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호는 허응(虛應) 또는 나암(懶庵)이고, 보우는 법명이다. 가계 등은 미상이며, 15세에 금강산 마하연암(摩訶衍庵)으로 출가하여 승려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금강산 일대의 장안사(長安寺)·표훈사(表訓寺) 등지에서 수련을 쌓고 학문을 닦았다. 그 뒤 탁월한 수행력과 불교·유교에 관한 뛰어난 지식을 바탕으로 유명한 유학자들과도 깊이 사귀었다. 그 중에서도 재상이었던 정만종(鄭萬鍾)과는 특별한 사귐이 있었다. 정만종이 보우의 인품과 그 도량이 큼을 조정과 문정대비(文定大妃)에게 알리게 됨에 따라, 뒷날 문정대비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1548년(명종 3) 12월, 스님은 문정대비로부터 봉은사(奉恩寺)의 주지로 임명받게 되었다.
이후 스님은 ≪경국대전≫의 <금유생상사지법(禁儒生上寺之法)>을 적용하여 사찰을 보호하는 한편, 1551년 5월 선종과 교종을 다시 복구시키는 업적을 이루었다. 또한 1552년 4월, 승려 과거시험을 실시하게 함으로써 1504년(연산군 10)에 폐지되었던 승과제도(僧科制度)를 부활시켰다. 선교 양종과 승과제도가 부활됨으로써 승려들의 자질이 향상되었음은 물론 휴정(休靜)·유정(惟政) 등과 같은 고승들이 발탁되기도 하였다.
그러자 유생들은 선교 양종과 도첩제·승과제의 폐지를 요구하고, 보우의 처벌을 주장하는 상소를 계속 올렸다. 그리하여 승정원·홍문관·예문관·사헌부 등에서 매일 번갈아 상소를 하였고, 좌의정이 백관을 인솔하여 계(啓)를 올리는가 하면 성균관 학생들은 모두 종묘에 고(告)하고 성균관을 비우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문정대비의 비호 아래 각종 제도적 장치가 완비됨으로써 불교계는 완연히 회복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보우 스님은 판사직과 봉은사 주지직을 사양하고, 춘천의 청평사(淸平寺)로 돌아가 자기 수양에 침잠하였다. 이후 몇 차례 조정의 부름을 받아 교단의 일을 맡았으나, 결국 문정대비의 죽음 이후 서슬 퍼런 유학자들의 칼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이(李珥)가 <논요승보우소(論妖僧普雨疏)>를 올린 것을 비롯하여 전국의 유생들은 물론 정승들까지 보우를 죽일 것을 건의하였다. 이후 보우 스님은 1565년 6월 12일에서 7월 28일 사이에 붙잡혀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제주목사 변협(邊協)에 의하여 죽음을 당하였다.
보우는 억불정책 속에서 불교를 중흥시킨 순교승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그는 선교일체론(禪敎一體論)을 주창하여 선과 교를 다른 것으로 보고 있던 당시의 불교관을 바로잡았고, 일정설(一正說)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였다.
이 책은 보우 스님의 시문집인 ≪허응당집≫을 편역한 것이다. 스님의 저술로 여러 책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허응당집≫ 상·하 2권에는 주로 시를 수록하였고, ≪나암잡저≫에는 문을 수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나암잡저≫를 한데 묶어 총 3권본 ≪허응당집≫이라 하기도 한다. ≪허응당집≫은 1959년 일본 천리대학아야사토연구소(天理大學あやさと硏究所)에서 간행한 영인본이 현재 널리 유통되고 있다. 권두에는 제자 태균(太均)이 쓴 편차(編次)가 있고, 하권 끝에는 1573년(선조 6) 이환(離幻)이 쓴 발문이 있다. 상권에는 오언과 칠언의 절구와 칠언율시·게송 등이 247수, 하권에는 376수가 수록되어 있다. 600여 수가 넘는 양으로 조선조 시승의 작품 수로는 비교적 많은 부류에 속한다. 이 책에서는 이 중 보우 스님의 선시가 갖는 취향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들로 97편을 선별하였다.
조선조 승려 중 보우 스님만큼 불명예를 안고 산 분도 드물 것이다. 요승이니 괴승이니, 문정왕후와 부적절한 관계이니 하는 수많은 모함들은 역설적으로 보우 스님의 법력을 반증하는 예라 하겠다. ≪허응당집≫을 보면, 스님이 시승으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가졌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200자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종파가 사라짐으로써 완전히 종단이 해체되는 과정을 겪었음에도 불교가 아직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이유를 조선 전기의 선승 허응보우(虛應普雨)에게서 찾을 수 있다.
이 책은 보우 스님의 시문집인 <허응당집>을 편역한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 중 보우 스님의 선시가 갖는 취향을 가장 잘 드러낸 작품들로 97편을 선별하였다. 당시 불교계를 양 어깨에 짊어진 채 무수한 화살을 피해가던 속에서도 섬세한 감정의 결을 시문 속에 담아냈다. 스님은 논리적인 교리 문답이나 유가 선비들과의 논쟁은 물론 시를 통해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거나 제자들을 위한 권계에 능란했던 탁월한 시승이었다.
지은이
보우는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호는 허응(虛應) 또는 나암(懶庵)이다. 보우는 법명이다. 15세에 금강산 마하연암(摩訶衍庵)으로 출가하여 장안사(長安寺)와 표훈사(表訓寺) 등지에서 수련을 쌓았다. 1548년 문정대비의 명령으로 봉은사(奉恩寺) 주지가 되었다. 1550년 선교양종(禪敎兩宗)을 부활했고, 도승시(度僧試)를 실시하여 도첩제도(度牒制度)를 부활시켰다. 승과(僧科)를 다시 설치하고, 1555년 춘천의 청평사(淸平寺) 주지로 있다가 다시 봉은사 주지가 되었다. 1565년 문정대비가 죽자 유생들의 상소에 승직을 박탈당하고 귀양 갔다가 제주목사 변협(邊協)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 저서에 ≪허응당집≫과 ≪나암잡저(懶庵雜著)≫ 등이 있다.
옮긴이
배규범은 1998년 문학박사 학위(<임란기 불가문학 연구>)를 받은 이래, 한국학 및 불가 한문학 연구에 전력하고 있다. 한자와 불교를 공통 범주로 한 ‘동아시아 문학론’ 수립을 학문적 목표로 삼아, 그간 한국학대학원 부설 청계서당(淸溪書堂) 및 국사편찬위원회 초서 과정을 수료했으며, 수당(守堂) 조기대(趙基大) 선생께 사사했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에서 지난 10여 년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및 한자 강의를 진행했으며, (사)한국한자한문능력개발원의 한자능력검정시험 출제 및 검토 위원으로 재임 중이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학술진흥재단의 고전 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0년부터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고·순종≫ 교열 및 교감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경희대(학진연구교수), 동국대(학진연구교수), 북경 대외경제무역대학(KF객원교수)을 거쳐 현재 중국 북경공업대학 한국어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해외에서 우리의 말과 문화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연구와 전파라는 새로운 뜻을 세우고 활동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불가 잡체시 연구≫, ≪불가 시문학론≫, ≪조선조 불가문학 연구≫, ≪사명당≫, ≪한자로 배우는 한국어≫, ≪요모조모 한국 읽기≫, ≪외국인을 위한 한국 고전문학사≫, ≪속담으로 배우는 한국 문화 300≫ 등이 있고, 역저로는 ≪역주 선가귀감≫, ≪한글세대를 위한 명심보감≫, ≪사명당집≫, ≪허정집≫, ≪허응당집≫, ≪청허당집≫, ≪무의자 시집≫, ≪역주 창랑시화≫, ≪정관집≫, ≪초의시고≫ 등이 있다.
차례
처음 금강산에 들어와 이암굴이 텅 비어 거처하는 스님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初入金剛 聞利巖曠無居僧
송라암 스님에게 드림 贈松蘿庵僧
다시 마하연에 노닐며 重遊摩訶衍
불지암에 묵으면서 宿佛地庵
원적암 한 스님에게 드림 圓寂庵贈閑上人
내원암에 묵으면서 묵 장로에게 드림 宿內院庵贈默長老
유점사 楡岾寺
꿈에서 깨어 스스로 행복함을 참지 못하고 유쾌하게 율시 한 수를 지어 벗에게 보여주다 夢破餘不勝自幸 快咏一律 以示 心知
회ㆍ임 두 제자에게 보이다 示會林二小
산거잡영 山居雜咏
참선하려는 마음과 시 지으려는 마음이 앞다투어 끊이지 않다 禪心詩思 爭雄不已
유교와 불교의 권도와 상도는 하나다 儒釋權常一致
제자를 훈계하며 警示小師
졸다가 종소리를 듣고서 睡餘聞鍾即事
대장동에 들어가 흥취를 쓰다 入大藏洞書興
무술년 가을 9월 16일, 삼오의 덕을 아울러 지니고 계신 임금께서 여러 지방의 절들을 허물고 계신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戊戌之秋九月旣望 驚聞聖上以 兼三五之德 燒毁諸方佛寺…
영을 쌓은 곳에 이르러 여러 벗들에게 보이다 到營築處示諸
맑게 갠 가을밤 창가에 앉아 읊다 霽夜秋窓坐咏
운 선인이 게송을 구하기에 雲禪人求頌
개울에서 장난삼아 읊다 臨溪戱咏
스스로 슬퍼하며 自悲
마을에 백발 노파가 있는데 내 제자가 죽었다는 소리를 듣고… 村有白髮老婆 聞余小資之化…
숭 스님의 시운을 빌려 次嵩師韻
감 선인에게 선종과 교종의 깊고 얕은 관계를 답하며 시를 부치다 寄鑑禪人竝答禪敎深淺之問
곡기를 끊은 노승에게 寄辟穀老僧
오도산에 올라서 登悟道山
묘향산으로 가는 신법사를 전송하면서 送信法師之妙香山辭
세상을 탄식하는 시를 지어 벗에게 보이다 述嘆世詩示心知
지능참봉의 시운을 따서 次智陵參奉韻
관직을 사퇴하고서 지내는 늙은이가 시를 청하기에 짓다 又請作乞骸逸老詩依請以賦
어떤 벗이 곧은 말로 나에게 “내가 듣기에 스님의 문하에 있는 누구누구는… 有朋以直言諍余曰 吾聞居上人之門者某某者…
명ㆍ웅 두 벗에게 明雄二友
창을 열고 봄을 감상하다 開窓賞春
삘기 집을 다 짓고서 述落成茅屋詩
가을 산에서 달을 보며 秋山對月
내가 곡기를 끊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진사가 식량을 보내주매 느낀 바 있어서 韓上舍聞余辟穀惠料有感
산중에서 山中即事
비 개자 기쁜 마음에 喜晴
어떤 손님이 배움을 구해 산을 찾아왔기에 有客求學到山
보 스님과 헤어지면서 別寶上人
학계 송월정에서 題鶴溪松月亭
우연히 읊다 偶吟
가을을 노래하다 賦秋
낙민정의 시운을 빌려서 次樂民亭韻
조실전에 누워 자며 宿祖殿
금강산에 가려는 어떤 스님에게 시를 지어 보이다 有僧欲向金剛 以詩示之
동지 정헌우에게 올리다 奉似鄭同知軒右
무신년 가을 9월, 나는 영북에서 호남으로 거처를 옮기다가 길에서 풍병이 들었다… 歲在戊申秋九月 予自嶺北 移向湖南 路纒風恙…
망천봉에 올라 上望天峯
저자도를 찾아서 訪楮子島
섬 안에서 느낀 바 있어 島中即事
온 조정이 두려워 떨며 불교를 배척하는 상소를 올린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고 2수의 게송을 짓다 驚聞滿朝震驚上疏排佛 因述二偈
사은숙배 후에 절로 돌아와 게송을 짓다 恩肅拜後還寺書偈
용문사에 이르러 쟁반의 부드러운 채소를 보고는 생각이 들어 到龍門見盤中軟蔬述懷
다시 도솔암을 노닐다 重遊兜率菴
도솔암에서 장안사에 이르러 대중에게 보여주다 自兜率到長安示衆
묵언수행을 하는 스님에게 보여주다 示默言僧
어떤 나그네가 “나는 아버지에게서 버림받았기에 스님이 되고자 한다”라고 고백하기에 시를 지어 만류하다 有客自言 吾見棄於父欲爲僧 以詩止之
큰 여울 가에 배를 대고 泊大灘上
예전에 살던 곳을 생각하며 懷舊隱
연정에서 손님을 보내면서 蓮亭送客
어떤 스님이 계율을 범하여 청정한 대중들을 어지럽혔기에 게송 한 수를 쓰다 有僧犯律 以溷淸衆 因書一偈
목욕하다가 머리카락이 모두 세었다는 말을 듣고 因浴聞頭髮盡華
병으로 누웠는데 마군들이 나를 참소한다는 말을 듣고는 억지로 병든 몸으로 붓을 들다 病枕聞魔訴 余强揮病筆
어느 날 내가 병들어 쇠하였다고 사임하고서…一日貧道 以衰病辭…
어느 날 제자들이 내 머리카락이 모두 하얀 것을 보고 “저희들이 양생하는 방문을 보았더니,… 一日小師輩 見我頭髮盡白曰 吾見養生方…
마승이 옥에 갇혔다가 죽자 외부의 의론이 분분하다는 말을 듣고 게송 2수를 짓다(2수) 聞魔僧繫獄而死 外議騰紛即述 二偈
흥에 겨워 遣興
강물엔 가을 그림자 잠겼거늘 기러기는 추운 계절이 되었음을 알려준다.… 江涵秋影鴈報霜寒…
안반 여울목에서 묵으며 宿案槃灘頭
무위자의 시운을 따서 次無爲子韻
어떤 손님이 와서 산중의 즐거움을 묻기에 게송을 지어 보여주다 有客來問山中之樂 以偈示之
세상 사람들이 내가 병이 들어 선동에 물러나 다시 암자를 짓고 여생을 보양하며 지낸다는 소식을 듣고서… 聞世之人以余病退仙洞 更築臺壇 晦養餘生…
청평팔영 淸平八咏
제자들에게 示小師輩幷序
광석산에서 題廣石
산다화를 보면서 見山茶花
지헌만덕 스님이 청평사의 조실로 나를 찾아와 존심양성의 요체와 대중과 만나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묻기에 게송을 지어 보여주다 智軒萬德 訪余於淸平之祖室 求存心養性之要 及臨衆處事之方 以偈示之
영동을 향하던 중 수인을 지나며 向嶺東過水仁途中
남교관 동헌에 붙은 시의 운을 빌려 次嵐郊館東軒韻
낙산잡영 洛山雜咏
학관 스님이 찾아와 준 것이 기뻐 회포를 써서 그에게 주다 喜學觀禪子來訪書懷贈別
민 진사의 시운을 따서 次閔上舍來韻
선 이야기 끝에 게송 한 수를 써서 제자들에게 보이다 談禪餘書一偈 示小師等
의옥 스님에게 보이다 示義玉禪人
현화사 스님에게 示玄化士
취한 신선에게 답하다 酬醉仙
즉흥시即事
응중덕이 지은 시축에 삼가 화답하다 奉和應中德軸韻
영지에서 이학만을 생각하며 映池懷李學卍
발가벗고서 곡기 끊은 스님에게 보이다 示裸衣絶穀僧
산중의 선객들에게 보이다 示山中禪客
화엄의 오묘한 바탕을 칭송하다 華嚴不思議妙體頌
화엄의 오묘한 작용을 칭송하다 華嚴不思議妙用頌
옛날 은거하던 곳을 생각하며 懷舊隱
한가한 때 게송 1수를 지어 제자들에게 보여 열심히 공부하게 하다 閑中書一伽陁示小師等 做工勉力
임종게 臨終偈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도(道)라고 이름 붙인 산에 가 보고 싶어서
지팡이 짚고 온종일 고생고생 기어올랐지.
가다가 갑자기 산의 참모습을 보았거늘
구름은 절로 높이 날고 개울도 절로 흐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