회사의 창립과 형성 과정을 재구성한다. 신인섭, 김석년, 이병인, 남상조, 윤석태, 이해걸. 6명의 원로들이 풀어 놓는 이야기는 한국 광고 역사의 이면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1967년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의 출범부터 만보사, 제일기획, 연합광고, 오리콤의 창립까지 광고회사의 변천을 깊고, 촘촘하게 보여 준다.
[책의 특징]
한국 광고회사의 창립과 형성 과정을 훤히 꿰뚫고 있는 광고계 원로 6인을 인터뷰했다. 신인섭, 김석년, 이병인, 남상조, 윤석태, 이해걸. 이들은 1967년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의 출범부터 만보사, 제일기획, 연합광고, 오리콤의 창립에까지 깊숙이 관여한 한국 광고계의 산증인이다. 저자들은 그들의 구술을 채록하고 분석하여 광고회사, 그 이면의 역사로 독자를 초대한다.
그동안 광고사 연구는 주로 객관적 사실의 확인과 기술에 치중함으로써 당대의 미시적이고 생생한 경험을 다루지 못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실증주의적 광고사 연구에서는 초기 광고회사의 매출액이나 광고주 구성 같은 객관적 사실 위주로 기술하고 있는데, 그렇게 되면 그 시대를 살았던 광고인들이 광고 일을 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세세하게 알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초창기 광고회사의 형성 과정을 심층적으로 탐색하는 이 책은 광고인들의 증언과 숨겨진 일화, 미시적 자료들을 제공함으로써 한국 광고사를 보다 풍성하게 보완한다.
200자평
한국 광고계의 산증인을 인터뷰해 광고회사의 창립과 형성 과정을 재구성한다. 신인섭, 김석년, 이병인, 남상조, 윤석태, 이해걸. 6명의 원로들이 풀어 놓는 이야기는 한국 광고 역사의 이면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1967년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의 출범부터 만보사, 제일기획, 연합광고, 오리콤의 창립까지 광고회사의 변천을 깊고, 촘촘하게 보여 준다.
지은이
김병희
서원대학교 광고홍보학과 교수다.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한양대학교 광고홍보학과에서 광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강단에 서기 전, 광고회사 선연에서 카피라이터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한 시절을 보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광고학과 교환교수, 한국광고학회와 한국PR학회의 총무이사를 역임했으며, 한국언론학회, 미국광고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광고비평방법』, 『광고카피창작론』, 『한국 근대 광고 걸작선 100: 1876∼1945』 등 10여 권의 저서를 펴냈다. 또한 “Advertising Creativity in Korea: Scale Development and Validation”, “한국 광고회사의 형성 과정에 관한 구술사 연구”, “광고 크리에이티브에 관한 연구경향과 연구과제” 외 여러 편의 논문을 주요 학술지에 발표했다. 한국갤럽과 한국조사연구학회가 공동으로 수여하는 2011 한국갤럽 학술논문상 대상을 받았다. 주요 관심 분야는 광고 창의성 측정을 비롯한 광고사 관련 주제다.
윤태일
한림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광고홍보전공 교수다.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졸업했다. 광고대행사 한컴에서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SK텔레콤 홍보실로 옮겨 광고홍보 관리 업무를 수행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테네시대학교와 미주리대학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매스커뮤니케이션의 이해』, 『방송광고 장르론』 등을 공동 집필했고, 『광고와 예술』, 『플랫랜드』를 우리말로 옮겼다. “The border-crossing of habitus: media consumption, motives, and reading strategies among Asian immigrant women in South Korea”, “신명커뮤니케이션 서설(序說)” 외 여러 편의 논문을 썼다. 한국문화의 원형질로 여겨지는 신명을 커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천착하여 우리 나름의 ‘신명 커뮤니케이션 이론’을 정립하려는 것이 그의 주요 관심사다.
차례
머리말 | 기억의 재구성
01 외국의 광고회사 형성 과정
서구의 광고회사
일본의 광고회사
02 한국의 광고회사 형성 과정
광고 환경의 변화
주요 광고주 현황
초창기의 광고회사들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의 출범
만보사의 창립
제일기획의 창립
연합광고의 창립
오리콤의 창립
광고회사 트로이카 체제의 형성
코카콜라 광고를 비롯한 크리에이티브의 비약
광고 과학화를 위한 시도
03 구술사 연구방법과 구술자
커뮤니케이션 연구방법으로서의 구술사
구술사의 연구 진행 절차
구술자
신인섭
김석년
이병인
남상조
윤석태
이해걸
04 광고회사 형성에 관한 이야기
광고회사 쌍두마차 체제의 성립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의 출범
만보사의 창립
현대기획의 명멸
중소 광고회사들
광고회사 트로이카 체제의 성립
만보사 합병에서 오리콤까지
제일기획의 창립
연합광고의 창립
중소 광고회사의 부침
매체사에서 광고회사를 만든 배경
05 광고 전문성 향상에 관한 이야기
광고대행 수수료의 인정
광고회사와 광고주의 관계
광고제작 환경
광고 시스템의 선진화
06 한국 광고의 국제화에 관한 이야기
일본의 영향
미국과 유럽의 영향
국제회의 참가 경험
07 광고 크리에이티브에 관한 이야기
코카콜라의 광고기획
코카콜라의 광고 크리에이티브
그 밖의 광고제작과 캠페인
크리에이티브 향상을 위한 시도
08 광고인과 광고계 풍경에 관한 이야기
구술자의 광고계 투신 동기
기억나는 광고인과 광고계 풍경들
광고와 광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
09 이야기의 의의와 더 듣고 싶은 이야기들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간추리며
이야기에서 주목해야 할 포인트
한국 광고회사 형성기의 특성과 의의
참고문헌
책속으로
1970년에는 TV-CF 한 편의 제작비가 보통 15만 원 했어요. 그걸 제가 50만 원으로 올렸죠. 그래서 오해도 많이 받았지. 신인섭이가 15만 원을 떼먹었다고요. 나는 술은 얻어먹었지만 돈은 한 푼도 받질 않았어요. 그래서 요새도 이렇게 골골골하잖아요, 하하하. 당시 50만 원이면 커요. 택시 기본요금이 60원 하던 때였으니까요.
_ 신인섭(별표 백등유 광고 제작 당시를 회상하며)
오리엔탈 커뮤니케이션스라고 알아요? 이게 오리콤이죠. 처음에는 오리콤이라는 이름을 모르고, 어떤 직원이 나한테 “아, 여기 싱크대 회사죠? 오리표 싱크인 줄 알았어요.” 그러길래, 뭐 그냥 그렇다고 그랬죠. 그런데 나중엔 오리콤이란 이름이 유행이 돼서 ‘콤’이라는 단어를 쓴 광고회사들이 많이 생겼죠.
_ 김석년(오리콤이라는 이름의 배경에 대해서)
코카콜라 캘린더를 만드는데, 일본 샘플을 몇 개 가져와 제 방 벽과 천장에 다 붙였어요. 그걸로 구상해서 촬영하고 캘린더도 만들고 광고도 했어요. 물론 일본 원판을 가져다가 쓸 수도 있었죠. 하지만 제 생각은, 한국에서 어려워도 여기서 시작해야 우리가 발전한다는 거였어요.
_ 이병인(만보사에서 코카콜라 광고를 대행하던 시절을 회상하며)
그때 우리는 “제일기획에 광고를 의뢰해 주세요”라고 하지 않고, “광고회사라는 곳은 이런 일을 하고, 광고회사와 광고주와의 관계는 이러이러한 관계다”라고 설명했어요. 광고주가 “당신들은 어차피 신문사에서도 수수료 받고 방송국에서 더 받을 것 아니냐? 그럼 우리도 손해 보는 것 아니냐?” 이렇게 반박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라고 설명하기가 참 힘들었어요.
_ 남상조(광고대행 수수료 제도의 도입 당시를 회상하며)
코카콜라 광고는 처음부터 컬러로 찍었어요. 당시 컬러합성이라는 것은 불가능했는데, 코카콜라 광고주는 그림은 잘못돼도 로고의 빨간색이 핑크색으로 나오면 안 됐어요. 무조건 다시 해야 했죠. 원남동의 아그파 필름에 가서 시도했는데 찍을 땐 분명히 빨간색이었는데, 프린트하면 핑크색이나 자줏빛이 나와 환장할 일이었죠.
_ 윤석태(만보사 시절 코카콜라 광고 제작 당시를 회상하며)
1973년에 동양방송(TBC)과 삼성그룹이 제일기획을 만들었죠. 이걸 보고 MBC 중역들이 위기감을 느껴 연합광고를 만들었어요. 처음에는 광고물량에서 우리가 이겼죠. 오리콤, 제일기획도 우리 다음이었고. 그러다가 1980년대부터 광고주가 자체 광고회사를 만들면서 회사가 어려워진 거죠.
_ 이해걸(연합광고의 창립 당시를 회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