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 2017년 세종우수교양도서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의 첫 소설 작품인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은 일본 근세 소설사에서 우키요조시(浮世草子)라는 장르의 효시로 크게 평가받고 있는 고전 작품이지만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출간된다.
우키요조시는 일본 근세 소설의 다양한 장르 중 하나로서 이 작품이 나올 당시에는 실용적인 내용이나 권선징악적 문학관이 담긴 가나조시(假名草子)라는 장르의 작품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호색일대남≫이 창작됨으로써 가나조시와는 일선을 긋는 우키요조시라는 새로운 소설 장르가 시작되었다. 사이카쿠는 자신의 작품을 당대에 유행했던 가나조시의 일환으로서 창작했지만 ≪호색일대남≫이 담고 있는 내용의 질이 그 이전의 작품들과 확연히 다르다는 점에서 후대인들이 이를 우키요조시(浮世草子)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후 근세 소설의 주요 장르의 명칭으로 정착한 것이다. 즉, 가나조시의 문학적 성격과 크게 이질적인, 주로 오락성에 주안을 두고 당세의 풍속이나 인정(人情)에 관한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자 했던 풍속 소설들을 우키요조시라고 부른다. ‘우키요’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 현실의 모든 것이 살기 힘들고 무상하다는 불교적 생활 감정과 더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의 한편에는 삶의 순간순간을 즐기는 향락이 존재하고 그것이 또한 현실이기도 하다는 정도의 다소 상충적인 의미를 가진다. 불교적 생사관이 강조되었던 중세적 ‘우키요(憂世)’가 근세기에 이르러 현실은 ‘憂世’이면서 ‘浮世’인 중층적 이미지로 다가오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이카쿠의 첫 우키요조시인 ≪호색일대남≫의 작품명을 의미 그대로 풀어 보면 ‘일생을 오로지 호색만으로 일관한 남자’라는 의미가 될 것이다. 세계 문학에서 호색 문학이라고 하면 노골적인 성 묘사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문학을 가리키는 것이 일반적인데, ≪호색일대남≫의 내용은 호색 문학과는 거리가 멀다. ≪호색일대남≫의 주인공 요노스케(世之介)는 수천억 재산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가업을 충실히 이어 가면서 더욱 부를 축적해 가는 것이 의무이고 도리였지만 이를 철저히 외면한 탈세속적인 존재였다. 작품명에서도 드러나듯이 주인공은 일생을 유곽(遊廓) 등에서 호색 생활로 일관하면서 대부분의 재산을 탕진함으로써 국가에는 상인 본분을 망각한 불충(不忠)을, 부모에게는 가업을 이어 가지 않은 불효를 행한 셈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 사이카쿠는 당시의 봉건 체제에 반역적일 수도 있는 주인공 요노스케의 호색 이야기를 통해 무엇을 그리려고 했던 것일까? 이 작품이 노골적인 성 묘사를 주안으로 하는 호색 문학이 아니라는 점에서 작가의 창작 의도는 흥미롭기만 하다.
무엇보다 이 작품에는 일본 고전 소설의 최고봉으로 일컬어지는 ≪겐지 모노가타리(源氏物語)≫에 대한 패러디 의도가 담겨 있다. ≪겐지 모노가타리≫가 창작된 시기는 11세기 초 헤이안(平安) 왕조의 귀족 시대다. 이 작품은 잘 알려진 대로 최상층 귀족 신분의 히카루 겐지(光源氏)와 수많은 헤이안 귀족 여성들의 만남을 둘러싼 영화로운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사이카쿠는 이와 견줄 만한 근세 상인의 히어로로서 주인공 요노스케를 설정하고 그의 호색 생활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다. ≪겐지 모노가타리≫에서 묘사되는 남녀 귀족들의 사랑은 성애의 부분이 사상(捨象)된 형태였던 데 비해 ≪호색일대남≫은 인간의 원천적 본능인 애욕을 모티프로 삼고 있었음은 주목할 만하다. 이는 귀족이나 무사와 같은 지배 계급의 사랑 이야기의 위선을 야유하는 시각이 내재된 패러디라고 볼 수 있다.
주인공 요노스케는 상속받은 엄청난 재산의 힘으로 근세 도시 경제 체제에서 최고 수준의 환락적 소비와 향락이 허용되는 유곽을 드나들며 수많은 여성 또는 미소년을 편력하는데, 이는 당시 엄청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의 자기 과시의 한 행태였다. 상인은 공고한 계급적 질서 안에서 자리매김되었기에 부의 축적, 즉 금력이 권력이나 사회적 공공성의 영역 등으로 이어지는 발상은 그들에게 존재하지 않았다. 상인에게 세속에서의 부의 축적은 오직 부 그 자체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없었다. 사이카쿠는 주인공 요노스케를 근세 상인들이 선망하는 부호의 아들로서 설정해 주로 유곽을 무대로 상인의 굴절된 존재감을 과시하는 존재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200자평
일본 근대 풍속 소설의 효시인 ≪호색일대남≫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주인공 요노스케는 7세에 이성에 눈을 떠 60세가 되기까지 사랑을 나누었던 여자가 3742명, 남색 상대가 725명이었다. 그의 엽색담을 통해 에도 시대의 화려한 성 문화 뒤에 가려진 상인들의 세계와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지은이
이하라 사이카쿠(井原西鶴, 1642∼1693)는 일본 근세 소설 작가 중 문학사적으로 가장 비중 있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문인이다. 본명은 히라야마 도고(平山藤五)이고, 호는 작품 활동 초기에는 가쿠에이(鶴永)였으나, 후에 사이카쿠(西鶴)와 사이호(西鵬) 등의 호도 같이 사용했다. 오사카(大阪)의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15세경부터 하이카이를 익혀 21세경에는 이미 하이카이의 덴샤(点者), 즉 평자(評者)가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의 하이카이 작풍은 처음에는 교토를 중심으로 한 마쓰나가 데이토쿠(松永貞德) 하이단(俳壇) 계열의 흐름에 속해 있었지만, 이후 단린 하이카이(談林俳諧)의 중심이었던 니시야마 소인(西山宗因)과 가까워져 1670년대에는 단린풍(談林風)으로 변모해 갔다. 특히 자파의 신풍을 고취하는 ≪이쿠타마 1만 구(生玉萬句)≫(1673) 창작 이후, 그 화려한 활동에 의해 단린 하이카이(談林俳諧)의 대표적 존재로 주목받았다.
그러던 중, 하이카이 창작 작업 와중에 집필한 그의 첫 소설 작품인 ≪호색일대남≫(1682)이 크게 호평을 받자, 그는 시인을 자처하면서도 동시에 소설 작가로서 41세가 넘은 나이에 많은 산문 작품을 만들어 내게 된다.
≪호색일대남≫은 주인공 요노스케(世之介)의 일대기의 형식을 취하면서 그의 호색 편력을 중심으로 17세기 일본의 세속적 현실인 부세(浮世)의 모습과 당대인들의 심적 세계를 사실적으로 그린 작품으로, 이 작품에서 나타나고 있는 사이카쿠의 청신한 발상과 문체는 그 이전의 가나조시를 뛰어넘어 현대의 풍속 소설의 성격을 지니는 우키요조시의 새로운 영역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 후 ≪제염대감(諸艶大鑑)≫, ≪호색오인녀(好色五人女)≫, ≪호색일대녀(好色一代女)≫ 등과 같은 이른바 일련의 호색물(好色物) 계통 소설을 발표해 상인들의 향락 생활을 둘러싼 여러 모습들, 여성의 성이나 풍속에 관련한 다양한 모습 등을 뛰어난 수법으로 묘파함으로써 인간의 성(性) 문제를 본격적으로 소설의 주제로 설정할 수 있었다. 이어서 ≪사이카쿠 제국 이야기(西鶴諸国話)≫, ≪후토코로스즈리(懷硯)≫ 등의 작품에서는 여러 지방의 기담과 진기한 사건 등을 통해 당대 민중의 다양한 관심과 흥미에 부응하는 작품을 만들어 냈다. 또한 ≪본조 20불효(本朝二十不孝)≫라는 작품에서는 20개의 불효담을 통해 인간에게 효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본원적인 문제를 허구의 세계를 통해 날카롭게 제시하고 있다. ≪남색대감(男色大鑑)≫에서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당대인들의 남색 행위의 이면의 세계가 사이카쿠 특유의 문체를 통해 그려지고 있다. 무가(武家)의 복수나 의리의 문제를 주제로 다루는 ≪무도 전래기(武道伝来記)≫와 ≪무가 의리 모노가타리(武家義理物語)≫에서는 상인 출신의 작가로서 당대의 현실 안에서 무가를 바라보는 시각이 사실적으로 담겨 있다. 1688년에 이르러 일본 최초의 경제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영대장(日本永代蔵)≫을 발표한다. 이후에는 사후 간행된 ≪사이카쿠 오리도메(西鶴織留)≫를 비롯해 본격 서간체 소설인 ≪요로즈노 후미호구(萬の文反古)≫를 집필했고, 섣달그믐을 작품의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이를 통해 중·하류층 상인의 생활상을 집단적 묘사의 형식으로 창작한 ≪세켄무네잔요(世間胸算用)≫와 상인의 향락 생활의 끝을 그린 ≪사이카쿠 오키미야게(西鶴置土産)≫ 등의 작품을 집필했다.
사이카쿠는 1693년 8월 10일, ‘부세라는 달맞이 구경을 하고 지낸 마지막 2년(浮世の月見過しにけり末二年)’이라는 사세(辭世)의 구를 남기고 52세로 생을 마감했다.
옮긴이
정형(鄭灐)은 서울 출생으로 일본 쓰쿠바대학(筑波大学) 대학원 문예언어학과 일본문학전공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현재 단국대학교 문과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 전공 분야는 일본 문화론, 일본 종교 사상, 일본 근세 문학이다.
일본 쓰쿠바대학 객원 교수 및 국제 일본 문화 연구 센터 초빙 교수, 한국일본사상사학회 회장, 한국일어일문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는 단국대학교 일본 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西鶴 浮世草子硏究≫(보고사, 2004), ≪일본 근세 소설과 신불≫(제이앤씨, 2008,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 ≪일본 일본인 일본 문화≫(다락원, 2009), ≪일본 문학 속의 에도 도쿄 표상 연구≫(공저, 제이앤씨, 2010,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 ≪日本近世文学と朝鮮≫(공저, 勉誠社, 2013), ≪슬픈 일본과 공생의 상상력≫(공저, 논형, 2013, 대한민국 학술원 우수도서) 등 20여 권이 있고, 역서로는 ≪일본인은 왜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가≫(예문서원, 2001), ≪천황제국가 비판≫(제이앤씨, 2007), ≪일본영대장≫(소명출판, 2009) 등이 있으며 그 밖에 일본 근세 문학 및 문화론에 관한 40여 편의 학술 논문이 있다.
차례
권1
7세 촛불을 꺼야 사랑이 시작되는도다
8세 부끄럽기만 한 연애편지
9세 남에게 들켜서는 안 될 짓
10세 소매를 적시는 초겨울비에 맺은 사랑
11세 알면 알수록 깊어지는 정
12세 번뇌의 때밀이
13세 이별은 현금 지불
권2
14세 흙벽 방 침구
15세 두발을 밀어 버려도 버릴 수 없는 세상
16세 여자를 멋대로 생각해서는 안 되지
17세 맹세 쪽지에 찍은 옻칠 도장
18세 여행길에서 생긴 마음
19세 어쩔 수 없이 출가하다
20세 뒷골목도 사람 사는 곳
권3
21세 헛돈 쓰는 사랑
22세 소데(袖) 해변의 생선 장수
23세 의복을 낚아채는 여자
24세 하룻밤 광란의 베개 다툼
25세 화대는 다섯 돈 외에
26세 무명옷 유녀의 덧없는 세상
27세 떠벌리다 구설수에
권4
28세 인과의 관문지기
29세 추억의 빗
30세 꿈의 검풍
31세 하녀의 첩이 된 요노스케
32세 대낮의 여우 올가미
33세 눈앞에 펼쳐진 3월
34세 구름 속에 자취를 감춘 날벼락
권5
35세 나중에는 정처 대접을 받다
36세 같이 먹고 싶은 정월 찰떡
37세 욕심 많은 세상에 이런 일이
38세 목숨을 건 빛나는 물건의 정체
39세 하루 빌려주어 뭐가 되지
40세 당대 멋쟁이를 몰라보다니
41세 지금 여기에 엉덩이가 튀는 여자
권6
42세 먹으려다 말고 소맷자락에 넣어 드린 귤
43세 몸이 불구덩이가 되더라도
44세 마음속 상자
45세 잠을 깨우는 채소 취향
46세 바라본 건 새해 첫 모습
47세 방귀는 하사품
48세 와카 고필 조각으로 누벼 입은 호화로운 겉옷
권7
49세 첫눈 오던 날 아침 찻잔에 떠오르는 모습
50세 바람잡이들과 실컷 놀아 본 날
51세 아무도 모르는 내 돈
52세 술잔 받으러 120리
53세 유곽의 일기장
54세 입맞춤한 술잔이 실린 사각 종이 그물틀
55세 신마치의 저녁, 시마바라의 새벽
권8
56세 편하게 잠을 잔 쇠달구지
57세 정을 건 도박 승부
58세 한잔이 부족해 찾은 사랑 동네
59세 교토의 미인 인형
60세 침실의 최음 도구
≪호색일대남≫ 발문
부록
에도 시대의 단위 표기
특별 기고 논문 : 한국 문화의 눈으로 읽는 ≪호색일대남≫−≪구운몽≫과의 대비를 통해
해설
지은이에 대해
지은이 연보
옮긴이 후기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일곱 살이 된 어느 여름날이었다. 한밤중에 쉬가 마려워 잠에서 깬 요노스케가 베개를 제치고 하품을 하면서 장지문 고리를 열려고 하니 옆방 하녀가 이를 알아차리고 촛불을 밝히면서 긴 통로 복도를 따라나섰다. 남천촉 나무가 서 있는 동북쪽 집 구석으로 다가가 솔잎이 깔려 있는 소변 통에 볼일을 본 후 손을 씻었다. 하녀는 툇마루 쪽으로 늘어진 대나무 줄기에 긁히거나 튀어나온 못에 도련님이 행여 다치지는 않을까 해서 촛불을 들고 가깝게 다가갔더니 요노스케는 “그 불을 끄고 좀 더 옆으로 다가오너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넘어지시지는 않을까 걱정이온데 불을 끄라시니 어인 말씀이시옵니까?”라고 물으니 요노스케는 태연한 얼굴로 “사랑은 어둠 속에서 한다는 걸 모르는가?”라고 말하기에 호신용 칼을 들고 있던 다른 하녀가 분부대로 촛불을 꺼 드리자 하녀의 왼쪽 소매를 잡아끌면서 “혹시 근처에 유모가 있는 건 아니겠지?”라고 주위를 신경 쓰는 모습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어 아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하늘나라 다리 위에서 처음에는 제대로 교합을 못했던 남녀 신들처럼 도련님이 아직 몸은 영글지 않았는데 그 마음만은 간절한 것 같네요”라고 주인마님께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다. 마님도 그 녀석 어린 나이지만 신통한 아들이라고 내심 크게 기뻐하셨으리라.